모처럼 만의 휴일인데 어제 저녁 너무 지친 나머지 잠깐 누어서
쉰다는 것이 깨어나 보니 새벽 5시 반이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니 아파트 경내는 조용하고
지는 보름달이 새벽하늘 서편에 빛을 여위고 창백히 떠있었다.
김포에 사는 휴일이 같은 회사 동료에게 전화를 넣고 낚시하로 갈까,
아니면 어제 내가 정비해 주었던 회사 선배가 근무하는 난지로 가서
점심이나 같이 하고 한강변을 자전거를 타고 강바람을 쉬며 돌아나
볼까 생각하다가 다시 잠자리 잠깐 들었다가 베란다로 나왔다.
지난 3개월간 일주일에 평일 휴일 하루로 새벽부터 밤까지 일로
바쁘다 보니 베란다 거주하는 화초들(특히 난) 몰골이 말이 아니다
식구가 엎지른 새우란 분 주변을 정리하고 꽃이 지고있는 석곡분을
앞으로 필 소엽풍란으로 위치를 바꾸고 미처 분갈이 못해 기다리는
춘란 분을 업고 뿌리를 보니 지난 여름·겨울 관리가 좋지 못해서
검게 썩은 뿌리들을 보니 맘이 아프다.
좀 늦게 조반을 들고 진한 커피를 들며 신문보다 문득 호수공원에
핀 모란꽃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나왔지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월초부터 호수공원에서 개최하는
국제 꽃 박람회로 인해 한편으로는 너무 늦은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안고 주엽역까지 3호선을 타고 갔으나 모란정은 발자국 투성이었다.
백모란 중 앞에 사진(벌 있는)은 재작년 찍은 것이고, 수련과 활짝 핀
백모란(벌 있는)은 금년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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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 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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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花傾國兩相歡
꽃과 절세미녀가 서로를 보고 즐거워하니
長得君王帶笑看
바라보는 군왕의 입가에 절로 웃음이 일도다
解釋春風無限恨
향기로운 봄바람은 온갖 근심을 날리누나
沈香亭北倚欄干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서니
** 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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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아카시아꽃이 피면 여름이 온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모란꽃이 지면 여름이 온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영랑의“ 모란이피기까지는” 시는 유치환의 깃발과 함게
즐겨 낭송했던 시다 .
사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얼까 다들 한번쯤은
생각들 할 것리라 생각이 든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권력이나 꽃은 참으로 덧없는 것으로
아름다움에 도취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권력은 빼고)이라
봄다운 봄의 기간도 갈수록 짧아지는 것 같다.
이시는 반어법이 일품이다.
예를 들면 “ 찬란한 어둠 ” 등이 있다.
환희의 순간도 찰라다.
아름다움의 환희도 찰라라 덧없음에 슬픔을 맛본다는 것이다.
김영랑 생가 사진을 올렸다.
두 번째 시는 당나라 시성 이백이 당 현종의 후궁 귀비가 머무는
침향정에 핀 모란꽃을 보며 황비의 절세미색를 노래한 것이다.
꽃말을 보면 모란은 목단, 혹은 함박꽃이라고도 부르는 데
행복한 결혼, 부귀 영화를 염원해서 이불, 예복, 병풍 등에 수로
많이 뜬다. 그리고 동양에서는 화중지왕이라고 한다.
비슷한 꽃으로 작약이 있다.
모란을 목작약이라고도 부르고 작약은 초작약이라고도 한다.
모란은 겨울나기를 나무처럼 가지가 죽지아니하고 한다.
어찌보면 화단에 줄기가 말라 검게 서있는 것이 애처럽다.
반면에 작약은 지상부위가 전부 썩어서 없어 진다.
일설에 보면 전쟁에 나간 왕자는 이국땅 전장에서 죽어서 모란이
되었고 연모하던 이웃나라 공주는 왕자를 찾아가서 그 옆에서 죽으니
작약꽃이 되었다고 한다.
모란이 지고나면 곧 작약이 뒤따라 피는 데 꽃이 비슷하다.
2015. 5.7. 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