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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나의 이야기

찬란한 슬픔의 봄 (0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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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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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피기까지는” /
詩人: 김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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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인천 남항부두에서 고깃배를 타고 서해 웅진군 해변으로
부족한 채비를 하고 간만에 출조했다
총인원 13명  50인승 배라고 하나 이인원이 적당해 보였다
두세 시간 나갔지만 한바다가 아니라 조그만 섬 근처로 정박을
자주했다 이 섬 저 섬에 활짝 핀 진달래 꽃나무들 배경으로
짝짖기 한창인 갈매기 무리가 퍽이나 많이 보였다

해상에 왠 종일  바람이 많이 불고 수온이 차서 오전 중에는
놀래기는 제법 낚아서 여럿이 둘러 앉아 모처럼 싱싱한 횟감에
소주도 몇 잔 돌았는데 기대했던 우럭은 오후가 되도록 한 마리
못 만나고 젊은 선창이 미안하다는 코멘트로 대미를 장식해야 했다

섬에도 꽃불이요  교외로 조금 나가면 산기슭은 온통 개나리,
진달래 꽃불로 한창이다
이제는 거의 저버렸지만 길 따라 눈꽃처럼 다투어 피던 벚꽃이
피고지고 진달래 마져 지고나면 오월의 언덕은 철쭉, 아카시아,
그리고 라일락꽃 향으로 충만해질 것이고 이 향기가 지고나면
연인들의 사랑을 축복하는 장미, 그리고 여름을 차분히 준비하는
수련 꽃으로 이어지는 유월이 기다려진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기다림은 좀 시리고 슬픈 색깔인 하늘색이다
일방적인 기다림은 자짓 안일한 방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빠른 변화를 바라고 자진해서 참여하게 됨으로 진지하다
그 뿌리가 희망이요 약속에 있으므로 기본 구조적으로 종교의
근간이 되며 온전한 실존인 사람으로 사는 근거가 된다
삶이 요구하는 기다림의 의미를 원만함 , 즉
욕구의 충족과 결핍의 조화에서 찾기도 한다

목적론적 사고방식이 잘 반영된 END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면
끝 과 목적으로 나온다
기다림의 끝은 죽음이다
삶의 끝, 목적에 신의 존재가 있다
기다림이란 의미로 쓰이는 히브리어 단어 “ 카와”의 본뜻은
“신을 기다린다”라고 의미로 믿음의 힘으로 죽음이 부활로
이어지기를 소망함으로 이때 신은 희망이다

기다림의 뿌리가 희망이라는 의미는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을 수 있다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 그 믿음의 힘으로  
굳굳하게 버티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소망의 실천은 기다림에 있다고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민족혼 , 자아의 상실감을 되찾으려
찬란한 슬픔의 봄, 오월의 기다림을 노래한 민족의 시인으로
김영랑( 1902-1950) 시인이 있다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이른 봄 고목의 잔가지에서 피어나는
매화는 겨울과 봄의 경계에서 인고의 상징으로 수많은 시인
묵객에 의해 회자되었지만 , 꽃샘추위, 황사먼지로 점철되어
지는 짧은 봄의 끝과 여름 사이에서 피어 배개나 이불 등에나
수놓아지는 부귀화, 모란(목단)꽃을 시간의 장으로 가시화시킨
분은 오직 동 시인이시다.

화사한 봄날 아름답게 피었다가 어느 하루 뚝뚝 떨어져 누운
모란 꽃잎에서 삶의 모순성( 생성과 소멸), 양면성(기쁨과 슬픔)
숙명성( 생명의 유한함)을 봤다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 보다는 피고 지는 변화 즉 무상을 봤다는 것이다
순환적 변화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소망의 실현은 기다림을 견지하는 데서 온다는 생의 원리를
깨닭고 , 절망하지 말고 기다림의 시간을 갖고 기다림의 의미를
실천한다면 잃어버린 그 무었을 종극에는 찾을 수 있다는
시인의 예술적 응전 , 끈질긴 시인의 언어의 미학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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