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맺혔던 가슴이 탁 풀리도록 푸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 답답했던 마음을 확 열어젖히고 초록 숲 향기를 받아들일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힘차게 울고 있는 벌레 소리를 들으면 머리까지 시원해지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복잡하고 분주한 삶 속에서 나날이 피멍져오고 두렵게 여겨지는 저항의 벽을 벗어나기란 쉽지는 않지만 훌훌 벗어던지고 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살아가더라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가끔은 빛나는 눈빛으로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자연을 벗삼아 보아야 그 즐거움에 살맛이 난다 온 세상을 마음껏 껴안아줄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 마음의 여유 ”/ 詩人: 용혜원 ** 어두운 낙산사 경내 외 주변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는 노송나무들 시뻘건 말갈퀴 같은 화마들이 달려들어 금방 집어 삼키는 홍예문 누각 불길에 휩싸인 보물 479호 동종 종각과 조금 후 무너져 내리는 모습 이제는 타서 경내 길옆에 멈춰 서버린 흉물스런 불자동차, .. 이것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양양군 고성의 고찰, 낙산사가 TV 중개차를 통해 비춰진, 이제는 사라진 모습이었다. 소방 방재청이 발표에 의하면 이번에 소실된 양양군내 산림만 해도 250 핵타르(ha)가 넘고 집이 타버려 발생한 이재민이 376명이 된단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새찬 바람을 타고 사방으로 퍼지며 타오르는 불길을 보노라니 문득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풍경 그림이 단지 시각적인 아름다움인 사실적 묘사 보다는 마음과 정신이 그 속에 깃들어 있음으로 그 존재의 이유가 빛남은 특히 인상파 풍의 그림에서 접하게 된다. 자연형태의 변화가 주는 빛과 색체의 효과 즉, 빛의 리듬, 묘사의 다양성과 조화 , 색체 자체의 추상적 아름다움 그림은 이것을 통해 화가의 침묵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림을 감상하기에 앞서 작가(1853-1890)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기성의 편견에 지우침의 장애를 넘는다면 도움이 많이 된다 네덜란드 브라반트지방 조그만 마을, 그린트 춘데르트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가난과 정신적 불안 속에서도 운명을 예술 속에 투영시켜 삶을 불사른 화가에게 후견자처럼 헌신적 후원과 보살핌을 준 동생, 테오와 의사, 가셰박사의 언급 그리고 동생이 운영하는 화랑에서 만나 사귀던 폴 고갱과 만남과 짧은 공동생활과 헤어짐의 휴유증인 한귀를 배어내는 기행 등은 화가를 무능인(경제적 불안)과 광인 취급을 하는 불명예를 준다 “ 20세기 표현주위의 선조 ”라고 불리우는 고흐는 대상의 외형을 성실히 관찰 후 그것을 그대로 충실히 표현하기 보다는 화가 내면의 감정과 느낌을 우선적으로 표출하기 위해서 대상의 외형을 변형시키면서까지 그림에 주관적인 감정을 쏟아 부었다. “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이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라고 화가는 말하고 있다 화가 추구했던 뿌리 깊은 고뇌는 무었이었을까 진정한 삶의 거부된 환경( 산업화 , 대도시화에 따른 자아상실의 위기)에서 군중속의 고독과 소외에 처한 근대의 영혼인 “나‘의 소중함, 삶에 대한 새로운 믿음 혹은 인간존재의 새로운 의미가 아니였을까 윗 작품 “ 별과 달이 있는 밤 ”은 생레미의 생 폴 요양원에서 그린 그림으로 맘속의 세찬 감정을 붓 끝으로 솔직히 표현했다 대낮보다 밝은 별, 달의 소용돌이는 바다와 같은 풍경이다 삼나무는 불길처럼 하늘로 솟구쳐 흐르고, 산과 구릉은 마치 파도처럼 출렁 거린다 즉 세상의 모든 형태에 생명감이 고취되어 있다 즉 존재의 확인이다 아래 작품 “ 까마귀가 나는 밀밭 ”은 화가가 말년에 거주했던 파리에서 35km 떨어진 시골 마을 오베르의 평원의 밀밭으로 한 화면에 담기 어려운 세 갈래의 길을 외곡하면서 까지 한 화면에 담은 그림으로 화면 가득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밀밭은 강렬한 노란색으로 용트림 친다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까마귀 때가 날아오르고 있으나 저 광활한 밀밭 영원한 생명으로 요동치는 황금의 바다에서는 결코 시들지 않는 생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즉 세 갈래의 길은 삶과 죽음같은 이분법적 사고가 아닌 다양성과 조화, 존재의 완성을 지향하는 안정적인 숫자 3을 보이며 역동적인 생명의 힘을 살아있는 건강한 삶의 있는 시골을 표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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