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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열린다
하늘이 열린다
풀잎
무슨 염불의 공으로
고은 영혼을 피워
창가에
고개 내밀고
황홀히
황홀히
아침 햇살에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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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가의 난 ”/ 심원 : 조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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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된 묵란도는 추사 김정희 작품으로
그림에 인격이 반영된다는 의미의 글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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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니싱 투윈 (banishing twin)이란 어휘가 메스콤에
이따금 등장한다.
최근 인도에서 일어난 일을 예로 들면
임신 삼 개월 초음파 검사 때에는 쌍둥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는데 육 개월 지니면서 한쪽의 심장박동이
점점 약해졌고 출산하여 보니 한쪽은 건강한 출산인
반면 다른 쌍생아는 바싹 마른 상태로 사산되어 나왔다
즉 사라진 쌍생아란 의미의 조어다
한 개의 난자에 한 개의 정자가 수정된 후
이 수정란이 세포 분열하여 두개의 수정란으로 분리되어
아기로 발생하는 경우 일란성 쌍생아라고 하다
이 경우는 이란성 쌍생아와는 달리 백프로 유전물질을
공유하게 된다고 보는 데 양쪽 다 생존률은 희박하다
한편 불임부부를 위해 시험관에서 수정된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는 경우 튼튼한 수정란 2~3 이상을 착상
시키는 데 조사해 보면 잘 착상된 수정란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씩 녹아 없어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확한 확인된 진단은 아니지만
태아가 어느 정도 자아를 의식하게 되면 자신만이 생존
환경을 요구하게 되고 같이 있는 상대방을 싫어하고 미워하게
되어 없어져 주기를 바라는 상태가 된다는 것으로
이런 끔직한 결과가 생기는 것이 아닌가 추론한다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즉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만은 의심할 수가 없다고 자신의
有(있다) 함을 말하고 있는 데
의심하고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이 의식이 나로써 존재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즉 나로써 있다고 하는 것은 임시가 아니고 영원이 그 차체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유식론에서
우리의 의식범위를 세( 6식 ~ 8식)가지 혹은 다섯(6식~10식)
가지 단계로 식(識)을 나눈다
즉 8식에서는 6식(의식) : 생명체의 현재적인 정신활동
7식(말라식) : ego 의식(생명체의 자아)
8식(아뢰야식) : 생명체의 前身的 본유종자
10식에서 9식(암마라식) : 아뢰야식(업)의 저변 식(정보)
10식(건율타야식) : 청정자성심 (眞如 )
여기서 생명이란 원래 비 생명체였던 특정한 물질들의 정보가
아주 특수한 형태로 서로 결합되어 통합적 정보의 구조를
가지게 되는 어떤 신비한 현상으로 보며
의식이란 세세 전생을 통하여 유지되면서 윤회하는 아뢰야식과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아뢰야식으로부터 발아되는 말라식을
포함한 7식의 先在를 전제조건으로 하여 생명체에만 유지되는
것을 말한다
있다고 하는 것은 無가 아니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이 많은 데
옷을 예로 들어보면
옷이라는 것은 천과 실로 되어 있고 천 또한 몇 가닥의 실로
짜여있어 옷과 천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인식은 몇가지 요소의 화합체 위에 하나의 물체를
상정하여 그 물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사승마( 蛇繩麻 )를 갖고 唯識三性을 살펴보자
사승마란 어두운 밤에 굵은 노끈(꼬아줄 토막)을 보고 뱀인 줄 알고
깜작 놀랐으나 아침에 보니 꼬아줄 토막이었고 그것도 본질은
짚이나 삼이라는 것으로
뱀으로 보게 되는 것은 변계소집성의 결과다
즉 정유리무(情有理無)로 번뇌를 가진 내 마음속에 서만 보이는
망상으로 의식은 계교하고 헤아려 집착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의타기성으로 여환가유(如幻假有)이다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잠시 일어나는 허깨비 같아 스스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은 없고, 다른 것( 천, 노끈)에 의지하여
일어나는 성질이 있다 즉 현재 잠시 假我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원성실성으로 정무리유(情無理有)다
妄情은 없지만 근원적인 참 이치는 있다는 것으로
영원적인 참다운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불성, 도, 실상을 말하며
진리의 세계는 완전한 것이여서 우리가 깨닫고 달성해야
할 세계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삶의 목적은 생존하고 생식하는 것으로
성공적인 생존을 통해 유전인자를 자식에게 세세 넘기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존과 생식에 유리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즉 자연에서는 무성 생식 만을 통해서는 멸종을 면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섹스가 반드시 필요 하듯이
불교에서는 한 방편으로 선 수행을 통해 의식을 파악하고
그 것이 존재를 감지하고 자아집착 의식( 말라식)을 놓아버리고
아뢰야식 속의 자신의 무명을 지어버리려 한다
우리가 무의식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의식의 저 근원 ,
무형의 영적인 시그널로 생명체와 결합된 정보인 아뢰야식 이 의식이
六途輪廻하는 것이라면 현세에 좋은 인연( 일 ) 많이 맺어 전세의
업을 씻고 영혼에 도움되는 수행 , 독서 등을 많이 하는 것이 보더 나은
來世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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