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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에 대해서
창경궁 후원 일곽인
자경전- 통명전 북쪽 높은 지대에 위치한 혜경궁 홍씨의 집
서울대학병원에 위치한 경모궁 사당이 보이는 곳 (빈터)
장서각 - 1911년 총독부가 지은 이왕직의 도서관/박물관 (1980년 철거)
풍기대 - 보물846호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
성종태비실 - 성종임금의 태 , 1930년 광주에서 옮겨옴
를 지나 좀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오면 호로병 모양의 연못을 만난다.
춘당지다
(2016.3.)
1907년 이왕직이 이또 총감부의 지시에 따라 창덕.창경궁의 공원화계획
(1907년~1909년) 일환으로 조선국의 왕이 친경하던 권농장 일대 지역을
개착하여 연못을 만들고 어류를 방류하고 수련을 기르게 하고는 왼쪽에
마주한 춘당대 앞이라고 춘당지라고 1909년 명명했다고 함.
춘당지 중 위쪽에 위치한 소춘당지로 불리는 곳은 내농포인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저수지로 원래 이름은 백년담으로 30평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아래쪽 큰 못은 대춘당지로 불리웠는데 원래 저곳은 계곡의 어구에 해당되
는 곳으로 논을 좌우로 10~11곳 마련되었었는데 기록에 의면 총 넓이 70보,
길이가 40보 정도, 1보=1.2m , 정도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농자천하지대본’ 이라고 써서 장대 높이 휘날리는 깃발을 보신 분이 많겠지
만 오늘날과 다르게 농사일 을 국가적으로 크게 여겼던 시대여서 영조43년
(1767년)에는 “친경의궤” 를 만들어 친경례를 교본에 실시하게 했는데
태종 때부터 매년 경칩에 선농단에 재단을 쌓고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올리던
재사도 일제에의해 1909년.4.5. 순종황제가 마지막으로 올리고 폐지되었습니다.
종묘사직이란 전통유교사회에서는 국가조정 자체를 의미할 정도로 대단한
것인데 사직은 땅의 신과 곡물의 신에게 올리는 가장 중요한 국가제례였다.
유적지의 제단은 인왕산 기슭의 사직공원과 2008년부터 역사공원 조성중인 재기동
선농단에서 볼 수 있다
* 제수용 곡식은 전농사를 두어 전농동 왕실 농토인 적전에서 농경을 관리케했다.
백성의 주업인 농사 일을 직접 체험하여 농사를 짓는 과정에서 겪게되는
어려움과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고통을 나누려는 조선의 임금들
을 본 받고 교육장으로 남기고 싶으나 복구가 불가능한 상태라 1984년 5월
동물원을 과천으로 옮기고 창경궁으로 원래 이름은 되찾았으나 너무도 변형이
되어서 복구가 어려워 1986년에 전통 조경수법으로 만들이 진것을 보고 있습니다.
춘당지 주변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현재 오른쪽 언덕에 관덕정이 보이는데
그 자리에는 인조20년(1612년)에는 잠단이 위치했던 것을 사정.관람용인 취미정
으로 고쳤고 현종5년(1664년)에 관덕정이라 개명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농포 아랫 측에는 인조25년(1657년)에 관풍각을 지어서 한해 농사가 끝나면
신하들과 함께 풍년이 든 벼이삭을 보며 작시를 했다고 합니다.
* 내농포에서 초여름 왕이 친경하는 모습을 관풍각에서 보는 것을 관풍춘경이라 함
지금은 담으로 가로 막히고 숲으로 보이지 않치만 현재 식물원 건물이
왼편 언덕위에 자리한 영화당의 동쪽에 춘당대, 일명 서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선조3년(1572년)부터 서총과라고 불렸던 별시의 일종인 문과의
대과 3단계 판정시험이 부정기적으로 치루어졌습니다.
물론 이곳에서 무과 전시도 행해져서 어전에서 복시 합격자의 등급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명종5년 서총대 시연도)
무과의 경우는 춘당대(서총대) 아래쪽에서 건너편 기슭에 세워진 소포
(과녁)이나 추인(짚으로 만든 인형)을 기사(말타고 활쏘기)나 보사를 하면
관덕정 남쪽에 위치한 장원봉 주위에 훈련을 끝내고 모여 쉬는 장병들이
관람했다고 합니다.
( 춘당대)
특히 조선 영조.정조 전후의 작품으로 추측되는 판소리 12마당의 하나인
고전문학 중 최고로 꼽히는 춘향전에 이몽룡이 전시과에 급제한 장소로
춘당대를 암시하는 장면으로 “춘당 춘색이 고금동” 이란 시제가 나오는
데 언덕위의 영화당에서 써서 올린 것을 그 아래 쪽 춘당대에서 문과에
입시한 유생인 몽룡이 보고 썻다는 이미지가 떠 오른다.
춘당대는 초시와 복시를 거친 유생들이 마지막 시험인 전시를 왕실의 경사
가 있을 적에 치러 춘당대에서 시험을 보고, 장원급제하여 영화당 너머 부용지
어수문 위 주합루에 들어가 임금의 얼굴을 뵈는 것이 모든 유생의 꿈으로
즉 전시는 양반자재의 등용문이 었다.
끝으로 조선의 동궐 중 창경궁의 후원을 돌아보고 나오면서 느끼는 것은
조선 건국의념 중 하나인 농본민생주의를 역대 27대 왕들이 착실히 지켜
국민생활 안정을 위해 궁궐은 짓되 ‘검이불루 화이불치’, 검약하며 짓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게, ‘경천근민 관상수지’, 하늘을
살펴 백성의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때와 시를 알려준다, 몸소실천
하려했던 어심을 보았다는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던
선조들의 지혜에도 참으로 맘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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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7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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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당지 안내
자 ~ 여러분 이제
금일 창경궁 답사의 최종코스인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화강암반의 터전 깊숙한 후원에 이런 시설이 있다니 한편 놀랍지요
우리 앞에 펼쳐진 작은 호수같은 이곳의 이름은 대한제국 말인 1909년에
일본 궁내부소속 이왕직이, 이곳 조선의 왕궁 내 권농장의 내농포 농지에
이렇게 넓은 연못을 개착해 조성한 후 왼편 11시 방향의 언덕에 위치한
춘당대의 지명을 따서 그 밑에 있다고, 춘당지리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1909년 ~ 일제강점기)
(1979년대)
그런데 사실은
이곳에는 조선 임금님들이 친경 즉 몸소 논농시를 지었던 내농포 농토로
위쪽에는 백련담으로 알려진 30평 규모의 자그마한 저수지가 있었고 지금
보이는 대춘당지 부근은 지금과 달리 산의 경사를 따라 여울이 형성되는
장소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10~11곳에 논을 조성했었습니다.
그 전체 크기는 폭이 70보 길이가 40보로,1보가 1.2m 이므로, 대략 1천평
정도 였는 데 일제통감부는 더 넓히고 평지화시켜 2배반 정도로 백련담도
2백평 정도로 넓히고 밑쪽과 연결시키면서 호로병 모양의 큰 못이 돼었답니다
궁궐내 권농장은 창덕궁 후원인 상람삼경으로 불렸던 태극정,소요정 그리고
초가집인 청의정 앞쪽에 비교적 작은 내농포가 있었고 이곳 창경궁 후원쪽에도
임금이 친경하던 내농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영.정조 때의 조선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인조25년부터는 내농포 아래쪽에 관풍각을 지어서 한해 농사가 끝나면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풍년이 든 벼이삭을 보며 작시를 했고 특히 봄에 모심기,모내기를
하는 임금과 왕자를 관풍각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관풍춘경이라 하여
상림10경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임금의 친경은 , 농자를 천하 지 대본으로 여겼던 시대인 , 조선에서는
매우 중요한 군왕의 덕목으로 여겨서 영조43년에는 친히 “친경의 궤”
를 편찬해서 후세 왕은 그 교범에 따라 행하도록 했습니다.
궁궐 밖 권농장으로는 적전이라는 왕실의 농토를 전농단이 위치했던 동대문 밖
재기동 아랫마을인 전능동에 마련했고 전농사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습니다.
실록에 의하면 영조대왕은 경칩 무렵에 친히 세자와 함께 적전에서 밭갈이 하는
모습을 관료와 백성에게 보였답니다.
신라,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친경과 농사의 신인 신농과 후직씨에게
조선 태종 때부터 경침에 행해 올려져 왔던 국가적 제례였던 선농단 제사도
일제에 의해 1909년 4.5. 순종황제가 마지막 올리고 폐지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남아있는
창경궁 금호문 밖에 숙종 때 설치된 관천대 와 영춘헌과 집복현 윗측에
설치된 풍기대와 양부일구 그리고 내농포를 연결하는 선상에서 보다면
관상수지하며 재해를 최소화하여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조선 임금의 백성을 사랑하는 어심과 그 결과로
사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농업기술의 향상과 농기구 개량 등으로 이어져
견종법이 등장 등 1년2모작이 가능하게 되어 농업의 융성해지고 대규모
자본동원이 가능해져 거상이 등장했고 국제교역이 활발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은 좀 어렵더라도 이 땅에 살아갈 우리 후세의 교육장으로
춘당지를 옛모습에 가장 근접되게 복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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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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