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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제주도 관련

성문대할망 본풀이(펌)

 

 

설문대할망 본풀이(문무병)


아득한 옛날

하늘과 땅이 열리고

이승과 저승이 갈리던 날,

저승의 대별왕이 이승의 소별왕에게

천근 활 천근 살을 당겨

해와 달을 쏘아 맞춰

인간 세상을 만든 그 이후에도,

아직 제주도는 완성된 게 아니었다.

그 뒤로도 천지창조는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산과 바다, 그리고 나무와 짐승들,

새벽을 여는 아침과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산 위에 노는 구름과 안개,

그리고 바람,

세상을 뒤바꾸려 휘몰아치는 바람이

아직은 생겨나지 않고 있었다.


제주도는 그때

저승의 대별왕이 동해 바다에 떨어뜨린 해가

바다 가운데 불꽃 섬으로 솟아났다 하고,

서해 바다에 떨어진 달이

바다 위에 떠서 흐르다가 섬이 되었다 한다.

제주 섬은 떠다니는 배였다 한다.

풍수가들이 세상에서 제일 큰 배

돌배의 형국이라는 일출봉,

바다에 떠다니는 배가, 비양도라는 것은

그때의 이야기가 전해온 것이다.

때문에 아득한 옛날 탐라 백성들은

배를 타고 왔다고도 하며,

불꽃 섬 한라산에서 솟아났다는 것이다.

떠다니는 배가 불꽃 섬에 닻을 내리고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달이 지는 불꽃 섬에 아침을 만들고,

그들이 타고 온 배를 일출봉이라 불렀다.


이 섬에는 이전서부터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이

한라산에서 솟아났다고 하지만

할머니가 만든 한라산에서 솟아날 수 잇겠는가.

천지가 만들어진 후,

그 뒤를 이어 비로소 할머니가 탄생하여

천지인 삼황을 이루었나니,

그 뒤로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었고

한라산신 오백장군을 낳았다 해야 맞다.


설문대할망은 외롭고 심심하여

가만히 들어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세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잠을 자던 할머니가 눈을 뜨면 아침이 오고

할머니가 눈을 감으면 밤이 되니,

사람들은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밤이 되면 눈을 감아 잠을 자고

낮이 되면 눈을 뜨고 일어나 일을 했다.

할머니가 숨을 쉬면 바람이 일고,

할머니의 입김으로 바람을 만들었다.

탐라 백성들은 할머니의 부드러운 살 위에

밭을 갈았다.

할머니의 털은 풀과 나무라 하며,

할머니의 고래굴 같은 거대한 음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싸는 힘찬 오줌 줄기는

온갖 해초와 문어, 전복, 소라, 물고기들이

거기서 나와 바다를 풍성하게 하였으니

그때부터 물질하는 잠녀가 생겼다 한다.


그리고 원래는 탈라백성들이

낮에는 해가 둘이어서 타 죽고

밤에는 달이 둘이어서 얼어 죽을 때

저승왕 대별왕이 천근 살, 천근 활로

해 하나 쏘아 동해 바다에 던지고

달 하나 쏘아 서해 바다에 던진 것이 아니라

추위와 더위 때문에 성가셔 잠을 설친 할머니가

벌떡 일어나 팔을 뻗어

하늘에 해 하나, 달 하나를 따버리자

사람이 살만한 날씨가 되었다 한다.

그제서야 할머니도

옆 이마에 햇님이 반짝, 해 하나 그려넣고,

뒷 이마에 달님이 반짝, 달 하나 그려넣어,

해 하나, 달 하나 머리에 꽂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한다.

설문대 할망이 눈을 떠 머리에 해를 따다

일출봉에 놓아두면 아침이 오고,

달을 따다 차귀도에 놓아두고

눈을 감으면 캄캄한 밤이 되었다.


할머니는 너무나 크고 힘이 세었다.

할머니는 크고 세어 외롭고 쓸쓸하였다.

어느 날 누워 자던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앉아

방귀를 뀌었더니 천지가 창조되기 시작했다.

불꽃 섬은 굉음을 내며 요동을 치고,

불기둥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할머니는 부지런히 뒷수습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바닷물과 흙을 삽으로 퍼다

불을 끄고 식히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다 부지런히

한라산을 만들었다.

일곱 삽을 퍼다 던지니 한라산이 되었다 하고

할머니의 한 치마폭의 흙으로 한라산을 이루고

치맛자락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흙 모아져

여기저기 오망조망

오름들이 생겨났다 한다.


설문대할망,

천지를 창조하신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고 오백장군을 낳던,

할머니는 몸 속에 모든 것을 가지고 계셨다.

오줌을 싸다가 흘린 바다의 온갖 해산물,

할망이 싸는 오줌발에 성산포 땅이 뜯겨나가 소섬이 되었다는

넉넉한 힘과 정력, 풍요로움 속에

이 거대한 여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너무나 커서 불행하였다.

할머니의 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어

탐라백성들은 할머니의 몸 안에서 행복했지만,

할머니의 고래굴 같은 음문 하나 가릴 수 없었다.


할머니는 늘 헌 치마 한 벌 밖에 없었기에

터진 치마의 흙으로 오름을 만들었다지만,

할머니는 늘 빨래를 해야만 했다.

백성들에게 온갖 궃은 일 바닷물에 씻으며

부지런히 빨래를 하였다.

한라산에 엉덩이를 깔고 앉고,

한 쪽 다리는 관탈에 놓고,

또 한쪽 다리는 서귀포시 앞 바다 지귀섬에 놓고서,

성산봉을 빨래 바구니 삼고,

소섬은 빨랫돌 삼아 빨래를 했다.

가끔은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워

발끝은 바닷물에 담그고 물장구를 쳤다.

헌 치마 한 벌 빨고 빨아

관탈섬, 소섬, 지귀섬, 마라도, 소섬

섬 주위에는 하얀 거품이

파도와 물결을 이루었고,

몸을 움직이고 발을 바꿀 때마다

거대한 폭풍처럼 바다를 요동치게 하였다.

한라산에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한 발을 한라산을 딛고, 또 한 발을

성산봉에 딛고, 관탈섬을 빨래돌 삼으면,

세상은 또 한 번 다른 세상으로 바뀐 것 같았다.

가끔은 제 모습을 들여다보고 서글펐다.

할머니는 키가 너무 커 놓으니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터지고 헌 치마를 입고는 있었지만

고래굴 같은 자신의 음문을 가릴 수 없었기에,

부끄러움을 아는 여인으로서,

가끔은 자신이 슬펐다.

짐승이 아닌 바에야

인간에게는 제 몸을 가릴 수 있는

지혜를 길러주어야 하며,

신으로서도 몸소 그 아름다움을 가꾸어야만 했다.

아름답고 넉넉하고 풍요로운 모습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제 몸을 가릴 수 없었다.

터진 옷은 소박함이 아니었다.

가난은 넝마에 불과했다.

육지에 가면 명주가 넉넉했지만,

제주에는 명주가 별로 없었다.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어야지

할머니는 백성들을 위하여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눈을 감아 캄캄한 어둠 만들어 세상 가릴 수는 있었지만,

제 몸 하나 가릴 옷이 없었으므로

할머니는 백성들에게 부탁을 했다.

탐라 백성들아, 나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라

속옷 한 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마

할머니의 속옷을 만드는 데는 명주 100통이 필요했다.

탐라백성들은 명주를 다 모아도 99통밖에 되지 않았다.

한 통은 50필, 모아봐야 아흔 아홉 통 밖에 안 되었다.

99통을 베어서 속옷을 만들었는데,

속옷 한 벌을 다 만들지 못했다.

할머니는 제주 사람들에게 속옷 한 벌 장만해 주면

부산과 목포로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으나,

그 때 제주에는 명주가 별로 없었다.

인간 세상에 명주가 별로 없을 때니,

사람들은 우린 죽으면 죽었지 명주 한 필 내놓을 처지가 못된다 했다.

사람들은 모자람과 안타까움 때문에 속이 상했고,

할머니는 고래굴 같은 음문이 살며시 드러난 미완성의 속옷에

부끄럽고 화가 났다.

할머니는 육지까지 다리 놓는 걸 포기해버렸고,

그때부터 제주는 물로 막힌 섬이 되어버렸다.


창조의 여신,

죽지 않고 살아서

늘 탐라백성을 지켜주는

너무만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물장오리 깊은 물에 빠져 죽었다 하고

백록담 죽솥에 빠져 죽었다 한다.

물통과 죽통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에는

넓고 깊고 헤아릴 수 없는 가르침이 있나니

하나는 죽통에 스스로 빠져 들어간 어머니의 사랑,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만한 자신을

‘물장오리’라는 물통에 빠뜨려 매정하게 수장(水葬)시켜

밑도 끝도 없는 심연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는

영실(靈室)에 관한 이야기다.

할머니는 자신의 키가 큰 것을 늘 자랑하였다.

용연 물이 깊다기에 들어섰더니 발등에 겨우 닿았고,

홍리 물은 무릎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한라산 물장오리 물은 밑이 없는 연못이라

나오려는 순간 빠져죽고 말았다

할머니는 한라산 속, 영실에 살아

오백장군과 함께 한라산신이 되었다

할머니는 한라산이며, 한라산의 바람이 되었다.

지금도 한라산을 베개 삼고 누어

두 다리는 제주시 앞 바다 망망한 수평선 관탈섬에 놓는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죽어서 죽(粥)이 되어 버린

죽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는

가슴에 뭉클 솟구치는 통한의 슬픔.

1950m 한라산보다 훨씬 더 높고 깊은 감동의 모성인양

애틋한 사랑이 굳어버린 돌가슴 속에서 펄펄 끓고 있다.


아득한 옛날 일이다.

슬픔에 멍들어 돌이 되어버린

오백장군의 이야기가 있다.

설문대할망이 오백장군을 낳아 한라산에 살고 있었다.

식구는 많고 가난한데다 마침 흉년까지 겹쳐

끼니를 이어갈 수 없었다.

“아이들아 어디 가서 양식이라도 구해 와서 죽이라도 끓여야 살 게 아니냐”

오백 형제들은 모두 양식을 구하러 갔다.

어머니는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백록담에 큰 가마솥을 걸고 불을 때어,

솥전 위를 걸어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러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어머니는 죽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백 형제는 돌아와서 죽을 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죽 맛이 좋았다.

맨 마지막에 돌아온 막내 동생이

죽을 뜨려고 솥을 젓다가 이상하게도 뼈다귀를 발견했다.

다시 살펴보니 어머니의 뼈다귀가 틀림없었다.

동생은 어머니가 빠져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불효의 형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

동생은 통탄하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그만 바위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그제야 사실을 알고

여기저기 늘어서서 한없이 통곡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그러니 영실(靈室)에는 499 장군이 있고

차귀섬에 막내 동생 하나 외롭게 있다.


또 설문대할망은 죽어서

저 표선리 한모살 당캐 세명주할망이라는

어부와 해녀를 지켜주는 당신이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영험과 수덕을 겸비했다.

표선리 백사장 ‘한모살(지명)’도 세명주할망이 날라다 쌓은 거라 한다.

할머니는 물장오리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오백장군들에게 한라산을 지키라하고

지리서를 들고 좌정처를 찾아 한라산을 내려왔다.

앉아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보는

신통력을 지는 세명주할망이 지리서를 내다보니

표선면 당캐가 좌정할 만 하였다.

그리하여 나고 드는 상선 중선 하선과 만민 자손

천석궁 만석궁, 공자 맹자를 다 거느리고,

잠녀들을 거부자로 만들어주는

표선면 당캐의 어부와 해녀를 차지한 신이 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나주 목사가 와서

“이건 뭣하는 당이냐?”하니

“영급 좋고 수덕 좋은 세명주할망 당입니다.”

“세명주 할망이 뭣이냐?”

마침 그때 포구에 정박했던 큰배가

짐을 가득 싣고 수평선에 떠가고 있었다.

“수덕이 좋다면, 저기 떠가는 배를 돌려보아라.”

“할머니, 어서 빨리 영급을 보여줍서”

갑자기 샛바람이 탁 트이고

그 배가 자르르 흘러 선창 안으로 들어왔고,

나주 목사는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의 큰 키, 센 힘,

설문대할망이 길쌈하던 곳의 등불,

등불은 켰던 자리의 바위,

빨래판과 빨래터, 거품이 이는 바다

육지로 다리를 놓던 자리의 바위줄기

끝내 만들 수 없었던 속옷과

육지로 갈 수 없는 다리와

섬의 한계와 할머니의 몸 속 같은 이여도와

우리가 언제나 바람결에 들었거나

꿈속에서 건져 올리는 설문대할망,

할머니는 늘 침묵하지만 늘 곁에 있어

부르면 듣고 대답한다. 바람결에, 역사 위에

배고픈 제주 아이들을 위하여

백록담 솥뚜껑을 열어 팥죽을 쑤시던

설문대할망의 탐라 천년의 침묵은

억측과 오해를 만들기도 하였고,

상상의 신화를 만들기도 하였으나,

어둠 속에 한 바탕 난리가 났다 하는,

어둠 속에는 사랑을 찾아,

비새(悲鳥) 같이 울고 있는 원령들이 구천을 떠돌아,

왕도, 곰도 범도 없는 아흔 아홉 골짜기에서

방성칠 난리에, 이재수 난리에,

무자․기축년 난리에 죽은 원혼들이

피리단자 옥단자 불며, 비새 같이 울고 있다.

바람 타는 섬에 떠돌고 있다.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결국 바람이었다.

아, 바람이어 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