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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제주도 관련

보름달 과 잠녀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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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 잠녀 추억

 

일전에 선친제사로 제주에 갔을 때 아침 일찍 황사평묘지를

방문 후 부친이 잠든 서귀포로 갔다.

부친의 묘소에서 내려다 보면 백호쪽에는 범섬이 , 청룡쪽에

문섬이 떠있는 게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 외돌개를 지나 황무지 위 호텔 옆으로 돌아내려

서귀항 해안도로 따라 천지연 폭포입구를 지나 자구리가 보이는

확장 중인 항 방파제 위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그리웠던 바닷내음을 마시며

시선을 들어 수평선을 따라 왼쪽으로 섭섬 • 정방폭포

그리고 해안 절벽을 따라 계곡 용천수 야외목욕탕 지나

자구리 해변을 따라 안쪽으로 암벽 밑 용천수 샘터• 빨래 터

지나 용트림하며 뻗어나간 검은 여를 따라 크고 작은

용암 자갈들이 널려 펼쳐있는 갯가를 내려다 본다.

 

물질로 빛바랜 하이얀 둥근 두렁박(태왁)

땅거미 내려 컴컴한 해변 샘터에 걸려있다.

신화 속 날개옷 잃어버린 선녀의 나신이

만월을 닮아 초저녁 어스름 속에 찬란히 빛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가족이 갯가로 나왔다

갯바위 와 자갈밭 위에는 흰옷 입은 사람로 가득했다.

어디선가 화약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태왁 • 망사리 지고 정개호미를 쥔 흰 잠녀들

파도 처럼 발빠르게 바당으로 끊임없이 헤염쳐 갔다

고함소리 웅성거림 생기 넘쳐나는 장관이았다.

 

시간이 지나고 해녀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갯가 한쪽으로 오름처럼 해초덩이가 쌓이기 시작하고

여기 저기서 태왁에 가득한 미역을 가족과 함께 끌고 와서는

여기저기 둘러앉아 불을 피우고 미역을 구어먹고,

둘러서서 젖은 몸을 피어논 불에 녹이는 모습

돌아선 모습에서 보이는 것은 몸에 착 달라붙은 빛바래고

엷어져 비춰보이던 잠녀들의 달덩이같은 엉덩이었다.

불덕이 턱없이 부족한 바닷가라 튀어나온 암석주변은

물론이고 그져 가족이 둘러 앉아 시린 몸을 녹이거나 젖은

물옷을 갈아 입는 일은 모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잠녀의 사전적 의미는 바닷 속에 들어가 굴, 미역, 전복

따위를 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여자를 말한다. 즉 해녀다.

이제 잠녀를 보는 여러 가지 시선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자.

 

잠녀의 최초 기록은 삼국사기.권19. 고구려본기다

   ‘ 문자왕13년(AD503년) , 가옥은 섭라의 소산이다,

     珂則 涉羅所産 ’

여기서 가(珂)는 탐라의 전복(조개x) 진주를 말한다.

 

문종33년(1079년) 구당사 윤응균이 夜明珠란 진주 2개를 바침

 

충렬왕2년(1276년) 원나라 임유간이 진주를 구하지 못해

탐라민로부터 진주 100개를 뺏어갔다.

 

조선시대에 대표적인 잠녀에 대한 문헌을 보면

조선14대 선조의 손자인 이건(1614~1662)이 쓴 한문 수필집인

‘제주 풍토기’ (7년 머문 기록)가 나온다.

    赤身露體 男女相雜 不以爲恥 所見可해(놀랄해)

    온몸을 벗은 체로 남녀가 함께 어울리니 놀랄 일이다.

미역 등 해초를 가족들이 함게 수확할 때의 觀景이다.

 

  숙종20년(1694)에 제주 목사로 부임하여 2년간 관덕정, 향교

등을 중창한 야계 이익태(1633~1704)의 ‘지영록’ 빗잠녀인

채복녀 이야기에서

   ‘ 採藿之女 謂之潛女 基採藿之時 則所謂潛女

     赤身露體 遍滿海汀‘

     미역 따는 여자를 잠녀라 한다. 미역 딸 때 잠녀들이

     알몸으로 바다에 가득하다. (빗=전복)

 

그런데 숙종28년(1702년)에 1년3개월 간 제주 목사를 지낸

이형상(1653~1733)의 ‘탐라순력도’ 와, 영조4년(1764년)에

탕평책 일로 금어랑(종6품)직으로 入島한 신광수(1712~1775)의

‘석북집’ 부해록에는 赤身小袴(적신소고) ,주요부위 가릴 정도의

의상으로 나옴.

즉 천이 귀한 시대라

허리에 삼띠를 두루고 그 삼띠 앞뒤로 두 석자 되는 베를

걸쳐 음부를 가린 상태(참조**)를 말하거나

물옷 소중기(팬티) 만을 입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모습은 선조10년(1577년) 백호 임계(1549~1587)의

‘남명소송’(기행수필)에도 나오는데

이는 문인이며 시인인 임계가 음력 12월에 5일간

제주여행에서 본 추운 겨울 제주 잠녀의 모습이었다.

 

목사 이형상의 기록한

   ‘남환박물지’의 잠녀에 대한 기록에는

   ‘여자의 부역이 매우 무겁다.’

   ‘여인들은 치마가 없어서 단지 삼노로서 허리를 두루메고,

    몇 자의 굵은 베를 바늘을 이용하여

    삼노의 앞면에 얽어메었으나,

    오직 그 음부를 가릴 뿐이다.

    옷과 치마를 벗고 몸뚱이와 볼기짝을 들어내는

    것이어서 참담하여 차마 볼 수 없다‘

라고 할 정도로 제주인의 생활은 각박했다.

 

오즉했으면 고려문종12년(1058년)에 문하성에서 임금에게

이뢰기를 ‘ 탐라는 땅이 척박하고 백성이 가난하여

오직 배를 타는 일로 생계를 도모한다 ‘ 했을 까,

문제를 조정에서 알면서도 탐라는

원나라의 직할지도 되어 버려진 상태였다.

 

  탐라민이 급소노출에 상대적으로 덜 예민한 이유는

가난도 주원인이었지만

100여년 몽고 식민지생활과 성적 개방적인 생활에도 있었다. 

 

18세기 초까지도 칡의 섬유로 짠 베로 옷을 지어 입었고

소금 굽는 법과 누에길쌈을 정례도 1498년경이라 한다.

면의 경작은 토질 상태가 재배에 맞지 않았다.

 

  밭작물로는 기장• 피 • 산도• 차조• 콩•보리• 메밀•사탕수수였고

숙전으로는 흙밭(조, 보리)과 모래밭(수수,고구마)을 일궜다.

 

  척박하여 시비가 필수였고 , 쓰는 거름으로는 돗거름• 몰거름,

듬북거름• 실겡이거름 • 고자기거름 • 노랑쟁이거름 등이 있다.

 

  마소 먹이용 풀밭인 촐왔 , 지붕에 쓰이는 새(띠)밭인 새왔 ,

주식 용 곡식을 심는 센밧 경작( 4년 순환농사)에 넣는 거름은

주로 바다 해초를 주재료로 만들었다.

  농사 거름용으로 흑돼지를 이용한 돗거름 생산시설에

돗통(참조**) 혹은 통시가 있다

 

주택 주변에 10평 안팎의 깊이 1m 정도 만든 돼지우리로

밑거름 용으로 보리짚와 고지기 등 해초와

온갖 잡초를 넣고 돼지 분미물로 만들었다.

물론 개방형 화장실로 본(싼) 대변은 돼지 먹이로 이용됐다.

 

  모계사회 영향인지 이상하게도

생계전반의 모든 일은 여성이 전부 도맡아서 했다.

물론 남자에 비해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아서인지

부인을 둘 이상 둔 남정레가 주위에 많았다. 

 

맷돌질을 하면서 가루만드는 소리를 들어보지

 

“ 이여 이여 이여동 허라 / 이여 이여 이여도 고래(맷돌)

  산댕 허나 못산댕 허나(산다고 하나 못 산다고 하나)/

 

  붉은 양지(얼굴) 지미(기미)나 보라/

  말 몰랑(할 말 못하고) 삼년 살아나 산다/

  이여 이여 요 고래여 뱅뱅이 돈다/

 

  귀막앙 삼년 사난에(귀막고 사니까) 가랜(가라는) 말도 어서 저려/

  이여 이여 이여도 저냑이나 밝은때 허게 (저녁이나 ,하자)/

  본대(원래) 지냑(저녁) 어둑는 집이/

  오널이옌 (오늘이라고) 밝은 때 허라./ ”

 

  연중 밭농사하면서 거름 만들고 풀 매고 육아(참조**) 하면서

늙어 뼈마디 쑤신 몸 갖고 부르는 노동요(노래)다.

  밭농사, 바당농사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여름날 백중 물맞이나,

바닷가 검은 모래 찜질로 치료한 것 같다.

 

  우리집의 경우 년 중 반드시, 900m 고지인 성판악 어승생,

돈네코, 바닷가 소정방폭포 등에서 며칠 씩 물맞이 했고

표선리 해수욕장에서 검은 모래찜질했다.

  제주어로 보재기란 단어가 있다.

해녀하면 대부분 전복이나 소라 등을 따는 여자라고 생각하나

보재기란 복작우 • 포작간이 변한 말로 ,

일반적으로 고기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어부이면서

전복 따는 일을 주로 하는 남자 어부를 말한다.

 

  잠녀(해녀)의 경우 밭일이 하면서

년중 물때가 되면 물질(바당일)로 해초를 딴다.

전복이나 소라 등을 따는 것은 헛무레라하여 주업무가 아니다.

 

숙종5년 정의현감 김성구의 ‘남천록(1679년)’에 의하면

전복이나 소라를 따는 일이 1620년 이후 남자에서

여자에게로 대체된 것은 유교 영향이라 한다.

제주산 진주의 경우는 자연산 조개에서 캔 것이 아니라

전복에서 채취하는 것이다.

 

기지하겠지만,

진주(참조**)란 전복 속에 이물질이 들어가 이를 전복이

뺏어내려는 과정에서 분비 형성된 유기물(콘키올린)과

탄산칼슘(아라고나이트)이 층을 이루는 것이다.

 

전복 종류에는 말전복 • 참전복 • 오븐제기 등이 있고,

둥근 전복으로 껍질이 얇은 참전복에서

진주가 난다고 한다.

제주의 자연산 진주는 무핵진주로 색상과 광택이 뛰어나고

무지개색이 나오는 ‘진주계의 신데렐라’라고 불린다

 

보통 지름이 10mm를 너머 섰다고 했다.

요즘 양식되는 애월리 앞바다 진주는 5년 정도 키우면

13~15mm정도 크기가 나온 다고 한다.

 

잠녀의 주업인 물질(나잠업)이 어떻게 어떤 일인가를 알려면

먼저 물때(潮汐조석) (참조**)개념을 알아야 한다.

 

물때가 다른 이유는 달과 태양의 인력이 원인이다.

이는 보름달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달이 지구 주위를 타원형으로 , 지구가 태양을 타원형으로 돌기

때문이다. 달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1일 약 15도씩 자전하며

지구를 공전하는데 주기가 27.3일로 매일 50분씩 늦게 뜬다.

 

1일(삭), 2~6일(초승달),⟶8일(반달.상현달),⟶,15일(망.보름달)

           22일(반달.하현달),⟶ ,29.30일(삭.그믐달) ⟶

 

즉, ( 30일.1일.그믐•삭•사리)1일~7일 (죽는 물)

     8일( 조금 ) : 조류 느림 / 물 맑음

     9일~14일(사는 물)

    (15.16일.보름•망•사리) : 조류 빠름 / 물 흐림

     17일~22일(죽는 물)

     23일( 조금 ) : 조류 느림 / 물 맑음

     24일~30일(사는 물) : 조류 빠름 / 물 흐림

 

⟴ 물질은 매달 음력 8일 ~ 13일 = 6일간

                   음력23일 ~ 28일 = 6일간 한다.

 

  만조(들물)에서 간조(썰물)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6시간이니

하루에 만조 ⟶ 간조가 4번 반복 된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 상에 놓이는 날(삭망:초승달.보름달)

에는 해와 달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여 평소보다 물이 많이 모인다

이날을 사리라 하며 조류가 빠르게 흐른다. 백중사리는 위험하다.

 

  그리고 조석차는 동해가 10~20m, 서해가 10m , 남해가

3~4m로 서해를 7물때를 동해와 남해는 8물때를 사용한다.

 

  바다 속 지형, 조류의 세기 , 일출• 일몰시간, 파도 , 물때를 인지

하는 것은 나잠업에서는 대단히 중요하다.

물질 작업장까지는 조류의 흐름을 알고 이를 이용하여 헤염쳐

간다. 썰물나면 동쪽 바당타고 (바다로 헤염쳐가고)/

밀물나면 서쪽바당탄다고 한다. ..

 

    <갓물질 노래>에

 

“ 이여사나 이여서나 / 물이 남져 어서하라

  이여도 사나 / 어서하라

  이여도 사나 이여도 사나 / 물이 난다 싼물 나건

  동바당 타게 든물 나건 / 서바당 타고 이여도 사나 “

 

  파도줄기를 놀, 뉘, 뉫결, 나부리 등으로 말해지는 데

한바다에서 밀려드는 사나운 물결을 놀 혹은 너울이라 한다.

 

  뉫결은 ‘물살이 일어나는 것’, 뉘는 ‘잔잔한 물결’,

물살이란 ‘물이 흐르는 힘‘, 물말은 ’ 물이 흐르는 속도‘을

이뤄는 말로, 물살이 시다(세다)

물말이 싸다(빠르다) 등으로 말하며

 

놀, 눗고개, 누 너울은 ‘사나운 큰 물결’,

눗둥이, 눗뎅이는 ‘ 사나운 큰 물결덩이를 말한다.

웨살이란 7물 ~ 8물 기간까지 물결이 거칠어짐을 말한다.

 

  물질에는 정해진 바당(어장)에서 때에 맞추어 하는

미역, 우미등 해조류의 채취는 고정적인 수입원이 되는

반면 , 소라, 전복 등 복족류를 채취하는 일은 헛무레로

수심이 깊어 매우 위험한 경우가 많다.

 물속의 위험은 날카로운 바위, 물뱀, 쏘는 고기, 벌래(늣),

부서지는 물살, 밝고 어두운 기상상태 등에 의한다.

  계속해서 헛무레 예로

신화적인 인물인 제주목사 이형상의 “탐라순력도”

병담범주(참조**)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 탐락순력도는 숙종28년(1702년) 이목사가 제주도를 1달여 순력

후 지역의 여러 상황을 28폭의 그림에 담아낸 총 41면의 도첩이다.

병담이란 ‘취병담’으로 지금의 용연을 말한다(참조**).

취병담 뱃놀이는 음력으로 3월24일에 제주목사들이 부정기적으로

열었던 연례행사로 물때는 조금이다.

  도면 오른쪽에 잠녀들이 헛무레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전복(빗)•해삼(미)를 잡게하여 쌀과 콩으로 바꾸어 주고 향연에 쓰였다.

 

  문제는 복과 해삼은 양행성으로 낮 동안에는

깊고 어두운 곳에 숨는 데 있다..

흰 소중기 물옷만 입고 차가운 물속에서 빗과 미를 잡는 일은

힘이드는 일이다. 

 

  이시기(봄) 물질하며 입은 물옷에 주목해 보자.

그런데 1913년 감포에서 日人이 찍은 잠녀 사진(참조**)이나

1931년에 펴낸 수산월보(참조**)를 보면 잠녀들이 작업 시

물소중기만 입고 작업을 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제 잠녀들의 물질 모습을 들어보자

“ 열살만 넘어가문 소중의 입엉 동그랗케(확실히)

  이녁 학비는 벌었주,

  처음에 물질 홀 땐 우선 휨(수영)부터 배와 낭

  눈썽 조깡이(겨드랑이) 까지 오는 바당에서 숨들엉(잠수해)

  바닥에서 돌도 일러보곡, 물 소곱에서 오래 존디(견디)는

  연십도 호주기, 경허영 어느정도 익숙으면,

  족은 테왁에다 종게호미 골갱이 가정 물에 들엉

  메역이나 정각 ,톳 ,몸 같은 걸로부터 조쿠제기(어린 소라)

  까지 잡는기라, 더 익숙어가민 호꼼 더 짚은 더레 강,

  하간거(여러가지) 잡아, 예픈 바당에서 초초 짚은 바당다레

  강 ,지 어멍이나 성(언니) 호는 거 보멍 배왕,

  상군잠수(최상급 잠녀)가 되는거 난 상군 잠녀가 뒈영,

  그 모을(마을)에서 벌이가 시원치 아니 하문

  육지나 일본더레 물질호영 돈 벌레 갓주.”

 

“ 이제사 고무 잠수복 입주마는 엿날은 소중이 하나 입엉 ,

  큰큰한 웨눈(수경) 바당물에 싯엉 , 테왁 띄왕 호미에 빗창,

  웨소살 가정 물에들어 , 짚은 바당에 휘어강, 돌을 일르거나

  해초 트멍 더둠으명 전복, 구젱기 조물곡 , 물꾸럭도 잡곡,

  미나 구살 같은 것덜 한굿들로 잡는거라.”

 

  연노(82세)하신 잠녀가 곧는(말하는) 말이라 독해가 쉽지않치만

나중에 잠녀 방언(전문어)을 조금 적어놓겠다.

 

  제주 여자들은 7~8세 쯤이면 수영을 배우게 된다.

12~13살 되면 어머니로부터 두렁박을 받아 얕은 곳에서 부터

깊은 곳으로 헤엄치게 되며 15~16세가 되면 바닷속 물질을 시작

하여 비로소 잠녀로 성장한다.

 

  다음은 1939년 15세 때부터 물질 시작하여 27세에

경남 가제도로 출가한 조천 출신

해녀(이기순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문: 물질은 제주도에서 배우고?

  답: 제주도에서 물질이야 우리 마을에선 머 전부 옛날이사

      무신, 한집에 물질 뭐 너 다섯썩은 다 메누리고 똘이고

      손지고 다 헐 때니까 뭐 잘허긴 잘했지.

      섣돌에 저 몸빼 하나 입고 왹양목(玉洋木) 적삼 하나 입고

      떠나 온 거 죽지 못하고.

 

  日政下에 일본 잠수기선이 남획으로 어장이 황폐화로 출가부터

4.3 사건 이후 남편과 사별 등으로 고통과 생활고 ,본토인과

갈등 등을 이야기 했다. 해녀들의 생활상과

생존의 몸부림이 보여지는 내용이었다.

  1910년 한일합방 후 일본인들이 한반도로 출어하게 된다

1880년부터는 일본 잠수기선 137여척이 한반도에 출어했고

제주에는 1884년부터 나가사끼 잠수기선단이 입도했단다.

 

  남획으로 어장이 황폐해짐에 따라 1915년 경에는 출가해녀

수가 2500명이르렀다고 한다( 석주명의 ‘제주도 수필’ 1968년).

출가물질(참조**)이란 제주해협을 너머서 다도해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 중국 청도 대련 , 러시아 블라디보스톡까지

작업영역을 넓여 원정 물질을 말한다.

 

  출가물질 時는 각 지방의 유지가 주변 바다의 권리를 사고

제주잠녀의 인솔자(상군잠수)에게 전도금을 미리주고 작업을

시켰다.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잠녀가 그룹을 만들어 함께

가는 데 30대 이상은 기혼이 많아 돈으로 남편을 설득했다고 한다.

 

  물소중이(참조**)는 제주 특유의 여자용 하의 팬티로 무명이나

삼베로 만들고 옆이 터져있고 폭이 넓고 길이는 무릎까지 내려옴.

 

  물적삼은 흰 무명 웃옷으로 1935년 이후에나 가능했다.

물수건(참조**)은 바람 과 물 흐름이 쎄서 모자용으로 만든

수건으로 흰 광목으로 만들어 쓴다.

고무 잠수복(참조**)은 1970년 이후에 가능했다.

 

  물질 관련 도구와 용어를 적어 본다.

   태왁 : 박의 속을 꺼내고 구멍을 막아 바다에서 타는 것

   망사리 : 억세풀의 속겁질로 그물 모양으로 짠 것

   걸망 : 감태나 듬북할 때 사용하는 망사리

   정개호미 : 모자반이나 톳 또는 미역을 벨 때 쓰는 낫 모양 호미

   큰눈 : 물안경 족세눈 : 소형 쌍 안경

   질구덕 : 물질 기구나 채취한 해산물을 넣고 다니는 대바구니

   소살 : 작살

   밀 : 귓 구멍 마개

   골각지 : 호맹이라고도 하며 오분자기나 성게 문어 채취용 호미

   조락 : 작은 망사리

   곰새기 : 돌고래

 

   여(섬) : 물에 잠긴 바위, 썰물에 보임

   너븐 여 :넙적 평퍼짐한 모양의 바위

   덕 , 코지 : 육지에서 바다쪽으로 길게 뻩여 있고 물위에 보이는 바위

   앞바르 : 가까운 바다

   잠수녀 : 해녀를 주로 실어 나르는 일하는 배

   하늬보름 : 북풍

   갈 보름 : 남풍

   도깽이주제 : 회오리바람

   둥근새 : 오랫동안 세게부는 바람

   늣 : 쏘는 물벌래

   본조갱이 : 전복 껍질

   엉 : 바위그늘 벌레: 현무암 돌무더기 암반

   구두미(참조**) : 물가로 난 갓물질, 벳물질 출발하는 구조물

 

  그러면 잠녀의 물질소리(갓물질, 뱃물질)에서 삶과 애환을

  들어 살펴보자

 

      [ 상군의 능력 자랑 ]

  “ 열다섯에 물질 배왕 / 스물다섯 나난 상군하여

    완착 뚝지에 테왁 메곡 / 혼착 손엥 빗창을 심엉

    한질 두딜 들어가니 / 전복을 딸가 구쟁일 딸가

    이어도 사나 / 져라 쳐라 ”

 

      [ 간난함과 남편에 대한 애환 ]

  “ 물로 뱅뱅 돌아진 섬에 / 삼시 굶엉 무레질 헤영허

    한푼 두푼 번 금전 / 정든님 술값에 다들어 간다

    이여사나 이여고 사나 ”

 

     [ 육아로 조기 귀가 원함 ]

  “ 어서가지 어서가자 / 어서가 우는 여기

    젓을 주엉 조녁밥은 / 볽을 때 지영 머자구

    혼저 어서 재기지라 /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

 

     [ 잠수의 어려움 혼신을 다함 ]

  "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 요내저성 어딜가리

    요물아래 은과 금은 / 높은 낭에 열매로다

    젊은 기심 놓았다가 / 집을 사랴 밭을 샤라

    놀리대로 놀려 보자 / 이어사나 이어도사나 “

 

     [ 돈벌러 출가물질 와서 ]

  “ 산도 설고 물도 선듸 / 어디랴 일로 와시니

    돈 일러라 돈 일러라 / 말 모른 돈 일러라

    돈의 전체굿 아니면 / 내가 요디 무사 오리 ”

 

    [ 뱃물질 큰 파도 지날 때 ]

  “ 이여싸 이여싸 / 요 놋뎅이 뭣을 먹고

    둥긋둥긋 쏠져 싱고 / 바람통을 먹어 싱가

    구름통을 먹엇던가 / 둥굿둥굿 잘 올라 온다

    이여라차 이여차 / 잘도 간다 요년 덜아

    일심 동력 젓어 줍서 / 이여사나 쳐라 쳐라 “

 

  정약용(1762~1836)은 그의 저서 ‘경세유표’에서 “제주도산

미역은 조선사람 절반이 먹는다.”라고 했던 제주미역도 호사다마

과정일까 . 동해안과 서해안에서 미역양식이 성공하게 된다.

1973년에 일이다. 결국 바다농사도 시들하게 되나 , 다행히 이즈음

귤농사가 호황을 누려 귤낭이 대학낭(나무)이란 별명을 얻게 된다.

 

  이처럼 탐라 여성의 강인한 생활력은 고려 , 조선 , 일제 강점기

그리고 근대까지 무수한 가정적 사회적 지리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여 제주인의 저변적 생명력이 되고 있다.

 

  노오란 유채꽃이 서귀포 칠십리 바닷가를 수놓고 해풍이 향기롭게

불어올 때 쯤 가파도( 참조**)는 온통 청보리로 울렁인다.

    청수염 힘차고 알알이 보리알 빼곡한 보리송이 송이

    찬 해풍을 이겨낸 강인함을 본다 푸른 생명력을 본다.

 

    해변이 손짓하는데 / 바다가 슬렁이는데

    갈매기 푸른 물결헤치고 / 소라고동이 모래를 수놓는데

    삶에 부은뭉실한 몸이지만 / 하나 둘 껍질벗는 몸짓으로

    시간이 지나는 모래밭에 / 알몸으로 물개가 되고 싶다

 

  청청한 보리밭 속의 누드로 향토적 에로티시즘을 보여주는

‘보리밭의 이브’ (참조**)시리즈의 고대교수 이화백은

‘ 보리밭과 여체를 통해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인습에 저항하는 여성상 , 그 너머 한의 정서 ,

  강인한 생명력‘을 미적으로 승화시켜

  삶의 현장에서 투철하게 살아가는

  희망을 가진 여인의 감성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의 토속신앙의 대상은 삼신신앙에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숫자 3(심)과 흰색을 면면이 사랑해오고 있다.

흰 옷, 하얀 종이, 흰 쌀 , 은하수

 

투명한 흰색은 빛의 삼원색이다.

빛은 생명이다.

 

흰쌀이 상징하는 알곡은 씨앗을 의미 한다.

 

고구려 시대의 숫자 삼은 밀(밋)mir 라고 했다 한다.

밀mir은 물을 의미한다. 미(매,메)로도 썻다 한다

미(해삼), 미나리 , 밋그라지 등에 나온다.

 

즉 셋 과 샘은 같은 어원(語源)이다.

 

밀=미르 , -밀 로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미르 진 미르 辰 은 별(星)을 뜻한다. 미리 내는 은하수다.

미르는 용이다 그러니 셋, 샘(물), 미르(용)은 하나가 된다.

 

 흰 옷을 입고 정화수를 떠놓고 북극성에 기도하는 어머니를 그려보라

그렇다 흰색은 생명이다 , 물도 생명이다 씨앗도 생명이다.

 

   1 (하늘 • 빛 • 父) 과 2 ( 땅 • 물 • 母 )가 어우러져

   3 (인간 •씨앗 • 子)되는

구조가 우리의 토속신앙이다.

 

  혼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 선화봉사 고려도경’이라고 한다.

이책은 고려 인종1년(1123년)에 송나라 휘종의 사신 노윤적을 따라

고려에 온 문신 서긍(1091~1153)이 쓴 보고서(40권 .권22.23.잡속)

로 고려를 비밀리에 정탐한 기록(참조**)이라 한다.

 

 내용 중에 ‘ 남여 혼욕은 동남아 저지대 화산지방의

               모계사회 민족의 특성 ’이라고 했다.

 이보서는 1126년 금나라가 송의 수도함락 시 소실되어

 그 내용만 남아 있고 그림은 없다한다 .

  승류억불 정책으로 일관했던 조선과 달리

고려시대에서 여성의 역할이 남성과 동등했고 자유분망했으며

성적으로도 개방된 사회였다.

 

 특히 , 탐라국의 경우 원나라에 100여년 이상 직할 식민지로 있으면서

몽고인과 혼인과정으로 동화됐고 , 원래 고대 탐라사회가 모계사회였음

을 고려해 보면 혼욕하는 일이 근세까지 이어져 왔다고 생각이 된다.

 

      상끗한 비바람 내음

      장마전선 움직임인가

      문득

      갯내음 코에 그립다

     여름 자구리 용천수

 

아득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어린 시절로 돌아 간다.

 

     한여름 땅거미 내리면 사람들이 하나 둘씩

     해변가 용천수 샘터로 모여 들어 온다.

 

    노천탕에서는 돌로 경계선 만든

    이쪽 저쪽에 남성 여성 편 갈라 씻고 마시며

    건너다 보며 늦도록 즐기던 그 때가 그립다.

 

    신화 속 날개옷 벗은 선녀들의 목욕이다

 

   유치원 없던 시절 ,  여름가고 찬바람 불면

   미역이 싱싱해지고 살져    ,바당이 부르면

  항시 귀여워해 주던    ,  이웃 이모들 따라

  갯가 불덕에서 미역귀 구어먹던 때가 그립다.

  뒤돌아 피어논 모닥불에 적은 물옷 말리며 웃던

 

  둥근 보름달이 햐얗게 휘영청 떠오르면

  어린 시절 두르미 , 개 주변 불덕에서

  탁탁 하고피어 올라오던 모닥불이 그립고

  신화처럼 흰두렁박 같은 향토색 엉덩이

  터질 듯 알알이 영그는 흰 에로티시즘에 잠긴다.

 

  물빛은 하늘 빛을 닮고,  하늘은 물빛으로

  다시 푸르러지듯 ,  둥글고 둥근 보름달 빛으로

  우유빛 같은 , 은하수의 빛으로 , 나의 가슴속으로

  몽롱하게 다가와 , 손에 움켜진 모래알처럼

  뒤돌아 본 지나간 세월이 ,덧없음을 너머

  햐얀 물결처럼 커다란 울림과 그리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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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18.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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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