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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란/ 말없이 떠날 때도/ 가슴은 찢어진다
이별이란 / 예정된 일임에도/ 쓰라린 아품이다
사랑이 움터올 땐 내일만 보이더니
사랑에 빠지면 오늘만 보인다고 하며
사랑이 떠나면 아쉬움에 어제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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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승연은 남달리 허스키한 목소리가 유난히 짙다
이승연은 1967년 신세계레코드사를 구경갔다가, 우연히 기획자 이동훈씨에게 눈에 띄어
발탁된 가수이다.
"뛰울 수없는 편지"로 컴필레이션 앨범에 수록되면서 데뷔하게 된다.
작곡가 남국인이 1974년 오아시스레코드사와 계약을 맺고 음반제작에 들어갈 때,
그의 첫 음반에 가수 이승연이 선택된다.
1974년 11월 이승연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잊으리"가 발표되 70년대 최대의 발라드
히트곡 중의 하나가 된다
이 노래는 1964년 박성복감독의 작품인 영화<보고 싶은 얼굴>의 주제가였다.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 콤비인 신성일 엄행란이 주연으로 나왔다.
현미하면 작곡가 故이봉조(1931~1087년)씨와 때어놓고 논할 수 없다.
왜냐면 이봉조씨와는 당시 가요계의 소문난 명콤비면서 잉꼬부부, 천재적인
비범함과 예술성을 지닌 로맨스 음악커플이었기 때문이다.
1962년' 밤안개'를 시작으로 '보고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아빠 안녕'등으로
잇달아 히트곡을 내놓아 세간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던 시기에 나온 노래다.
배호(1942.4.1971.11) 데뷔 "두메산골"
본명은 배신웅, 1963년 김광섭 악단과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치며 노래를 시작함
1964년 12인조 폴밴드 구성 , 같은 해 "황금의 눈"으로 가요차트에 진입했다.
이 곡은 1968년도에 발표되었다.
이 노래는 1071년 컴벌레이션 앨범에 수록되 이승재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으로
작곡가 김희갑씨가 작곡했다. 이작품으로 이승재씨는 1972년 주간경향배 팝콘테스트에서
남자포크상을 수상했다.
가수 이승재는 1979년 당시 연애가를 휩쓴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활동을 잠시 중단했으나
1984년 구창모가 작곡한 '아득히 먼 곳'으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나, 그 후 부인과 함께 다닌
교회 덕(?)으로 목사 안수를 받아 복음성가 가수로 변신했으나 최근까지 별다릉 활동기록이
없다.
임희숙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1969년 '그사람은 떠나고'를 통해 가요계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진정 난 몰랐네', '하나의 사랑은 가고' 등 많은 히트곡을 냈으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24살에 결혼했지만 5개월 만에 파경을 걲었고, 이후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날개가 꺽이고 만다.
아침마당에 출연했던 임희숙은 " 신중현 단체에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대마초를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나는 결코 하지 않았다." 주장했으나 사회는 한동안 냉담했었다.
재즈풍의 멜로디와 임희숙 특유의 호소력 짙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소올계를 리드했던 그녀가
긴 공백을 깨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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