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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로마시대로 부터 전해 내려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 ‘하나’
다모클레스(Damokles)는 기원전 4세기 전반 시칠리아 시라쿠사의 잔인한
군사 독재자인 그리스인 디오니시오스 2세의 측근이었던 인물이다.
어느 날 디오니시오스는 다모클레스를 호화로운 연회에 초대하여
그가 늘 부러워하던 좌중의 중심 권좌에 앉혔다,
그런데 그가 앉은 좌석 바로 머리 위에는 한 올의 말총에 칼 매달려 있었다.
연회가 끝난 직 후, 좌불안석하던 다모클레스에게
디오니시오스가 연회는 충분히 즐겼는지 물었다,
“칼이 떨어질까 봐 식사를 즐길 수가 없었읍니다”라고 답하자
“나는 그런 위험 아래서 권력과 부를 누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참주의 권좌가 '언제 떨어져 내릴지 모르는 칼 밑에 있는 것처럼
항상 위기와 불안 속에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즉 영광의 자리에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의미다
이 일화는 로마의 명연설가 키케로에 의해 인용되어 유명해졌고,
"Judge no one happy until his life is over" 로마격언으로
'다모클레스의 검(Sword of Damocles)'이라는 이야기로 사용해기 시작했다.
이야기 ‘둘’
리디아의 염색 명인 이드몬의 딸 길쌈과 자수의 명수인 아라크네는
그 소문이 널리 퍼져 숲이나 샘의 요정들 까지도 그 솜씨와
아름다운 용모를 구경하러 오곤 했었다.
누군가 ‘아라크네의 솜씨가 저렇게 훌륭하니 아테나 여신에게 직접 배운 것이
틀림없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직조의 여신 아테나에 비견될 만큼 훌륭하다는 칭찬의 말에
아라크네는 도리어 화를 내며 자신은 여신에게서 배운 적이 없으며 자신의
솜씨를 아테나와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베짜는 솜씨 만큼은 직조의 여신 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평상시 관심을 두었던 여신은 교만한 아라크네의 말에 분노합니다.
그러나 일단 노파의 모습으로 변신한 여신은 아라크네를 찾아가
인간 간에는 경쟁할 수 있지만 감히 신과 대적해서는 안된다고 충고를 하고
아테나 신전을 찾아가 용서를 빌라고 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겁없고 교만했던 이라크네는 노파의 충고를 불쾌해 하면서
여신에게는 용서를 빌 생각이없으며 원한다면 직접 서로 실력을 겨뤄봐도
좋다고 말합니다.
결국은 베짜기 시합에서 지고 불경한 죄와 치욕으로 아라크네는 자살하고
아테나는 그녀를 거미가 되게 합니다.
이야기 ‘셋’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헤라클레스(Herakles)는 제우스와
양부 암피리온의 부인 알크메네 , 미케네의 왕 엘렉트리온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우스가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지어두었다는 그의 이름은
흥미롭게도 ‘헤라(여신 해라)+ 클레오스(영광)’이라는 뜻이다.
헤라는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의 누이이자 아내로서 결혼과 가정사를 주관하는
여신중의 여신이다.
그러나 그리스인(가부장제적 사고)은 남편 제우스의 바람기에 맞춰 이 최고의
여신을 질투와 복수의 화신으로 묘사한다.
말하자면, 헤라클레스라는 이름은 앞으로 태어날 자신의 아들에게 향할
헤라의 분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는 제우스의 비책으로,
그러나 결과는 역효과. 헤라의 미움은 더욱 커져서 헤라클레스는
이로 인해 평생 고난과 역경에 빠지게 된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헤라클레스에게 맡겨진 12가지 과업이다
헤라클레스는 갓 태어났을 때부터 남달랐다.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불사(不死)의 몸으로 만들고자 잠든 헤라의 젖을 물렸는데,
엄청난 힘으로 젖을 빠는 것에 놀라 깬 헤라가 아기를 밀쳐내자
분출된 젖이 공간에 뿌려져 은하수(Milky Way)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청년이 된 헤라클레스는 테바이의 왕 크레온의 딸 메가라와 결혼해
세 자녀를 얻게 되지만, 여신의 간계에 빠져 실성해
아내와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이게 된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는 끔찍한 죄를 씻기 위해 델포이로 향하고,
그곳에서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 밑에서 봉사하라는 신탁을 받는다.
에우리스테우스는 해라 덕분에 왕이 된 자였다.
그는 죄 값을 치르겠다고 찾아온 헤라클레스에게 12개의 과업을 명령한다.
실상 이 모든 것이 해라의 각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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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벌써 중복이고 절기로는 대서이다
퇴근이 늦다보니 어쪄다 관심을 갖고 보는 드라마 ,화정(華政)도 때 맞추어
보기가 어렵다.
바야흐로 여름의 절정을 구사하듯 마른 장마가 연일 연속되어 무더운데
그나마 어제부터는 여름의 백미 ,매미소리가 들려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선조와 광해군 그리고 임진· 정유외란을 겪는 조선백성들을 그려본다,
인조와 소현세자 그리고 정묘· 병자호란을 겪는 조선백성들을 상상한다.
이시기에 선조와 인조의 치세는 한나라 군왕의 것으로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자신의 영달을 도모하는 처세에 불과했다고 본다.
처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혜로운 화정(和政)에 이르려면 사물의 이치나 주변상황을
제대로 깨닫고 현명하게 대처할 방도를 생각해낼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덕정을 베풀 수 있는 군왕의 도를 제대로 수련해서 갖추어야 했었다.
우리는 살면서 지혜가 부족해 절망의 위기와 실패의 순간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에 쳐하고 방황했던 경험을 많이 겪으면서 얼마나
지혜의 가르침에 목 말라했던가.
신화종교학자 조셉 캠벨(1904 ~1987)이 말하는 신화의 여러 가지 기능 중
오늘은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을 임상심리학자 타이비 칼러의 ‘심리치료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 만든
교류분석(TA)에 나오는 에릭 번(1910 ~1970)의 6가지 심리과정 각본 중
몇가지와 대조시켜 살펴보자.
인간의 삶을 심리학적 분석을 통한 삶의 각본 이해하기 첫 번째 이야기는
‘그 후( after )’라는 심리적 각본이다
' 늘 위기를 생각한다 또는 항시 위기를 생각해야한다 '
즉 미래의 일을 미리 걱정하여 , 진정으로 현재를 즐길 수가 없는 벽이다.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인 암시는 대단히 무서운 것이다
삶에서 실패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에게
부정적인 암시를 계속 주입시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능력과 위치에 비해 자신의 자아가 왜소화되어 가기
때문에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오늘 내 삶의 주인이 ‘나’라면 ‘할 수 있음’ , ‘할 수 없음’의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찾고 있으나 살아 있음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적 차원의 삶의 경험과 내적 존재인 마음이 현실 속에서 공명되어야
인간다운 삶을 느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가 있는 삶, 보람이 있는 삶을 우리 모두가 살고 싶어 한다
그런 삶이란 종국적으로는 인간다운 삶으로 결론이 모아 질 것이다
우리는 미덕을 베풀어야 할 선택의 순간에 ‘그 후’의 벽에 부딪쳐
선택을 망설이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작은 것이나마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무력감은 완화되고 심성에
존엄성이 생겨나고 자아의 효율성이 강화된다
어떤 형태의 미덕이건 그 자체가 보상이기 때문이다.
삶에서 그 것이 시련이 형태로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 기회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시련을 두려워하여 도피만 한다면 그 어떤 일도
이루워지지않는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언제 까지나( always)’란 심리 각본이다.
즉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는 사슬’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조직이나 처한 상황에 저항하면서도 불만족스러운 인간관계를 이끌어
,몸 담고있는 직업 등 , 힘든 상황을 계속 되풀이할 필요 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결단을 이끌어 내자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거의(almost)’라는 각본이 있는 데 , 자신의 삶 속에서
일의 결과가 반복적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꼬여 목표달성이
눈앞에서 몇 번이나 실패를 거둡 되풀이 되는 경우 자신의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무의미한 순환의 고리를 끊는 각성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아라크네는 자신의 솜씨를 자만하여, 결국 아테나와 베짜기를 겨루게 됩니다.
아테나는 아라크네의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 노파로 변신하여
여러 번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이 있읍니다.
아테나와의 베짜기 대결 끝에,
아라크네는 올림포스 신들을 비하하는 내용의 천을 짜게 됩니다
천에 그려진 그 비하하는 내용은 엄연히 사실이었고 그 작품은
훌륭했지만 결국은 자멸이라는 자살을 선택하게 됩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나중에(until)’ 에라는 각본으로
‘ ~을 하기 전까지는 ~을 할 수 없다는 ’ 자기 희생의 벽이다.
‘제우스는 알크메네와 낳은 아들 헤라클레스를 사랑하여 뛰어난 힘을 주고
왕위를 약속했지만 아내 헤라의 질투로 이루지 못한다.
헤라가 늘 헤라클레스를 위험에 빠뜨리려 해서 그는 끝없이 모험을 해야만 했다.
후대 사람들은 이 모험을 그리스 신성인 위대한 영웅의 12가지 과업이라 하는데
페르세우스의 후손으로 지혜롭지는 못했지만 인간의 힘과 용기로 엄청난 시련을
극복한 이야기이다.
헤라클레스는 부인 데이아네이라의 어리석음으로 죽게 된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자 사랑을 찾으려 독을 전달한 것이다.
헤라클레스에게 복수하려는 켄타우로스의 거짓말을 그대로 믿은 것이었다.
그는 영혼이 되어서야 헤라와 화해하고 시련으로부터 벗어났다.’
헤라클레스는 해라여신의 무서운 계략으로 델포의 신탁을 철석같이 믿고
스스로 정한 조건에 따라 정신을 옥죄고 몸을 탈진시켜가며
자신의 진정한 행복이나 질적인 삶을 미루어 가며 시간을 보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조건을 만들어 결과와는 상관없이 자아실현을
회피하는 삶을 살았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가 각성해야 하는 것은 현재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인지 , 유익한 것인지 스스로 자신에게 부여한 조건을 조절하고
과감이 행함으로 의심없이 믿었던 신탁의 벽을 깨트리거나 벗어나는 것이다.
에릭 번은 심리적 갈등을 해결하고 자아를 인식하여 자기의 성장을 도모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인간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교류분석에서
기본적으로 전재 조건을 설정했다.
즉,
‘모든 사람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재형성하는 잠재능력을 갖고 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하려는 긍정적인 잠재능력이 있다.’
라는 것이다.
한 인간은 자라며 그가 보낸 성장환경, 그를 둘러싼 부모 친지의 가치관, 그리고
일상의 생활 습관이 잠재의식 속에 깊이 새겨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축적된 경험의 데이터를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잠재의식 속에서
자신의 인생 각본을 만든 다는 것이다.
캠벨은 더하여 ‘신화는 바로 지금 이 시각에 우리가 사는 삶의 구조에 어울리는
수준의 삶의 본을 제공한다.’라고 말한다.
이 본은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
불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오늘에 있다고 한다.
오늘의 삶은 어제의 결과요 미래의 삶 역시 오늘의 결과물이리라.
어제와 내일은 없는 것이다. 내일은 선택에 의해 만들어 가는 것이라 했다.
삶은 어차피 도전에 의한 선택인데 노력함에 생기와 활력을 주는 것이
꿈이라 생각된다.
신화는 이 세상의 꿈, 원형적인 꿈이라 말한다.
인간 삶의 선택 순간에 영적 잠재력을 찾는 실마리 하여 주는 신화에 대해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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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23.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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