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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불화는 고려청자와 함께 한국미술사에서 예술적 기량이 뛰어난
대표적인 장르로 꼽히고 있다
고려불화는 당대에도 중국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일본 사찰의 선망이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작품이 한 점도 없고 대부분
일본에서 전래되어 왔다
현재까지 알려진 고려불화 중 탱화는 160여 점으로 그 중에서 80%가
넘는 130여 점이 지금도 일본의 사찰, 박물관, 개인 컬렉션에서 소장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근래에 일본에서 구입해온 10여 점이 있을 뿐이며
미국 유럽의 박물관에 소장된 약 20%여 점의 고려불화도 대개 20세기 초
일본에서 송나라 원나라 불화인 줄로 알고 구입해간 것이라 한다
조선 초기에 많은 고려불화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일본 무로마치시대(1336~1573)의 외교사절은 대개 승려가 맡았고 이들은
주로 대장경 등 고려의 불교 미술품을 요구했다.
당시 조선은 폐불정책으로 불교 유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일본에게
내주는 것에 별 부담을 없어 태종 때에는 일본 사절에게 줄 목적으로
대장경과 범종을 모으는 일까지 있었다 한다.
일본에 전래된 고려불화 중에 선린외교에 의한 선물이나 정상적인 교역품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고려불화를 보면 이러한 전래품은 거의 없고 명백히 국내에
봉안되어 있어야 할 작품이 많다.
이는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의 대부분이 왜구들이 도적질해서 일본 사찰에
팔아넘긴 것임을 의미한다.
세월이 흘러 일본에 있는 고려불화들은 송나라 원나라 불화로 둔갑하여 인식되
었다. 인본인들의 문화적 선망이 중국으로 기울면서 고려의 ‘수월관음도’는
송나라의 전설적인 화가 張思恭의 작품으로 취급되어 ‘장사공 관음’이라 불렸다.
이렇게 송나라 원나라 불화로 여겨지던 고려불화가 국적을 되찾게 된 것은 일본의
불교 미술사가 구마가이 노부오(熊谷宣夫)가 논문 ‘조선불화징’을 1967에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그는 불화의 畵記를 면밀히 조사하면서 그 중 70여 점이 고려 및 조선의 불화임을
고증하면서 이를 사진자료와 함께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미술사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 괘불로서 고려탱화
탱화는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으로, 실내 봉안용과 야외 법회용 두 가지가 있다.
야외 법회 때 걸어놓는 탱화를 괘불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연등회, 팔관회 같은 축제형식의 법회 이외에도 임금의 장수를 비는
법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한 법회 등이 수시로 열렸고 그 때마다 괘불이 제작되었다.
-. 현존하는 고려탱화의 특징
현존하는 약 160여 점의 고려탱화에는 두 가지 큰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높이 120센티미터, 너비 80센티미터 내외의 아담한 소폭으로 일반 사찰에는
어울리지 않게 작은 크기다.
이는 고려탱화가 사찰에 봉안된 일반적인 불화가 아니라 특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임을 의미한다.
둘째 현존 탱화 대부분이 고려 후기, 즉 13세기 후반과 14세기에 제작된 작품들로
1286년 자회 필 ‘아미타여래 독존임상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14세기, 그 중에서도
전반기 50년 동인 제작되었다.
이는 원 간섭기에 유행한 탱화 양식임을 말해준다.
원 간섭기에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한 권문세족들 사이레서 사찰 안이나 저택
안에 원당을 짓는 것이 크게 우행하고 여기에 봉안되었던 탱화들이 오늘날 전하는
고려탱화가 아닐까 추정한다. 때문에 크기가 아담하고 내용은 구복신앙적이며,
형식은 호화롭고 권위적이다.
수월관음도 김우문 고려 1310년 비단 채색 420 x 250cm 가가미신사(鏡神社)
수월관음도 김우문 고려 1310년 비단 채색 420 x 250cm 가가미신사(鏡神社)
김우문 필 수월관음도
1310년 비단에 채색 419.5 x 254.2cm 고려 김우문 일본 가가미신사(鏡神社)
화기
1310년 5월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발원한 분은 왕숙비이고
화사는 내반종사 김우분 등 4인이다.
1391년 양현이라는 승려가 쓴 양기에 자신 스승인 양각이 가져온 것이 적임
이 수월관음도는 다른 관음도와 달리 도상이 좌우가 다르다.
정교한 필치와 색체감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문양 표현 등에서 당시 화원들이
최고 기량을 발휘해 그려낸 고려불화의 우수성을 잘 보여준다.
화사하면서도 아릅답고 풍만한 얼굴의 관음보살은 복스럽고 눈매와 입술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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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방석이 깔려있는 암좌에 반가좌의 자세로 걸터앉은 모습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얼굴과 가슴 등을 얿은 금색으로 밝게 채색한 관음은 화불이 쓰고 있는 보관 위로
부터 투명한 배일을 걸치고 있는 데 구름문과 화려한 봉황의 금니로 베풀어진
베일은 몸이 비칠정도로 투명하여 오묘한 느낌을 준다
관음보살은 두광을 비롯하여 카다란 원광을 두르고 있으며 오른쪽 옆으로 버들가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뒤쪽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있으며, 암좌 아래 연못같이
보이는 물 속에는 붉고 흰 산호들과 보주로 화려하다.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앉은 관음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선재동자가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두 손을 모아 합장한 경건한 자세로 법을 구하고 있다.
가름한 얼굴과 합장하는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다.
선재동자가 찾아온 시각은 늦은 밤인 듯 화면의 바탕은 어둡게 처리되어 있지만
거친 바위 면은 달빛을 받아 반짝 반짝 금빛으로 빛나면서 몽환적인 분위기이다
수월관음도 헤허 고려 142.0 x 61,5cm 비단 채색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헤허 필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헤허 고려 142.0 x 61,5cm 비단 채색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고려를 대표하는 입상의 수월관음도가 한 점 있다.
일본 센소지에 소장된 물방울 같은 버들잎으로 표현된 광배(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 장식) 속에 관음보살이 서 있다. 화면 왼쪽 아래에 ‘ 해동의 어리석은 중 헤허가
그리다’라는 뜻의 ‘해동 치납 혜허 필’이 적혀 있다.
법을 구하기 위하여 찾아온 선재동자를 수월관음이 자리에서 일러나 맞이 하는
그림으로 오른손엔 버들가지, 왼손엔 정병을 들고 서 있는 자세가 고아하기
그지없다. 가볍게 몸을 오른쪽으로 튼 자세가 부드럽고 버들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는 손 맵시가 아주 유연하다.
금강대좌에 반가부좌로 앉아 있던 관음보살이 마침내 일어나면서 한쪽에 놓아
두었던 정병과 버들가지를 손에 쥔 모습이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2010년 '고려불화대전 : 700년 만의 해후'를 개최하면서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
이었던 최장식은 센소지측에 출품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 상태에서 이 그림이 존재하는지
그 여부만이라도 확인시켜 달라고 요청했는데 응하자 센소지로 달려갔다.
회고담이다
" 일본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아직 한번도 원본을 내보인 적이 없는
작품이 있는 데다, 절에 있는 고려불화들은 신앙의 대상이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며 쉽게 응하지 않았다.
결국 관장인 내가 직접 일본까지 가기로 했지만 여간 부담스러운게 아니였다.
고려불화 명품 중의 명품을 갖고 있는 도쿄의 센소지를 찾아갔다.
이곳의 수월관음도는 일본 내에서도 좀처럼 공개하지 않아 한국인으로 실물을
본 사람이 거의 없다.
주지 스님이 내어 온 '수월 관음도'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세번 절한 다음
무릎을 끓고 합장했다.
물방울 광배 안에 서 있는 관음보살 앞에 찬탄이 절로 나왔다.
관음보살이 딛고 선 연화좌는 물속에서 솟아나 있었고 물결무늬는 먹선으로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물결을 보여 주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처럼 힘 있고 세밀하고 유려한 선,
고구려를 이은 고려가 내게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주지 스님은 "불교 신자냐"며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이렇게 경배할 정도라면 그림을 보내주어도 소중하게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결국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보증을 서줘 700년 만에 현해탄을 건너오게 됐다.
수월관음도 고려 227.7 x 125.8cm 일본 다이토구찌 소장
수월관음도 고려 227.9 x 125.8cm 일본 다이도쿠지(大德寺) 소장
용왕을 곁들인 수월관음도
그림에 관세음보살이 어둠 속의 빛처럼 바위 위에 반가자세로 앉아있고
그 앞에는 버드나무가지가 꽂흰 정병이 , 등 뒤에는 대나무가 그려져 있으며
발치에는 예배하는 중생들이 작게 묘사되어있다.
관음보살상, 금강대좌 유리그릇 속 정병과 버드나무, 두광과 거신광 등은 다른
수월도와 같은데, 공양하는 용왕과 용녀들을 곁들이면서 선재동자는 오른쪽으로
밀려나 있으며, 화면 상단 위쪽에는 파랑새가 부용화를 입에 물고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 이런 구도의 수월관음도는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에 한 점이 더 있을
정도로 아주 희귀한 편이다
이 작품은 채색과 문양에서 구려불화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아주 섬세하여
천의 짜임 무늬가 보일 듯 말 듯 투명하게 표현된 베일, 원색을 사용했으나
거슬리지 않고 부드러운 치마, 마치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듯 몸체와 문양
등에 사용한 금니에서 화려함 보다는 고결하고 수려한 아름다음이 느껴진다.
그림 설명
-. 관세음 보살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두루 살펴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는 대자대비의 보살이다.
보살의 신장은 80억 나유타 유순인데 1000조 4천9백억km 보다 큰 수에 무량무수의
큰 수를 다시 곱한 것이러 한다. 우리를 둘러싼 대자연이 바로 관음보살이다.
-. 연꽃
흰 파도 위에 솟은 연꽃 위에 관음보살의 발이 올려져 있는 데 연꽃은 청정함과
생명을 상징한다.
-. 버드나무가지
옛날에는 버드나무가지로 이를 닦았다고 한다.
때문에 버드나무가지는 청정함을 상징한다.
-. 정병
정병은 관음보살이 항상 손에 들고 있는 지물로 안에 감로수가 들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이 감로수로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갈증을 해소해 준다.
-. 선재동자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의 내용을 배경으로 그려져있다.
화엄경 중에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진리를 찾아 멀고 험한 여정을 떠나는 내용이다.
선재동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만나 그 가르침에 따라 구도의 길로 향한다.
이후 각계 각층의 53명의 선지식을 만나 그들에게 법을 묻는다.
마지막에 보살수행과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만남으로 기나긴 여행이 끝난다.
그 중 대자대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은 선재동자가 만난 28번째 선지식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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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28.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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