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금란굴 돌아들어 총석정에 올라가니, 옥황 상제가 거처하던 백옥루가 헐리고
남은 돌기둥이 다만 네 개만 서 있는 듯하구나.
옛날 중국의 명장(名匠)인 공수(工수)가 만든 공작품인가? 신기한 연장으로 다듬었는가?
구태여, 그 돌기둥을 여섯 모지게한 것은 무엇을 본 떴는가?
고성은 저 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그 남쪽 봉우리 벼랑에 '永郞徒 南石行'이라고 쓴 붉은 글씨는 뚜렷이 남아 있으나,
이 글을 쓴 사선은 어디 갔는가? 여기서 사흘 동안 머무른 뒤에 어디 가서 또 머물렀던고?
선유담, 영랑호 거기나 갔는가? 청간정, 만경대 등 몇 군데서나 앉아 놀았던가?
배꽃은 벌써 지고 소쩍새 슬피 울 때, 낙산사 동쪽 언덕으로 의상대에 올라 앉아,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쯤 일어나니,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여섯 용이 해를 떠받치는 듯, 해가 바닥에서 솟아오를 때에는 온 세상이 흔들리는 듯하더니,
하늘에 치솓아 뜨니 머리털을 헤아릴 만큼 밝도다.
혹시나 지나가는 구름이 해 근처에 머무를까 두렵구나
시선 이백은 어디 가고 시구만 남았느냐?
천지간의 굉장한 내막이 자세히도 표현되었구나.
진주관 죽서루 아래 오십천의 흘러 내리는 물이 그 물에 비친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 차라리 그 물줄기를 한강으로 돌려 서울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관원의 여정은
유한하고, 풍경은 볼수록 싫증나지 않으니, 그윽한 회포가 많기도 많고, 나그네의 시름도
달랠 길 없구나. 신선이 타는 뗏목을 띄워 내어 북두성과 견우성으로 향할까?
신라 사선을 찾으러 단혈에 머무를까?
하늘의 맨 끝을 끝내 못보고 망양정에 올랐더니,
(수평선 저 멀리) 바다 밖은 하늘인데 하늘 밖은 무엇인가?
가뜩이나 성난 고래(파도)를 누가 놀라게 하기에, 물을 불거니 뿜거니 하면서 어지럽게 구는 것인가?
은산을 꺾어 내어 온 세상에 흩뿌려 내리는 듯, 오월 드높은 하늘에 흰눈(파도의 물거품)은 무슨 일인가?
*
**
*
" 바다
겨울바다는
물소리치다 돌아갑니다
아무래도
다시 그리워
다시 오다간 다시 갑디다
섬은
그리움을 갖게 하는 거리에 있어 좋다
섬은
그리움을 이어 주는 거리에 있어 좋다
섬은 항상
그리움이 어려 있어 좋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구절을 읊조려 봅니다.
동해바다는 항시 그리움만 주는가 봅니다
어렵게 동해를 방문해도 돌아 올 때면 뭔가
모자람 허전함을 매번 느낍니다.
사구의 금빛 모래밭을 파도가 끊임없이 핥고
해풍은 바닷내음 숲내음을 사방으로 실고 흐르고
높고 푸른 창공에 조각구름은 어디론가 쉼없이 흐르고
해변은 항시 머무름없는 머무름만 있는 곳인가 봅니다.
제가 쓴 수필( 낙화(떠남) 2007년)의 문구를 적어 봅니다
"
여름이 떠나고 겨울이 와도
모두가 떠난 텅빈 공허가 찾아와도
바다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남는다
머무름 없이 머문다면 그것은 바다이다
그곳에서는 떠남의 흔적이 상처로 남지 않는다
떠남도 머무름도 바다에서는
모두가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
서두에 송강 정철(1536 ~1593)의 “ 관동별곡 ”의 일부 가사 구절을 옮겨보았다.
송강의 시에는 호탕 고매한 그의 시상을 섬세하고 치밀한 기교에 담아서 매끈한
시를 창작해내는 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송강은 26세에 진사시에 일등하였고, 이듬해 별과에 장원급하여 관직에 올랐다.
약기하면 경기도지사(30세), 이조정랑(33세), 홍문관전한(38세), 그리고 45세(1580년)엔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명작 관동별곡을 짓게된다.
선조13년 (1580년) 송강 나이 45세에 관동지방의 광활한 바다와 절경을 유람하고
느낌을 노래한 서정적인 기행 가사다.
동서양파로 당쟁과 반목이 심한 이때 좌의정으로 서인의 우두머리에 올랐으나
동인의 반목으로 49세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나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송강정을 지어서 4년간 머물렀다고 한다.
관동팔경을 관동별곡 여정순으로 살펴보자.
총석정이 있는 북한 통천을 제외하고도 강원도 고성 삼일포에서 경상도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 까지만해도 500리(200km)가 넘는 긴 여정이다.
본인도 여러번 짧은 시간 강원과 경북을 방문했으나 사전에 여정을 잡아
차분히 이들 명소의 청풍 명월을 즐겨보지는 못했다.
팔경의 공통점은 모두 바닷가에 면하고 있으면서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그곳에 인위적으로 설치한 시설물인
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자 ~ 그러면 실경산수 와 근래 모습을 드려다 봅시다.
* 총석정 ( 통천)
북강원도 고저읍의 동쪽 통천 해안가 동해에 돌출한 해식애지대에
주상절리로 솟아있는 바위 기둥같은 절벽위의 정자다.
넘실대는 푸른바다와 구릿빛으로 그을린 듯 6각형의 돌기둥이 여러개
집합되어 절경을 이룬다.
* 삼일포 ( 고성 )
면적이 약 0.7㎢ 둘레가 4.6km 로 고성에서 온정리로 12km 가면 북쪽
언덕너머에 있다.
외금강에서부터 뻗어나온 산줄기 물줄기, 크고 작은 산 등, 잔잔한
호수같은 수면과 섬들 그리고 주변 봉우리 한폭이 동양화다.
* 청간정 (고성 )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해변에 위하고 있다.
해안가 만경대 바닷다 물가에 자리잡고 있으나 현위치하고는 다르다.
* 낙산사 ( 양양 )
전국 3대 관음기도 도량 중에 하나로 신라문무왕11년(671년) 의상이
세웠다하며 858년에 범일이 중건하였다.
6.25.때 소실되어 1953년에 다시 창건하였다 그러나 2000년 4월
원인불명 산불로 대웅전과 주요검물이 소실되 1012년 다시짓음.
양양 해안절벽과 인근산의 소나무가 절경인데 지금은 아니다.
* 경포대 ( 강릉 )
고려 충숙왕13년(1326년) 당시 강원도 안렴사 박숙이 현 방해정 뒷산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 전해짐.
조선 오백년 내내 대도호부가 존속한 강릉의 경포대는 거울같은 맑은
호수와 푸른 바다 그리고 여름밤의 밝은 달과 담소의 맑은 물이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위로는 1508년 강릉부사 한급이 옮겼다고 한다.
* 죽서루 ( 삼척 )
삼척시의 서편으로 흐르는 오십천 푸른 물빛과 솟구친 절벽 바위위에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창건했고, 1403년 태종3년에 삼척부사 김효순이
옛자료를 보고 중창했다고 함.
정면 7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누각으로 삼척부의 관아내에 자리했다한다.
* 망양정 (울진 )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2 번지에 소재
원래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처음 세워졌으나 낡아 허물어지고
성종2년(1471년)에 평해군수 체신부가 광양동 남쪽산 기슭 높은 언덕위에
옮겨놓고 보니 동쪽은 동해와 인접해 망망대해의 은파가 장관이었다 함.
철종 11년(1860년) 지금의 위치로 이건했다고 함.
울진군 남쪽 왕대천이 동해로 흐르는 하구의 남안 언덕위에 자리하고 있음.
* 월송정 ( 울진 )
월송정은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62-2번지 해변에 자리한 2층 누각이다.
고려 숙종13년(1326년) 처음 창건되었고 일재시대에 철거되었다가 1990년에
현위치에 다시 지어짐.
조선 성종임금이 전국 정자 중 제일이라고 했다고 하나 2층 누각에 올라서도
소나무가 앞을 가리어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越松亭 이다.
2014.1.10. 한바다
'삶과 나 > 미술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림과 노출의 미학 (0) | 2015.09.03 |
---|---|
동양화 표현기법(펌) (0) | 2014.01.21 |
한강의 명승명소 (0) | 2013.12.30 |
숭례문 다시 열다 (0) | 2013.05.02 |
수체화의 묘미 (0) | 2011.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