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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나의 이야기

마음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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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골목길 끝나는 곳 돌아 나오면 철도가
숨듯이 엎드려 있다.

멀리서 땅 땅 망치 두들기는 소리 들리고 어디선가
무개차가 돌아 나와 텅 빈 삶을 적재하고
이마 맞댄 내 처마 밑으로
제 힘 다해 키 낮추며 기어간다.

살아온 무게만큼 나무토막, 부서진 안테나,
사금파리, 호루라기 소리, 풍금소리 등 잡동사니를
싣고 새똥이 흐릿하게 앉은 침목 위를
느릿느릿 간다. 맘 놓고 간다.

끝없이 이어진 철로 위 여름도 뒤따라서
짐 실은 당나귀처럼 터덜터덜 제 갈 길을 갈 뿐
이따금 끊기다 이어놓은 희미한 길이다.
그 길 위에서 갈 곳 없는 시간이 막혀 있다.

아직 햇볕이 따갑다고 함석지붕
한쪽이 다 삭은 건널목 초소
간수가 앉아서 졸고 있다.
탕 탕 문 두드려도 나올 생각을 않는다.
아무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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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도원 2 ” / 시인 노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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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暑가 지난지도 사흘 됐고 立秋(금년 8/8)도 멀지 않았다
태풍 개미가 올라오고 있어 또 폭우 준비도 해야 될 것이다
동계 올림픽 유치하려고 유별나게 산야를 파 해치는 공사가
잦아 피해지역이 넓은 평창은 아직 복구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아 걱정이다
올해는 윤칠월이 있어 구월 이십이일부터 팔월에 접어든다
여름이 여느 해보다 좀더 머무르다 갈려나.

살아온 세월 무게만큼 삶의 잔재를 실은 무개열차가 느릿느릿
어디선가 나와 새똥 묻은 침목 위를 키 낮추어 기어간다.
탕탕 망치소리로 들여다 본 열차 적재함 속에는 텅 빈 삶만
실려 있고 멈춰버린 시간 너머 그 철로 위 뒤따라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은 발길 무거운 여름(반복되는 세월) 뿐이다
감정이 극도로 절제된 풍경과 소리로 인해 삶에 대한 비애와
회한의 음영에 감염되어 현대인의 영혼을 생각게 한다.

떠남의 결행은 모두가 꿈꾸는 것이지만 여름의 떠남과 가을의
떠남은 그 의미와 정서가 엄청 다르다
여름의 떠남은 한시적인 조건을 암묵으로 내포하기에 애초의
떠남 자체가 간단히 성립되곤 하는 것이 아닌가
반면 가을의 떠남이란  가을걷이가 끝나버린 들판이 서면
풍경이 주는 것과 같은 비장한 끝나버림에서 경험해야할 그런
, 떠나옴의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두 점이 긋는 평행선은 영원히 만남을 기약해 주지 못하지만
평행선인 철로 위에서의 떠남은 설래이는 만남의 기대를 준다
자신과의 만남이다  존재와의 만남이다

절대적인 가치 아래 일정한 사상체계가 조직되고 그 사상이
사회를 한결같이 지배하던 시대는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가 경제적 혹은 다른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이전까지 존재하고 있던 절대적인 것이 상실되고 온갖 종류의
다양한 가치관이 등장한 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가치의 상대화는 가치의 자기부정이고 가치의 무가치화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과학기술의 진전과 더불어 사회구조는 변화하였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하나의 권위있고 구극적인 세계관이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닌 지금과 같은 다원적 가치가 병존하는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란 무엇인가,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라는
과제에 대해 하나의 결말을 내면서 모든 사람들 스스로 세계
속에서 자기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직장의 어느 직책에서 또는 어떤 사람은 국가
종교 , 조직의 한 일원으로 자기를 귀속시킴으로서 하나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확립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귀속해야할 자기라는 존재는 문제가 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자기라는 존재가 자명한 것일까, 깊이 생각해 보면
다름이 아닌 자기라는 그 자체가 커다란 의문이 될 수가 있고
그러한 자기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생각을 바꾸어 자기에 대해 질문해 보면 명확한 해답을 구하는
일이 용이하지가 않다

그러면 자기는 마음인가 의식인가 ,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
존재방식이 있다
감성, 지성, 이성, 의지 등등으로 나뉜 그 중에 어느 것이
자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여 어느 것을 자기라고
한다면 , 다른 어떤 것은 자기가 아니라는 말이 되는 데
이러한 선택만으로는 확연치 못해 그 것들의 총체라고 말해
보지만 그러면 그 총체로서의 마음이 자기일까,
그러나 그런 총체로서의 마음이라는 것이 실재 존재하고
존재한다면 어디에 있고 속성은 어떤 것일까

앎을 의미하는 판단에 의해 추상화된 思考물이 “ 어떤 것이
있다 ”는 개념이다
앎의 본질이 판단에 있고 판단은 분별에 의하고 분별의 원리가
否定이며 그것이 무와 상통한다고 보면
존재(有)한다는 것은 無와의 관계에 의해 가능한 것일 것이다
全有가 알파와 오메가에 걸쳐 實在의 본성을 지속하는 것이라면
無性 곧 부정성을 자신의 본질로서 갖는 有를 의미하는 것이
半有라 하고 경과를 조건으로 하는 지속을 본성으로 하는
세계가 반유의 세계라면 현존에 안주하지 못하는  
나란 존재는 반유의 한 존재이다
유의 본성이 실재를 유지하려는 지속과 실재의 동질성에  
있다면 반면에 지속 안에 있고 단절로서 사물의 자기소멸을
표현하는 것이 경과로 , 지속과 경과의 그  모순된 합일과정  
즉 , 有化 無化의 과정이 반유세계에서의 사물이 실재하는
존재방식이기 때문이다

가치의 상대화는 가치의 자기부정이고 가치의 무가치화를
의미한다고 했다
가치의 혼돈이 주는 否의 효과는 삶의 의미와 목적의 상실로
이어져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유대와 협력관계의 붕괴를 야기  
시킬 수도 있고 나아가 개인의 자아해체를 우려하게 만든다

가치가 있는 삶을 사는 인간의 마음 또는 의식의 주체를
문학 종교 예술 생활에서는 어떻게 표현되고 추구되고 있나

문학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인간의 두뇌 혹은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감정에 의한
마음과 마음의 교류를 통한 공감인 숭고함, 순수함, 진실함,
행복감, 충만감이다

자기안심, 생사의 초탈, 자기라는 존재 그 자체의 해결을 목표로
삼는 종교에서는 인간의 특수한 속성이며 유일한 것인
신앙 믿음을 갖는 마음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

음악 , 그림 , 무용 등의 예술에서는
소리 도구 몸짓으로 인간 마음에 통해 관중과 더불어 공감하는
아름다움, 신비감, 순수함, 숭고함이다

보편적인 인간의 일상생활에서는 다소간 관습과 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여기서도 이성과 두뇌 보다는 마음의 문을 통한
인간관계 , 즉  상호교류를 통한 감정이나 느낌의 전달을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가치 있게) 표현되고 있다

마음의 주체는 유한을 인식하고 무한( 영원히 정지하지 않는
그 무엇)을 요구한다고 본다.
나(我)라는 주체적 마음과 의식을 존재라는 측면보다는
그 속성 면에서 형태와 내용을 살펴보자.

운전을 할 때 우리는 속도를 내면 낼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많은 것처럼 경쟁에 부댓기며
타성에 이끌리며 대상을 보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오해하게 된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측면에서 몸과 마음이 , 어떤 시기와
장소에 부단히 놓여지게 되고 어떤 경험 혹은 활동을 하느냐
에 따라 여러 개의 마음과 의식을 동시에 갖게 되는데 이렇게
얻게 되는 것이 삼인칭인 나(me)로 객관적인 나인 것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그 이유와 원인을 그런대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면 그 것이 삼인칭 나라는 마음과 의식이
라는 것이다

삼인칭 “나”가 형성되는 이유와 원인을 보면
사회적으로는 유대 혹은 협력관계를 도모하기 위한 문화, 규범
등의 동화이며 문명권에서는 어떤 테두리 안에서 삶과 생활을
하도록 규제 억압하고 권유 강요하는 구성원에 의해 일관된
생활의 형태와 생각의 유형이 만들어지며 보편성 일반성이
자율성 보다 정당하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인정하도록 하는
과정이 그 요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생겨나는 것이다

반면에 마음과 의식이 또 다른 측면인 주관적인 자아는 1인칭
나(I)로 ,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 없이 한 개의 마음과 의식을
갖는 나(我)로 그 속성을 확인하는 방법은 경험, 기억과 정보를
통해서 인데 1인칭 나의 존재는 여러가지 조건 속에서
3인칭 나의 확대에 따라 반 비래하여 축소되는 것 같다
그렇다해도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1인칭 나의
정체인  존재적 의미의 이유와 내용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 반복적인지 일회성인지 등등 ,  자신이 삶과 생활에 대해
참된 평가와 가치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
心佛伋衆生  是三無差別
마음의 본질적인 모습은 근본우주 그대로다
그것은 근본우주요, 佛性이요 眞我이다
즉 , 一切唯心造요 ,萬法唯識이라는 말이다.

이 一人稱 나인 마음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운영체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보자

마음이 외부와 직접 연결되어 의식이 경험되고 그 흔적이
기록되는 부분이 識과 嶪으로
외부와 교환, 감각, 인식행위를 실질적이고 주체적으로
하는 기관이 식이요 취사선택을 통해 사람의 의식에 반영
되는 기관이 업이다

컴퓨터를 예로 말라식(7識), 아뢰야식(8식), 업을 설명하면
말라식(妄識)은 프로그램, 아뢰야식(藏識)은 내장된 메모리
칩이고 업은 전력(原力)이 들어와서 그 프로그램을 작동했을
적에 칩에 기록되어 지는 흔적(과보)이라고 보면 어떨까
생체로 살아남기 위해 말라식(自我)은 소프트웨어로 주어진
어떤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작동명령은 메모리에서
가져 오고  그 수행결과는 또 메인 메모리에 기록된다는 것

말라식은 대상을 명료하게 깊고 강하게 인식하는 마음작용
(思量)으로 아집과 번뇌를 일으키는 주체다
아뢰야식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주체로서 전생의
정신적 신체적 행위를 종자상태로 저장하는 무의식이다
업은 생명과 동시에 시작되고 자기의 편리와 이익을 위한
의도된  행위가 낳는 자업자득과 연관된다 즉,
오늘의 나의 행동이 내일의 내 모습을 결정한다고 할까

마음의 다음 내부 단계가 氣와 靈이다
자연이 곧 인간이며 人身이 곧 소우주로 표현되는 자연과의
合一觀  , 天.地.人 즉 자연이 기라는 고리로 모든 것을
집합시킨다. 기란 모든 존재에 대한 시초요, 기본이며 원리며
생명의 시원이며 기능이다
기의 세계란 물질 생명 마음의 삼계가 하나를 이루는 세계란
것이다
영이란 육체는 없이 의식은 존재하며 영파를 보내는 존재로
어떤 정신적인이며  형용사적인 상징을 나타내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靈氣는 함께 써도 무난하다 하겠다

우주의 본체인 五氣와 五行에는 영기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오기.오행에는 각각 음양이 있어 서로 相生 相剋하면서
질서를 지키며 우주만상이 본체의 영(기)가 되어 운행한다는
것이다
세상만물 인간, 금수, 어류, 곤충 초목 등 여러 사물이 각각
다른 이유는 이 영기의 배분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즉 초목은 음 혹은 양으로만 된 오기오행의 구성체요
불완전 하지만 혼합 비율이 많은 적은 양의 음양의 혼합으로
형성된 것이 금수, 어류, 곤충 등이고,
완전하게 음양이 잘 배합된 집합체가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神은 태양(모든 생명체 에 근원적 原力을 준다)에
깃들여 있고 사람에 있어서의 신은 눈에 깃들여 있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눈(目) 즉 간이라 한다 , 눈이 크면 반대로
간이 적다, 토끼처럼, 肝은 모려(謀慮)를 주관한다 , 간이
적으면 큰일을 도모치 못하고 膽이 적으면 결단치 못한다
즉 간담에 깃든 神은 인간의 마음에 간직되어 사람이 주재
하는 일체의 행위를 주관한다.
신의 범위는 사람의 사유활동( 意 思 慮 智 포함)도 포괄하는
데 거기에는 신의 움직임에 의한 정신활동 생명활동이 있다

생명의 실을 짜고( 클로토 여신), 그것을 끊는(아트로포스 여신)
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모이라(moira)가 命이다
그 뜻은 “ 육신에 할당된 몫 ”으로 그것은 원기와 原情의
결합체다  여기서 정(情)은 밖으로 사물과 접촉에 의한 정신
활동으로 칠정( 肝 心 脾 肺 腎 )을 주관한다
정신의 가장 내부 운영체제에는 神命이 있다

양자 물리학자 마이클 탤보트(Macle Talbort)는 홀로그램 우주
이론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 현상계는 파동으로 기득한
텅빈 공간으로 하나의 완벽한 가상현실이라고 했다
우리의 눈이 느끼는 감각수준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대상의 크기와 정밀도에 맞추어져 있기에 모든 사물이 지금과
같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전체가 된 개체라고 합니다
전체란 곧 우주요 , 영원이요 , 알파인 동시에 오메가입니다
전체란 모든 것이며 일체로서 삼라만상는 다 우주가 만들어
낸 일시적인 모습으로 사물은 다 우주의 분신이자 화신이며
우주의 자식임으로 인간이 자기 안에 들어 있는 우주, 즉
영원한 허공성의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범부의 망상에만 존재하는 실재에는 없는 현상 세계,
즉 헤아리고 분별하며, 집착하여 아는 것만 옳다고 고집하는
마음(妄情) 만이 있는 情有理無의 세계를 넘어 , 우리가 찾는
길 , 영원적인 참다운 성품(圓成實性) , 삶의 신비를 볼 수
있고 참다운 이치만 있는 정신세계 , 情無理有가 나의 마음
과 기억 속에 부활되어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가치로
인식될 수 있는 세상을 그려 본다.

***

 

  2006년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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