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세월이었다
눈과 귀를 이끌고 목마름에 서면 자주 가슴속을
드나들었던 침묵은 미처 못 다한 말이 있는 듯
가을을 넘어가고 열매만이 영웅의 일생을 흉내 낸다
저기 바람불지 않아도 펼쳐지는 시간의 전집은
나의 것이 아니다.
마른 잎이 끌리는 심장의 한 가운데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들은 나의 자식이 아니다
나는 다만 말의 잎사귀들이 서로의 몸에 입김을 눕힐
때 지팡이를 짚은 채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았을 뿐
어떤 뉘우침도 빛이 되지 못했다.
고독한 문들이 기쁨을 기다리며 소유를 주저하지 않고
나를 다녀간 계절에게 홀로 있음을 눈치 채게 하여
업신여김을 받는 동안 시간의 젖은 늘어지고
시간으로부터 걸어 나온 환멸만이 거리를 매운다
어느 듯 평화에 수감된 목쉰 주름에 섞여 눈보라 치는
밤 결빙의 발자국을 따라 간다
언 몸을 녹이는 찻집 허름한 책을 비집고 나온 한 올
연기는 전생을 감아올리다 흰 문장으로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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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신자들” / 시인 박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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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란 한 사회에서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기억된
지식의 집적으로 상식은 창의적인 사고를 저해하는
큰 장애물이라고 한다.
감동은 우리 삶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지만
그래서인지 지식은 감동을 불러오지 못한다
기억이 포도즙이라면 추억은 포도주라 할 만큼
추억은 저장되어서 발효된 기억으로 향기가 있다
그림은 내면에 감추어져 있던 화가의 정열과 요구를
진솔하게 보여준다
그림이 인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파토스적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위의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 혹은
“기억의 지속”으로 알려진 1931년도 작품이다
불길한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해변
멈춘 듯이 고여 있는 바닷물
험준한 바위절벽
마른 나뭇가지 위에 양말처럼 널려진 시계
피자처럼 흐느적거리는 시계
코불소 코에 바닷표범처럼 너불어진 생물
황량한 풍경을 배경으로 피자처럼 늘어진 시계들은
시간이 정지된 악몽같은 상황을 설정했다
의식할 수 있는 시간이 현재라면 현실적으로
외출예복의 필수품인 양말처럼 시간이 널려있다
이때의 시계는 기억의 지속을 상징하지만
엿가락처럼 늘어진 시계는 현실에서는 의미가 없다
시계의 모양이나 과상하게 생긴 생물의 머리부분이
원통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코뿔소의 뿔모양을
하고 있다
달리의 작품 속에 코뿔소의 뿔 형태의 모습들이
많이 등장하는 데 화가 달리에게 코뿔소의 이미지는
낙원을 상징한다고 한다
코뿔소 뿔의 모양은 안에서 솟구치는 거대한 생명의
힘 , 발기 , 생명 연장의 현실적 힘,을 상징한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로는 조절되지 않는 완전한 마비
무의식의 상태에서 인간존재의 이유를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해 준다.
추억은 발효된 지식으로 향이 있어 산문으로 보면 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과거의식이라면
동경은 산 너머 , 바다 건너 멀리
시간의 강을 건너 미래에 있는 것,
현실의 장벽을 넘어 환상 속에 있는 것이리라
지구가 우주의 작은 섬이라면
우리 또한 현실의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일지도 모른다
뭉크는 인간실존이 안개 낀 해변에 외로운 섬처럼
홀로 서있는 인간으로 묘사했드시 오늘 우리들은 서로
복잡하게 얽혀서 살고는 있지만 실은 저마다 섬처럼
살고있지 않을까, 타의에 의해서건 자의에 의하든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외로운 섬이라고 생각할 때, 외로운 섬이
될 수 있고 , 관계가 두절되면 섬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섬은 쉽게 다다룰 수 없는 미지의 땅이다
단절과 고립의 공간이기에 섬은 외로운 부피만큼
그리움이 존재하는 곳이다
인간이 시간의 벽 너머 연원에 이르는 초월에의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온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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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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