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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나의 이야기

차 한잔의 여유(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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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었네
그리움이 출렁거렸네

흐르는 달빛 속
가슴 열고
그대 누운 사랑 안아
영혼을 재웠지만

강가에는
시간을 싣고 간
나룻배
어둠을 흔들고 있었네

강물은
떠날 이별을 사랑했고
나는
짧은 사랑을 그리워했네

**
*** “ 강가에서 “/ 유재원
**

용하게도 장마 비를 안맞고 산행을 끝내고
고속열차 KTF를 타고 차고지 행신역에 도착했다
산처럼 높은 구름다리를 걸어 올라 넘어 조그만 국철역에
도착하니 다음 열차를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다.

철도변 불어난 개울물에 사는 개구리 ,맹꽁이 소리가
유별나다 개구리는 개굴개굴 우는 줄 알았는데 악을
쓰며 울어대는 소리 “갹-갹”은 까치소리 못지 않다

가로수에 앉아 우는 매미만 악을 쓰는 줄 알았는데
개구리 맹꽁이 지들 부르며 우는 소리 참 대단하다

일전에 우리 매에 대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난개발에 서식지와 사냥터를 잃고 바닷가 해수면을
날다가 갈매기에 쫒기거나, 뭍에서는 까치의 집단 도전에
맥을 못추는 매를 보고는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보았다.

우리들의 삶에 투영되어지는 현대문명 이기의 역기능을
심도있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의 기능만을 힘의 논리로 밀어부치니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욕의 지배아래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현대 거대자본주의 문명, 서구식 산업주의적 개발이란
본질적으로 특권적인 소수의 단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대다수의 사회적 약자와 자연을 구조적으로 착취하는
매카니즘으로 그 속성이라는 것이 점점 입중되고 있다.

요즘 한창 지하철 역사 벽에 많이 븥여져 있는 난공불낙의
요새 마지노선(전방 방위선)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차대전 시 독일에게 당한 아픔을 되 세기며 종전 후
당시 프랑스 육군장관 앙드레 마지노가 1927년부터
10년간 공들여 쌓아놓은 대 독일 방어진지는 막상 전쟁이
벌어지고 , 1940년 5월 독일이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통해
우회공격에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프랑스는 속수무책이었다
급변하는 시류 속에서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지 않는 다는
보장은 이미 없다

영국황실을 수호하는 포병대의 시범훈련에 많은 구경꾼이
모였다고 한다
담당장교의 지시 하에 여섯 명이 한조가 되어 일사분란하게
기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던 구경꾼 중 이 시범훈련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고 지휘관에게 문의를 한 사람이 있었다
내용인 즉은 보병 다섯은 포 조작하느라 바쁘게 돌아가는데
그중 한 병사는 좀 떨어진 곳에 아무런 일도 않고 왜 그냥
서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 물음에 지휘관은 즉시 대답을 못하고 급히 오래전부터
내려온 훈련교본을 조사해 보니 , 그 한명의 직무는 포를 끄는
말들이 발포소리에 놀라서 달아나지 않도록 말들을 잡아두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그 여섯 번째 병사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사실 본인도 월급봉투를 받아본 기억이 까마득하다
그때는 봉급봉투라 그랬다 봉사해서 받은 급료라는 것이다
보너스를 포함해 회사에서 받는 노동의 대가는 회사에서
집의 통장으로 고스란히 송금되고 가사의 크고 작은 지출은
부인을 통해 이루어지니 가장으로서 아빠의 권위는 퇴색됐다

아파트가 주택의 주류를 이루고 핵가족화를 선호하게
됨에 따라 대가족 안에서 경험과 삶의 지혜로 존경받던
노인의 자리는 그 설 자리를 이미 잃어 버렸다
산업사회의 급속한 변화의 메카니즘으로 노인들의 경험가치
는 더 이상 유용성이 없어지고 방치되는 아이들과 함께
노인은 가족 속에서 짐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것 같다.
우리사회에서도 이제는 가족관계 속에서 공동운명체라는
공동체의 감각을 점차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IMF를 겪으면서 일자리가 귀해지고 여성인력이 대거
사회로 인출되면서 ,한때 사오정, 오륙도란 유행어가 난무(?)
했다. 사실 춘투 시( 노조의 인금인상 협상은 봄에 시작됨)
협상 테이블에서 과장급 이상 간부 한사람이 유능한 신입사원
세 명분의 임금을 받는다고 은연중 암시하며 연륜이 대접받던
시대는 갔다는 이야기를 회사로부터 거리낌 없이 들었다

언제 우리는 몸과 마음이 다급해짐을 느끼는가
리처드 칼슨은 삶의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세 가지의
함정으로,
자기문제와 인생을 분석할 때, 현재의 순간에 벗어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책망할 때,
그리고 과거 속에 살 때라고 지적한다.

우리들은 왜 그렇게 쉽게 삶에 지치는 것일까?
행복과 기쁨에 겨워 살 수는 없는 것일까 ?
이 물음에 대해 세존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 즉 현재라는 찰라의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라고
우리의 마음은 늘 현재를 떠나 과거나 미래의 어딘가를
방황하고 ,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 힘겹게 된다고 하셨다.

삶이란 스스로 살아가는 것으로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스스로 결정한 길을 어떤 느낌으로
사느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매일의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함으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일종의 삶이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사는 예술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삶을 사는
것으로 전적으로 자신의 결정한 삶을 통해
살아가는 즐거움을 스스로 창조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니와사키 준사부로의 시 “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를 감상해 보자.

영겁의 뿌리에 닿아
마음의 귀촉도 우는
찔레꽃 흐드러지게 핀 들 끝
다듬이 소리 나는 마을
나뭇길 지나가는 동네
흰벽 무너지는 거리를 지나
길가의 절안에 들어
만다라의 직물에 빌고
마른 가지의 산이 무너짐을 넘어
수초 길게 비치는 나룻터를 건너
풀의 열매가 고개 숙이는 덤불을 뒤로
환영의 사람이 간다
영겁의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

**

 

2004.7.4.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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