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페이오스는 바다 신의 아들로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어느날 몸이 날래고 거친 알페이오에게도 묵직한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파도처럼 문득 덮쳐온다.
알페이오스가 처음으로 사랑한 대상은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였다.
하지만 아르테미스는 잔혹한 신이었다.
아르테미스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와 함께 결혼을, 그러니까 사랑을
거부한 처녀 신이었다. 아르테미스는 자기의 벗은 몸을 보았다는 이유
하나로 악타이온이라는 사슴 사냥꾼을 사슴으로 만들어 그의 사냥개에게
물려죽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알페이오스는 멀리서 아르테미스를 한번 보고 사랑에 푹빠졌다
그때부터 그는 사냥감을 쫒는 대신 아르테미스의 뒤를 쫒기 시작했다.
그리스 전역에는 이르테미스의 뒤를 쫒는 알페이오스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숲이 없었다.
또한 알페이오스의 쿵쾅거리는 심장 뛰는 소리를 닮은, 그의 발소리를
듣지않은 숲이 없었다.
그것을 이르테미스는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알페이오스와의 숨박꼭질을 끝내기로 했다.
아르테미스는 자기에 대한 그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알고있었다.
알페이오스의 사랑은 사냥의 여신에대한 순수한 매혹이었다.
다만 알페이오스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지 못할 뿐이었다.
아르테미스는 이를 알려주기로 한 것이었다.
아르테미스는 모든 시녀들의 얼굴에 진흙을 바르게했다.
그녀 역시 얼굴에 진흙을 발랐다.
그리고 일제히 알페이오스 앞에 나타났다.
알페이오스는 많은 여자들 속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아르테미스를
찾아내야 했다.
여자들은 진흙으로 얼굴만 가렸을 뿐인데 알페이오스는
아르테미스를 구별하지못했다. 알페이오스는 자기가 연인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진흙뒤로 숨은 연인을 찾아내지 못한 알페이오스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뒤에서 아르테미스와 시녀들이 일제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용기를 가진 남자인 알페이오스에게 보내는
찬사와 애정이 듬뿍 담긴 웃음이었다.
한 번 사랑의 열병을 경험한 알페이오스는 다시 새로운 연인을 찾았다.
사랑 때문에 생긴 괴로움은 또 다른 사랑에 의해서만 치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알페이오스의 가슴을 뒤흔든 이는 강에서 목욕을 하고
있던 숲이 요정 아레투사였다.
매혹적인 아레투사의 벗은 몸은 일페이오스에게 순수한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영혼을 마비시켰다.
알페이오스는 다시 불타기 시작한 가슴을 안고 아레투사의 뒤를 쫒았다.
아레투사는 이런 알페이오스의 사랑이 두려웠다.
그녀는 아직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알페이오스는 무작정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알페이오스는 사냥감을 다루는 일에는 능숙했지만, 사랑을 나누는
일에는 서툴렀다.
그는 애써 아레투사를 붙잡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아레투사를 보고 느낄 수 있으면 족했다.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모습, 나무위에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 장대비가 쏟아질 때 길이 넓은 잎사귀 아래서 비를 피하는
모습들이 그를 설레게 했고, 무엇보다 강에서 목욕하는 모습이 그를 매혹시켰다.
아레투사는 부끄러움 때문에 계속해서 도망치고 숨었다.
그녀는 바다 건너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사냥의 여신 이르테미스에게 일페이오스의 손길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아르테미스는 처녀의 수줍움을 잘 아는 신이었다.
그녀 또한 결혼을 하지 않은 신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아레투사가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를 찾아갔더라면
마법의 띠를 이용해
그녀에게 붉은 사랑의 열매를 주었응 테고,
그리하여 알페이오스와 아레투사는
근처에만 가도 화끈한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정열적인 연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아레투사를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근처에
샘물로 변하게 했다.
아레투사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멈추고, 바람따라 가만이 일렁이는
샘물이 되었다.
사랑을 알지못하는 그녀는 그 뜨거움을 피해 맑은 샘물이 되었다.
알페이오스는 시칠리아와 마주한 그리스의 엘리스에 서 있었다.
그는 넓은 수평선 너머에서 연인이 물로 변했음을 알았다.
하늘과 맛닿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그는 또다시 사랑을 잃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는 물이고 하나는 사람이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이질적인 경계에서 그는 망설임 없이 스스로 물로
변했다.
그는 거대한 강으로 변신해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수백 마일이나
떨어진 시칠리아로 달려갔다.
바다 밑에는 그가 낸 물길이 생겼다.
오랜 여행 끝에 그가 다시 지상으로 몸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시칠리아였다.
알페이오스는 아레투사의 샘물로 솟구쳤다. 그는 처음으로 아레투사를 안았다.
한 치의 틈도 없는 완벽한 결합이었다.
알페이오스는 기쁨과 격정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아레투사를 감쌌다. 지금껏 그어떤 연인도 이룰 수 없었던
부드러운 결합이었다.
아레투사 역시 스스로 물이 되어 자기를 따라온 알페이오스를 더는 피하지
않았다. 둘은 서로를 사랑으로 얼싸안았다.
그녀는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다. 사랑은 상대를 닮는 것이고,
하나 되는 것이고, 상대의 가슴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다.
알페이오스의 변신은 그리스에도 사랑이 축복이었다.
예부터 건조했던 아르카디아에는 늠름하고 강건한 알페이오스 강이
사랑처럼 풍요롭게 흘렀다.
자연을 찬양하는 데 인색한 그리스인들도 알페이오스 강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 << 아레투사 >>
그리스인들은 알페이오스 강을 가리켜“ 사랑을 위한 강”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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