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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각종 정보

유명 컨설팅업체 조심(투자사기)

법조인까지 등친 ‘부동산 대부’
유명 컨설팅업체 대표, 10년간 10개 사업지 개발 미끼로 3천2백억원 끌어모으고 잠적했다 붙잡혀
[1097호] 2010년 10월 27일 (수)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부동산 개발 사업을 미끼로 수천억 원대의 투자 사기를 벌인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가 붙잡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0월13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지난해 말부터 1년여 간 도피 중이던 양화석 21세기컨설팅 회장(64)을 특정경제범죄 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검거했다.

‘21세기컨설팅’은 유사 수신이 고도로 진화된 초대형 ‘부동산 개발 사기’를 벌였다. 사정 당국이나 금융 당국의 눈을 속일 정도로 ‘신출귀몰’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자만 해도 7천여 명, 피해 금액은 3천2백억원에 달한다.

도대체 어떻게 사기를 벌였기에 10여 년 동안 수천 명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일까. 양씨는 언론이 주목하는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였다.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단국대 경영대학원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에서 부동산마케팅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자신을 ‘국내 부동산 박사 1호’라고 포장했고, 언론은 양씨를 ‘1세대 부동산 전문가’라고 치켜세우며 유명세를 타게 하는 데 한몫했다.
 

   
▲ 부동산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경북 청도의 온천 호텔 개발 부지.
ⓒ시사저널 박은숙

 
양씨가 부동산업에 뛰어든 것은 지난 1985년이다. 처음에는 ‘신동아 부동산 중개’라는 중개업소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부동산에 눈을 뜨기 시작하자 8년 후인 1993년에 지금의 ‘21세기컨설팅’으로 사명을 바꾸며 기업형으로 전환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사기 행각에 나선 것은 1999년부터다. 양씨는 강원(강릉·정선·횡성·평창)과 제주(중문·금악·애월), 경북(울진·청도) 등 10여 곳에 리조트나 테마파크 등을 만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양씨는 또 자신의 아들을 법무팀장에, 딸은 홍보팀장에 앉히는 등 ‘가족 회사’로 운영했다.

‘최고의 노하우를 가진 부동산 전문 기업’이라고 홍보하던 이 회사의 개발 사업 방식은 간단했다. 일단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주체는 21세기컨설팅이었다. 하지만 각 사업지의 주체는 21세기컨설팅의 계열사들이 맡는 것처럼 꾸몄다.

투자자들에게는 “값싼 땅을 산 뒤 이 땅을 테마파트 등 명품부동산으로 개발하면 수익이 극대화된다”라고 홍보했다. 또 ‘계약 기간 2~3년 내에 최대 원금의 다섯 배 수익을 보장한다’라고 유혹했다. 이 회사는 이런 광고를 통해 지난 2008년까지 7천명(중복 투자자 포함)에게서 투자금 명목으로 3천2백억원을 끌어들였다.

얼핏 뻔해 보이는 양씨의 솔깃한 제안에 투자자들은 속아 넘어갔다. 서민층은 물론이고 전·현직 변호사, 대기업 간부, 세무 회계사, 대학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 또 고위 공무원의 가족도 일부 있었다. 전직 법무부장관의 부인도 여기에 끼여 있었다. 이들 중 다수는 여러 사업지에 동시 다발적으로 투자하기도 했다.

피해자들과 함께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정용환 변호사도 투자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온천관광지가 조성된다던 제주도 중문에 투자했다. 정변호사는 “양화석씨가 2000년대 초·중반까지 대한민국 최고 컨설팅 개발업자로 알려져 있었고, 언론이 양화석씨와 관련된 논평을 내기도 했었다. 개발 실적도 많고, 거래 실적도 많다고 나오니 믿고 투자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심 아무개씨 역시 이러한 내용을 믿고 투자했다. 심씨는 “(양화석씨가) 부동산 대부라고들 말하니까 믿었다. 그리고 투자하면 3년 뒤에 두 배가 된다고 하니 천천히 기다리자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제주 금악, 강원 정선·평창에 거액의 돈을 투자했다. 금악에는 1천5백만원, 정선에는 부인 명의로 3천만원, 평창에는 형 명의로 1억2천만원을 투자했다. 계약 내용에 따르면 2003년 계약 건은 2006년에 완료가 되어 이익금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심씨는 원금을 비롯해 아무것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2006년에 또다시 투자했다. 그것도 부인과 형의 명의로 1억5천만원을 더 투자한 것이다. 그는 “2006년 말에서 2007년께에 부동산 투자 붐이 일었다. 조금 미루어지는 것이고, 그냥 ‘제주도에 내 땅이 생기는구나’라는 생각만 막연히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땅이 생길 것이다’라는 소망은 헛된 꿈으로 끝이 났다. 투자 모집 당시 21세기컨설팅측은 마치 투자자들이 해당 사업지의 땅에 직접 투자하는 것처럼 홍보했다.

심씨는 “내가 땅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난해 여름에 알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이면 심씨가 두 번째 투자를 하고도 2년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21세기컨설팅이 제시한 계약서 제3조에는 ‘가등기’로 명기되어 있었다. 가등기는 정상적인 등기가 아닌 본등기 시 ‘순위만 확보’하는 임시 등기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땅’의 일부를 직접 매매한 것이 아닌 일종의 ‘펀드 형식’으로 투자를 한 셈이었다. 

   
▲ 2008년 6월12일 강릉 석교 온천 관광지 착공식에서 양화석 회장(왼쪽에서 네 번째), 김종필 전 총리, 최욱철 전 국회의원등이 시삽을 하고 있다. 착공식만 끝낸 채 개발은 중단된 상태이다.
ⓒ강원도민일보

 

1천억원가량 행방 묘연…정·관계 로비설도  

현재 피해자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쪽은 미루어졌던 사업을 재추진해 투자금을 회수하고 개발 이익금을 나누어 갖자는 입장이다. 즉, 양씨의 소유로 남아 있는 4백만평의 사업 부지를 기반으로 21세기컨설팅의 남은 직원들과 힘을 합쳐 각 사업지에 개발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사업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청도 온천관광지는 그들이 적극적으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사업지 가운데 한 곳이다. 지난 10월21일에 찾아간 현장에는 조립식 사무실만 있을 뿐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피해자들로 꾸려진 개발추진위원회 심근훈 위원장은 “장 아무개 교수와 함께 시행 대행사로서 투자자들이 계약을 맺었다.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설계비 미지급 문제가 있지만 시공사가 정해진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장교수는 청도 현장의 시행사인 레드포스의 대표이자 21세기컨설팅과도 계약 관계에 있었던 인물이다.

다른 피해자들은 ‘개발 재개’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정용환 변호사는 “일단 투자자들이 본등기로 바꾸는 소송을 해야 한다. 그래서 투자자가 직접 땅의 주인이 된 다음에 개발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피해자인 신 아무개씨는 “무조건적으로 개발을 재추진해서는 안 된다. 일단 양씨가 숨긴 돈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개발에 탄력이 붙을 수 있을 것이고, 피해자들이 추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 줄어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 조사 결과 21세기컨설팅이 관계 회사 대여금·사업비·토지 구입비 등으로 1천억원, 양씨와 직원의 수당 1천억원, 땅을 사거나 계열사 유상 증자 등에 사용할 목적으로 빼돌린 1백51억원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1천억원가량의 행방이 묘연하다.

제주 중문을 비롯한 사업지 두 곳에 투자한 한 피해자는 “지난해 초 양화석 회장이 나에게 ‘전 제주도지사 선거에 수십억 원이 들어갔다’라고 말했다”라며 정·관계 로비설을 주장했다. 검찰은 1천억원가량의 돈이 정·관계 로비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