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나라에 전깃불이 처음 들어온 곳은 1887년 3월 경복궁 안 고종의 처소인 건청궁이다.
이후 도시를 중심으로 급속히 전기보급이 늘어났지만, 농어촌까지 모두 전깃불이 들어온 것은 1980년대 초라고 한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 삼천리 방방곡곡의 밤은 ‘칠흑 같다’는 말 그대로였다.
가물거리는 호롱불로 어둠을 밀쳐내던 시절, 밤을 환하게 밝혀줄 불빛은 귀중한 희망의 상징이었다.
《금오신화》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에는 용왕의 초청을 받아 용궁에 들어간 한생이란 선비가 돌아올 때
야광주(夜光珠) 두 개를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야광주가 오늘날의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둠을 밝히는 물건은 귀하디귀한 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야광나무는 밤에 야광주와 같은 빛을 낸다는 뜻이다.
봄이 무르익는 5월경 야광나무는 온통 흰 꽃으로 뒤집어쓴다. 잎과 함께 피므로 초록색이 조금씩 섞여 있기도 하지만,
온통 새하얀 꽃밖에 보이지 않는다. 키 10여 미터, 지름은 한 뼘이 넘는 경우도 있어서 제법 큰 나무에 속한다.
별빛도 없는 깜깜한 밤의 야광나무 꽃은 주위를 밝혀주는 야광주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야광나무는 중부지방의 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으며, 화려하고 예쁜 꽃으로 벌을 불러들여 수정을 하는 대표적인 충매화다.
꽃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고, 다섯 장의 꽃잎이 펼쳐지면 지름이 3센티미터 정도 된다.
잎은 어긋나기로 달리고 타원형으로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열매는 굵은 콩알만 한 크기이며 붉은빛으로 익으나 때로는 노랗게 익는 경우도 있다.
긴 열매 자루에 3~5개씩 밑으로 처져 초겨울까지 매달려 있어서 산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비슷한 모양의 아그배나무가 있다. 야광나무는 잎 가장자리가 갈라지는 일이 거의 없으나,
모양새가 비슷한 아그배나무는 가지 끝의 새로 난 잎이 깊게 갈라져 손쉽게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다.
야광나무는 홀로 자라기를 좋아해 무리를 이루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몇 년 전 지리산 천왕봉 아래서 300여 그루의 야광나무 군락지를 찾아내기도 했다.
야광나무는 열매의 크기나 색깔이 사과와는 다르지만 사과나무와 같은 집안이다.
사과나무를 접붙일 때 흔히 밑나무로 쓰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