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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미술관련

동궐도

 

 

 

 

*

 

동궐도 해설

 

1.인사.

꿈이 배어 있고 감동을 주는 살아있는 역사책, 고궁박물관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길라잡이인 저는 궁궐문화원 소속 전문문화해설사 강유경입니다.

 

2. 도입

오늘 소개해드릴 유물은 조선 후기 도화원의 엄선된 화원들이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의 궁궐 전경을 / 조감식으로 그린 /기록화 형태의

궁궐 배치도로/ 궁궐화의 진수인 / 국보 제249호인 동궐도입니다.

3. 본론

200여년전 세도정치의 혁파라는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국가 기밀문서인 동궐도는 개혁이 비록, 비운의 꿈으로 끝났지만

오늘날 보물로 남아 우리에게 많은 의미와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해설의 순서는 이 보물의 제작 형식 / 제작하게된 시대적 배경과 의도/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동궐도를 보면서 몇 가지 포인트로 살펴보겠습니다.

 

3-1. 한성도 살펴보기

 

동궐도 앞으로 가기전 잠깐 전면에 보이는 한성의 지도를 보겠습니다.

수선전도라 할 수 있는 이지도는 고산자 김정호의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의

도성도가 결합된 형태로 구도, 필치 등 수목 표현이 닮아 있습니다

눈여겨 보시면 지도 중심에 위치한 도성 내는 도성 밖에 비해 대축적으로

되어 강조 되고 궁궐과 주요건물이 그려져 있는데 , 궁궐은 오른쪽에 별도로

표시되어 있는 데 , 북악산 배경으로 경복궁 왼쪽에 서궐인 경희궁, 그리고

* 우리가 살펴볼 동궐은 어떤 궁?으로 표시되어 있나요? , 창덕궁과 창경궁 !

 

맞습니다. 그러면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궁궐도가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3-2. 동궐도 제작 형식과 년도 추정

 

자세히 들여다 보시면 접이식 화첩이 위아래로 펼쳐있고 화첩 여러개가

좌우로 연결된 비단에 채색된 병풍처럼 보입니다.

즉 45.7x 36.3cm의 화첩이 내부에 6겹으로 겹쳐있고 좌우로 16개를

순차적으로 길이 576cm 높이 273cm로 연결된 형태입니다.

 

현재까지 동궐도 2점이 발견됐고 모두 비단에 채색된 16첩 1세트로 꾸며져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은 화첩 원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 반면

동아대 박물관 소장품은 병풍형태로 발견되 처움에는 보물 제596호로 지정되었다

1995년와서 고대와 같은(고대 소장품은 1988년 지정) 보물 제249호로 재 지정

됩니다.

고대박물관 화첩에는 화첩표지에 인(人)자가 새겨져 기밀문서 특성상 천.지.인.

총 3점으로 만들어져 있지 않았응까하는 추정을 하게 됩니다.

 

순조왕 치정년간 중 1827년부터 3년3개월 동안 대리청정을 했던 효명세자가

엄격한 보안 하에 국가최고 비밀문서로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하나 실재

기록이 없어 확실한 제작자와 제작년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동궐도 제작에 효명세자가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그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그림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 여러분 그림을 보면 어느 쪽이 창덕궁일까요 ? 그리고 주요 전각은 ?

제작년대는 전각을 지적하며 보여준다

경복전 - 1824년에 소실됐음 ; 화면에 터의 주춧돌 만 보임 - 1824년 이후 작성

통명전 - 1790년 소실. 창경원 측  월대 및  터 흔적 만 보임 - 1834년 재건

경춘전, 환경전, 양화당 있음 ; 1830년 대화재 시 소실 - 1830년 까지 작성

 

그러므로 넓게 잡아 1824년~ 1930년 사이에 이 동궐도가 제작되었다.

 

3-3 시대적 배경과 제작자 추정

 

농업의 융성에 힘입어 산업이 발달한, 한마디로 조선왕국의 황금기인 영.정조

말녑으로 왕실 내부적으로는 왕권과 신권의 암투에서 노론인 신권이 득세한 때로

노론인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득세하여 왕권이 한없이 추락한 시기였다.

1827년에 38세인 순조대왕은 맏 아들인 20세의 효명에게 대리청정을 명합니다.

복잡한 정국을 전환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세도정치 혁파란 개혁의 꿈을 안은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효명세자의 동궐도 제작지시의 단서도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규장각/주합루 - 정조의 정치개혁의 산실 상징 - 실제보다 크게 그려짐

조부, 정조를 닮으려했던 세자 - 3년간 50차례에 걸쳐 과거를 실시하여

부패한 관리들을 몰아 내고 신진 사대부 관리를 기용하였다.

 

2. 중희당 - 단일 건물 중 창덕궁 내 최대 : 정조6년 건설 후에 편전으로 사용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의 기간 정당으로 사용 - 각종 기상관측 기기 배치,

과학 중시 보임 , 그러나 효명은 22세의 젊은 나이에 갑짜기 절명합니다.

(* 효명세자 대리청정 기간 :1827년 2월 ~ 1830년 5월 6일 )


 

 

제한된 짧은 시간 안에 포인트 별로만 해설해서 아쉽지만

오늘의 주제를 정리해서 실제 동궐도 내 내용과 시대 상황을 비교해 보면

왕실에서 최고 비밀문서로 작성하게 된 정황이 짐작이되며 , 조선의 미술사적

르네상스기의 당시 아방가르적 화법으로 궁궐화의 진수를 보여줌으로

비록 개혁은 비운으로 꺽였지만 기록적 정밀화로, 당시 궁궐의 건축 양식을

비롯하여 예술적, 학술적, 역사적 가치를 지닌 보물로 우리에게 남겨져

오늘 우리가 당면한 시국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자성의 시간을 갖게 됨니다.

감사합니다.

 

** 2017년 1월 7일. 제한 시간 7분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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