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한반도뿐 아니라 만주ㆍ몽골에 이르기까지 성산(聖山)으로 숭배의 대상이었는데 이름은 시기에 따라 달랐다.
최초의 기록으로 중국의 『산해경(山海經, 기원전 2세기)』에서는 ‘불함산(不咸山)’으로,
이후 위진남북조 시대(221∼589)에는 태백산(太白山)·도태산(徒太山) 등으로 나온다.
요(916∼1125), 금(1115∼1234) 시대부터는 ‘장백산(長白山)’으로 불렸다.
‘백두산’이라는 말은 『고려사』성종 10년(981)에 처음으로 문헌에 나타난다.
삼국유사』(13세기말)에는 ‘태백산’으로 나온다. 단군신화를 설명하면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하고 있다.
혼용되던 이름은 대체로 10세기 후반부터 백두산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산해경에 나오는 ‘불함산(또는 보르항산)’은 주로 요서나 몽골에서 사용한 것으로
‘붉은 산(태양이 비치는 밝은 산)’의 다른 표현인데 오란산·오환산과 같은 의미다.
민족의 기원과 관련된 성산을 뜻한다. 불함산은 또 황금의 산을 의미하는 ‘알타이산’의 다른 표현으로
항상 옮겨 다녀야 하는 유목민들의 정신적 지주인 알타이산의 모습과 흡사한 산들에 붙인 명칭이다.
이 가운데서도 백두산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에게는 가장 큰 숭모의 대상이 되었다.
금·청을 건국한 만주인들은 백두산을 ‘궤리만싸엔아린(果勒敏珊延阿林山)’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큰 흰 산’ 또는 ‘긴 흰 산’이라는 말로 이를 한역(漢譯)한 것이
바로 ‘태백산’ 또는 ‘장백산’이다.
만주인들에게 백두산은 황금같이 빛나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알타이산의 또 다른 모습으로
고구려·발해·요·금·청나라 등에 건국의 정신적인 모태가 되었다.
만주어를 한역한 장백산을 현대 중국 정부가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명백하게도 장백산은 한족(漢族)의 용어가 아니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이 ‘백두(白頭)’라는 말에 있다.
중국과 한국에서 ‘백두’의 용례(用例)들을 보면, 주로 ‘벼슬 없는 백수’라는 의미로 민족의 성산을 부르기에 적합한 말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백두’는 노인(8세기 당나라 두보의 ‘춘망’),
백발(8세기 신라 부설거사의 ‘게송’),
대머리(12세기 말 고려 김의의 ‘영은사’),
‘벼슬하지 못한 사람(14세기 명나라의 ‘삼국연의’)’,
평민(15세기 말 조선 서거정의 ‘추회’) 등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13세기 이후 조선시대에 백두는 소과에도 합격되지 못한 실력이 없는 유학(幼學)을 이르던 말이었다.
특히 유교 국가였던 조선시대에 백두는 천시받았다.
아무리 나이와 항렬이 높아도 벼슬한 친척에게는 예를 갖추어야 했다.
정승 앞에서는 설령 그의 친형이라도 백두라면 맞담배를 못 피웠고 앉는 자리와 밥상에도 구별이 있었다고 한다.
‘백두산’이란 ‘백수의 산’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태백산 등 원래 이름을 백두산으로 바꿔 부르고 이를 방치한 것은
고려ㆍ조선조 유학자들이 백두산을 성산으로 여기지 않는 중국인의 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소중화 의식’ 때문이란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민족 정체성을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백두산의 이름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려 성종 때 백두산 첫 기록, 만주족은 '장백산'
역사 속에 나타난 백두산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
붉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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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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