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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또 다른 삶

공정한 사회(마틴 울프)

마틴 울프는 부동산 얘기를 할 때면 자신의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그는 1984년 런던 시내에 집을 마련했다. 자신의 집이 10만파운드라고 생각했지만 현재 가격은 10배를 넘나들고 있다.

`성공적인` 투자였지만 그는 가격 상승에 자신은 어떠한 노력도 기울인 것이 없다며 자산가치 상승의 이익을 본인이 모두 취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강조한다.

가격 상승은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따른 부산물이었던 만큼 이를 오롯이 부동산 소유주가 독차지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산 보유에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할 것을 제안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과세로 얻어진 수익만큼 법인세율을 낮춰준다면 더 많은 고용과 경제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부동산에 대한 높은 세율은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이뤄지는 투기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이나 서비스와 달리 과세가 이뤄진다고 해도 공급량이 정해진 부동산은 공급이 감소하지 않을 것이란 점도 근거로 들었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세금 과세 방식에 대해서 그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는 부동산의 유동성을 위축시킬 수 있어 다른 형태의 과세 방식에 비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균등한 교육 기회와 진정한 사회안전망의 구축이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칼럼니스트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조건이다. 그는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은 어느 나라에서나 중요한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심의 경제개발 정책을 펼쳐와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논리다. 물론 이를 위해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2일 매일경제 장경덕 논설위원과 이뤄졌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기술 발전과 경제구조 변화에 따라서 임금구조가 변하고 있다. 즉 기술을 가진 사람의 임금은 높아지고 있지만 기술이 없는 노동자는 점점 급여가 낮아지는 것이다. 운동선수들이 대표적 예이지만 특히 최근에는 승자독식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2등, 3등의 몫은 더 줄어들고 있다. 특히 한국은 경제개발과정에서 대기업에 자원과 지원이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기회의 균등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담보해야 한다. 또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의료보험ㆍ연금 등의 진정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중요하다. 사회안전망은 경제상황이 불안할수록 더 중요해진다.

이러한 복지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재원확보 차원에서도 경제의 꾸준한 성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또 후발국가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유연한 경제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을 유지하면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과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한국의 금리 수준은 적절하다고 보는가.

▶한국의 빠른 성장을 볼 때 현재의 금리 수준은 매우 낮은 것으로 보인다. 명목GDP가 6~7%가량 성장하는 나라에서 2%대의 금리를 조금 더 올린다고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2일 IMF는 한국의 중립적인 정책금리를 4.25%로 제시했다).

-G20 정상회의가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까.

▶글로벌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별 국가들의 협력을 통한 실행이 중요하다. 중요한 국가는 사실 미국, 중국, 일본, 독일과 석유수출국 등 몇 개국에 불과하다. 국가 간 협력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자국 상황만을 신경쓰느라 협력은 뒷전이기 때문이다. G20가 내놓은 대책들의 방향은 맞지만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 경제 더블딥 가능성은.

▶기술적인 의미의 더블딥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경기 침체에 대한 판단은 매우 기술적인 판단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의 정의를 따르자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 경기 침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 선진국에서 나타날 가능성을 점치기는 힘들다. 가능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현재 더 중요한 점은 미국, EU,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경기가 장기적인 추세를 밑도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해 위기 상황에서 너무 신중했다는 비판을 했다. 아직도 재정지출 확대에 의한 경기 부양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재정적자는 경기 부양으로 인한 지출 증가보다는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재정지출과 세금감면 등을 통해 경기 부양에 쏟아부은 자금은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다. 이는 금융위기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수입감소 등을 고려했을 때 분명히 부족한 것이다. 기업들이 고용을 줄였고 이로 인해 늘어난 이익은 투자보다는 저축에만 사용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민간 섹터의 저축은 늘어났는데 소비는 침체된 상황이 나타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이 효과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고용을 늘리고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취한 통화정책은 성장에 도움이 되긴 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추가적인 경기 부양 없이는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는 유럽에서도 동일하다.

-재정적자나 국가채무를 신경쓸 때가 아니란 말인가.

▶일부 국가들은 재정적자를 신경 써야하지만 선진국은 재정적자가 문제가 아니다. 당장 독일과 영국 등을 보자. 2%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다. 이는 디플레이션 수준으로 일본이 1990년에 경험했던 정도로 낮은 것이다. 적어도 5대 경제 국가에서는 지금 재정적자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후일에 경기가 회복되면 장기적인 재정 건전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재정 건전화를 신경쓰다가 경기 침체로 인한 적자가 늘어나면 결국 아무런 개선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염려는 없나.

▶현재 경제 일반을 봤을 때 물가 상승을 염려할 단계는 아니다. 물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있지만 이는 통화정책 등에 따른 영향이 아니라 중국 등 신흥시장의 수요 증가라는 구조적인 변화 때문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1990년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정책은 금리를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는 상황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실제 유통되는 통화량은 미국과 영국에서 정체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만을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FRB의 모델을 따라 계산을 해봐도 지금은 1990년대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모든 상황을 봐도 지금은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때지 인플레이션을 염려할 시기는 아니다. 그만큼 중앙은행이 지속적으로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할 때다.

■ 마틴 울프는
"깊은 통찰로 얻은 결론 뛰어나게 전달한다"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에드문트 울프는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겸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아버지의 인생을 괴롭힌 나치즘과 사회주의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다. 소련이 붕괴됐을 때는 "내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소식 중 하나"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인 1971년 세계은행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영국 무역정책연구센터 이사 등을 지냈다. 아버지를 보면서 본인은 저널리스트가 아닌 `경제학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흔이 넘은 87년 파이낸셜타임스로 자리를 옮기며 저널리스트로 변신했다.

경제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담은 칼럼을 통해 `깊은 통찰과 철저한 사고를 통해 내린 결론을 뛰어나게 전달한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의 칼럼은 주요 이슈에 대한 과감한 문제 제기로 전 세계 경제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CBE(Commander of British Empire) 훈장을 비롯해 각종 상을 수상했다. 저작으로는 `왜 세계화인가` `금융공황의 시대` 등이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지면을 통한 칼럼 외에도 FT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인터뷰=장경덕 논설위원 / 정리 = 정욱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