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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음택

풍수지리학의 올바른 길( 인산 윤갑원)

風水地理學(양터, 음터)의 올바른 길

(副題: 風水地理學과 孝의 思想)


        (社)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

理事長  仁山 尹  甲 源(011-615-2488)


一. 머리말

세간에서는 풍수지리학을 두고 흔히 현오(玄奧)하고 신비스러우며 고답적(高踏的)이기 때문에 범인(凡人)은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인식되어 왔다. 물론 초심자나 문외한으로서는 함부로 접근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학문이라고 경원(敬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이 학문은 지금까지도 하나의 교과서적(敎科書的)이며, 통일적(統一的) 기준이 되는 정론(定論)이 정립(定立)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제반 잡설이 난무(亂舞)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예를 들면, 포태법(胞胎法), 구성법(九星法), 현공법(玄空法) 등을 주창하는 학파들이 마치 자신들이 알고 있는 이론(理論)만이 가장 정확한 정도(正道)인 것처럼 그리고 누구나 함부로 근접(近接)할 수 없는 영험(靈驗)스러운 분야인 양 대중을 현혹(眩惑) 또는 오도(誤導)하고 있음을 우리는 목격(目擊)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실상(實像)을 구명(究明)해보면 거의 알맹이가 없고 증험(證驗)해보지 못한 허론(虛論)에 불과함을 실감하게 되며, 이 이론으로 혈처(穴處)를 얻는다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함[緣木求魚]과 같아서 부질없이 풍수학에 대한 세인의 불신(不信)만 조장(助長)하고 있음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모든 학문이란 결코 일조일석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특히 풍수지리학은 난해하고 약간은 현묘(玄妙)한 학문이다. 그러므로 각고의 노력과 부단한 수련으로, 허욕을 부리지 아니한 진실한 마음을 지니고 끈기 있게 넘어가야할 고개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풍수학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것도 아니다. 결국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고 키워주신 하늘과 땅 그리고 어버이에게 내 정성을 바쳐 보답하는 길이 인간의 도리요 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여 정성을 다 바쳐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효친(孝親)과 경천(敬天) 및 애지(愛地)를 행하는 길을 선사(先師)들이 이미 터득하여 가르쳐준 대로 따라 행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항상 역설(力說)하기를 ‘진실로 돌아가신 어버이를 사후에도 길지(吉地)에 편히 모심으로써 어버이에 대한 효성과 모앙(慕仰)의 정회(情懷)를 다하려고 하는 정성만 있다면 길지란 결코 뜬구름 잡듯 허황한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정도(正道)를 버리고 너무 조급하게 그리고 헛된 욕심이 앞서면 까딱 잘 못 빠져들 수도 있는 것이다’ 라 하곤 한다.

여기에서 어떤 길이 정도인가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것인가 하는 것을 인지(認知)토록 하는 것이 바로 이 짧은 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最善)이라고 생각된다.

장차 본론에서 언급하려 하지만 나는 지난 반생(半生)을 통한 풍수학에 대한 연구와 경험 및 증험(證驗)으로 사계(斯界)의 여러 학설에 대한 그 허실(虛實)을 실증(實證)해보면서 그러한 가운데 홀연(忽然)히 하나의 바른 길을 터득하게 되었다. 즉 어떤 중설(衆說)보다 그 이론과 실제가 가장 부합(符合)한 정도(正道)라고 확신을 갖게 된 것이 바로 “통맥법(通脈法)”에 대한 이론이다. 나는 그 뒤로 이 이론(理論)을 더 개발 발전시켜왔으며 또 이러한 기치(旗幟) 아래 여러 대학의 강단과 현장을 누비며 이론과 실증을 통하여 역설(力說)해왔던 바, 대다수의 공감(共感)과 신망(信望)을 얻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이 소문(所聞)을 듣고 사계(斯界)의 타 학설을 주장(主張)하는 분들도 모두 달려와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에 모처럼의 기회를 통하여 조금이라도 흉금(胸襟)을 털어놓고 우선 여러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 수긍(首肯)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오히려 싱겁다 할 정도로 평이(平易)하게 해설해 가면서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통하여 점차적으로 심도(深度)있게 진전해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대저 속히 통달(通達)하려고 욕심을 내면 도리어 이루기 어렵고 오직 열심히 구하면 비록 적중(的中)은 못하더라도 머지않아 깨닫게 될 것이니, 우리들은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二. 풍수지리학의 정의(定義)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環境親和的] 살아가기 위하여, 삶과 죽음의 근본이 되는 땅에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를 적용하여, 거기에 함축(含蓄)된 지기(地氣: 靈的인 힘)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바로 이 풍수지리학이다. 즉 삶의 집은 양택(陽宅)이요 죽음의 유감(幽坎: 墓)은 음택(陰宅)으로서 이 두 분야[陽宅과 陰宅]의 이론과 실제를 포함해서 동시에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1. 길지(吉地 : 陰宅, 陽基)란?

산진수회(山盡水回)하고 환포장풍(環抱藏風)으로 형성된 보국내(保局內) -산진처(山盡處)에 물이 궁체(弓體)로 감아주고, 청룡(靑龍) 백호(白虎)가 환포(環抱)하여 지기(地氣)의 누설을 방지해주며 외부의 흉살(凶殺)을 방어함으로서 보호된 국내(局內)- 에, 음지(陰地: 묏자리)는 일선(一線)의 맥(脈)이 응결(凝結)되어 혈처(穴處: 半坪)가 형성된 곳이며, 양기(陽基: 집터)는 일편(一片)의 평포(平鋪)된 곳에 물[食水]이 있고 국세(局勢)가 관활(寬闊)하며 주위환경이 평화스러워야 한다.

2. 풍수지리학은 과학이다

과학이란 자연의 현상(現象)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여기에서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 또는 원리를 발견하여 어떠한 확증을 갖도록 결론을 도출(導出)해 내는 것이라면, 혈처에 선조의 체백을 모시어 유골이 자골(紫骨)로 오랫동안 보존되는 현상(現象)은 바로 풍수지리학의 과학인 것이다.

한편 명당을 형성하고 있는 혈처(穴處)에 체백(體魄: 遺骨)을 안장(安葬)하면 이 혈처에 함축되고 응축(凝縮)된 오묘(奧妙)한 정기(精氣)가 체백과 조화롭게 융합하여 그 기운이 동질(同質)의 유전인자(遺傳因子: DNA)를 지닌 후손들에게 동기감응(同氣感應)되어 나타나는 어떠한 영향을 연찬(硏鑽)함을 현응학(玄應學)이라 하고, 위와 같이 후손에게 여러 가지 길흉(吉凶)으로 나타나는 현실(現實)을 현응적결과(玄應的結果)라 한다.

이에 풍수지리학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립하여 과학임을 실증함과 동시에, 중구난방적(衆口難防的)인 제반 이론(異論)들을 제각(除却)시킴으로써 본 학문이 미신 또는 방술(方術)이 아님을 공언(公言)하고 풍수지리학은 과학이요, 그리고 현묘(玄妙)한 학문인 현응학(玄應學)임을 천명하는 바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오히려 생활풍수, 인테리어풍수 또는 수맥풍수(水脈風水) 등의 변태적 풍수이론이 팽배(澎湃)하여 현세(現世)에 풍미(風靡)하고 있으니, 이는 풍수의 정도(正道)를 일탈(逸脫)한 경박(輕薄)스러운 사설(邪說)로, 속신(俗信)과 부합(符合)되는 과정에서 미신과 방술(方術)로 크게 잘못 변질되어 가고 있는 세태(世態)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풍수지리학의 기원(起源)

(1) 풍수지리학은 양택풍수로부터 발전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이 태초에 삶을 영위(營爲)할 때 움막이나 동굴 속에서 생활하면서 추위를 막기 위해 장풍(藏風) 즉 바람을 막아야 했고, 또 생명유지와 생활의 필수요건(必須要件)인 물을 얻기 용이한 곳[陽宅地]이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 곳)란 용어(用語)는 모든 풍수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용어로서 정착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의 풍수는 문헌상으로나 또는 옛 고분(古墳)을 보아도 멀리 삼한말기(三韓末期: 마한의 부족국가 領主의 묘인 전남 나주시의 古墳群)에서 삼국초기(三國初期: 신라국의 이전 6가야의 부족국가인 대가야의 부족장의 명당인 경북 고령군의 고분군) 무렵에 자생적(自生的)으로 발생하였고, 이를 신라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이론을 정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혼과 삶의 곳곳에 민족정서로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옛날 고려나 조선조 시대의 왕릉들은 통맥법(通脈法)에 의거해 명당(明堂: 吉地)터를 택하였다. 다만 일반적으로 장풍득수지지(藏風得水之地)라는 양기(陽基)에 적용된 용어의 본의를 풍수가들의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이를 그대로 음택(陰宅: 墓)의 장법(葬法)에 직설적(直說的: 글자 그대로)으로 적용함으로서, 결국에는 많은 묘들이 건수(乾水)를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하고 대다수가 습지(濕地)에 용사(用事)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으니 실로 개탄을 금할 수 없는 바이다.

간산삼년(看山三年)이라 하여 궁중에서 활용한 통맥법에 의한 명당터는 용세(龍勢)에 의하여 점지되었으나, 재혈십년(裁穴十年)이라는 어려운 재혈법(裁穴法)에 있어서는 엉뚱하게 양택에 적용하여야 할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원리를 음택에 적용함으로서 왕릉들도 반평(半坪)의 혈처(穴處: 穴莊)에 제대로 점지(点地)되지 못하고, 혈처의 아래나 옆면 또는 움푹 들어 간 곳에 용사 되어 있음이 대부분이다.

장풍득수는 양택(陽宅)에만 해당된 이론이라는 것을 정확히 터득하고 이를 적용했더라면 이러한 큰 착오는 범하지 아니 하였으리라고 하는 아쉬움이 나의 뇌리에 항상 꺼림칙하게 남아 있음을 떨칠 수가 없다.

(2) 양택 분야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풍수학의 원초적 발달과정으로부터 형성된 이론으로서, 먼저 지세와 지형적 측면에서 길지(吉地)를 점지하고 동시에 역학(易學)의 측면에서도 관찰하여야 하는 것이다. 즉 후천팔괘(後天八卦)에 의한 건방(乾方: 男)과 곤방(坤方: 女子)이 남녀성쇠(男女盛衰)에 영향이 큼을 감안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외에 그 터에 정주(定住)할 인간의 여러 가지 심리적 취향 또는 선호과정을 고려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는 복합적학문(複合的學問)이다.

이 풍수학은 차차 인간생활이 발전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근심지영(根深枝榮)이란 관념(觀念)에 의하여 산 자[生者]뿐만 아니라 선조의 유택(幽宅)도 따뜻하고 양지바른 곳에 모심으로서 효사상(孝思想)을 승화(昇華)시키고 또한 그 자손도 번영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음택풍수까지도 연급(延及)하게 되었다.

(3) 양택풍수는 처음 사찰지(寺刹地)를 점지하는 데서부터 이론을 정립하게 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산곡진처(山谷盡處)에 필유양택(必有陽宅)이요, 또 한편 산맥진처(山脈盡處)에는 필유음택(必有陰宅)이라는 이론으로써 전개(展開) 발전하였다.

음택은 혈처의 면적이 반평(半坪: 三尺×六尺)이 기준이나, 양택은 면적의 대소에 따라 마을과 도시[都邑]의 규모에 차이가 있으며, 토양의 질적인 면에 있어서도 관련이 있으니 예컨대 우중(雨中)에 진흙땅이 되는 토질은 건조(乾燥)시에 먼지가 발생하여 사람의 호흡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흉지(凶地)가 되기도 하기에, 우중에도 생활하기에 알맞은 땅은 단단한 마사토에 가까운 토지가 길지이다. 예를 들면 삼태산(三台山)이나 삼각산(三角山) 아래에는 대체적으로 토질이 좋은 대지(大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첨언한다.

三. 풍수지리학을 올바르게 아는 길

1. 우리가 본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원래 이기론(理氣論)분야와 형기론(形氣論)분야로 나누어 전래되어 온 바를 서로 대비상조(對比相照)하면서 서술(敍述)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처음에는 형기론(形氣論)에만 치중해 왔었기 때문에 이기론(理氣論)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였다. 내가 연구했던 이기론은 다음과 같다

(1) 정음정양법(淨陰淨陽法) : 선천팔괘(先天八卦)에서 팔괘상(八卦上)의 삼효(三爻)에서 가운데 효(爻)를 뺀 다음 아래 효(爻)와 위 효(爻)의 음(陰) 또는 양(陽)이 서로 같으면 정양(淨陽)이 되고, 음양이 다르면 정음(淨陰)이 된다. 본 이론은 좌(坐), 득수(得水), 파(破)가 정양(淨陽)이면 정양(淨陽)으로 정음(淨陰)이면 정음(淨陰)으로 용사(用事)하는 법으로서, 세간(世間)에서 활용하는 삼길육수(三吉六秀)의 길(吉)한 방위는 본법에서 유래된 이론이다.

(2) 삼합법(三合法) : 坐, 得水, 破가 삼합으로 형성된 곳이 명당이라는 좌삼합법(坐三合法)과 향삼합법(向三合法)의 이론이 있다

(3) 구성법(九星法) : 지상오체(地上五體)를 기준으로 하여 천상구성체(天上九星體)로 형성된 이론으로, 이는 형기(形氣)로 혈성(穴星)의 형태와 수구(水口: 破)를 기준으로 좌향(坐向)을 결정하는데 참고가 되며, 물형(物形)을 살펴 부(富)와 귀(貴)의 도량(度量)을 가늠할 수 있고 형기론과 이기론의 연결이라 할 수 있다는 이론(理論)이다.

(4) 포태법(胞胎法) : 이십사방위(二十四方位)를 사대국(四大局)으로 나누어 포, 태, 양, 생, 욕, 대, 관, 왕, 쇠, 병, 사, 장(胞 胎 養 生 浴 帶 官 旺 衰 病 死 葬)의 출생(出生)과 지사(至死)의 장론(葬論)으로서 득수(得水)와 득파(得破)의 방향에 의하여 좌향(坐向)을 정한다는 것으로서, 이로써 길흉을 본다는 설이며 요즈음 세간(世間)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이론이다.

(5) 현공법(玄空法) : 대현공(大玄空)과 소현공(小玄空)으로 분류하여 대현공은 향(向: 坐의 對宮)으로 장생(長生)을 보는 법이며, 소현공은 물[水]의 래거(來去: 得水, 得破)의 향(向)으로서 길흉을 본다는 이론이다.

(6) 물형론(物形論) : 와우형(臥牛形),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 연소형(燕巢形),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등 결록(訣錄)에 의해 혈처를 찾는 법이다. 이는 묘를 용사한 뒤에 혈명(穴名)을 붙이는데 적합하다.

2. 나는 오랫동안 위와 같이 이기론(理氣論)을 연구하여 이를 형기론(形氣論)에 적용하여 보았으나 서로 부합(符合)하지도 않고 합리성도 없어 이에 실망하여 한때 모든 풍수지리학을 포기하다시피 하였다. 이는 바로 의사는 환자 한사람만 다루면 되지만 풍수는 그 집안의 많은 사람들과 연관이 되므로 더욱 중차대하다는 것을 절실히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식들이 있는 나로서는 말을 못하는 체백(體魄)에 죄를 지을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본 학문을 접어 버렸다.

(1) 그러던 중 20여 년 전에 우연히 통맥법(通脈法)의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귀본(貴本)이 입수되어 이를 기본으로 하여 연구한 결과 내가 그동안 연구했던 형기론과 그 이론의 맥이 서로 일치가 되었기에 거연(遽然)히 용기를 얻어 이를 계기로 다시 더욱 정진하여 얻은 결과로써 첫 번째 책을 편저하게 되었다.

요즈음 흔히 그리고 주로 활용하고 있는 구성법이나 포태법은 임수지룡(臨水止龍)의 이론으로서 이는 득수(得水)와 득파(得破)를 기준으로 명당과 좌향(坐向)을 결정하는 장법(葬法)이지만, 통맥법(通脈法)은 용주수종(龍主水從)이론을 기준하여 외형적으로 보이는 용(龍)의 형상(形狀)을 보고 그 속에 잠재해 있는 맥중(脈中)의 혈처(穴處: 穴莊)를 찾는 법인 것이다.

(2) 옛날에는 풍수 서적들이 한약국(韓藥局)에 많이 보존되어 왔었다.

나는 그 중에서 전라도 안씨(安氏) 문중과 평택의 홍약국(洪藥局)에 있는 홍씨문중의 서적중에서 한약국의 노하우와 동시에 깊은 통맥법의 풍수이론을 지니고 있는 책들을 전수받아 이를 정독(精讀)하고 연찬하여 터득한 이론을 바탕으로 개정수정 2판을 발간하였으며,

(3) 단양 천태종의 본사인 구인사의 명풍(名風)인 초대 주지 상월(上月)스님의 유품인 풍수서적을 입수하여 3판을 발간하였고

(4)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김광수(忠北 報恩郡 馬老面 官基里 金光洙) 선생께서 주신 통맥법의 원본인 금부경(金符經)을 전수 받았는데 이는 인쇄가 발달하기 이전의 고려시대의 필사본으로서 “玉龍子傳之舞學而留通宮中之秘法非正心修德者輕勿傳之”〔옥룡자(도선국사)가 무학대사에게 전수한, 궁중에서 사용하던 비법이니 정심 수덕한 사람이 아니면 가벼이 전하지 말라〕라고 부전(附箋)되어 있는 통맥법의 원본으로서 나에게는 어렵게 얻은 귀본(貴本)이었으며 이를 기본으로 오랫동안의 갖은 연구와 노력 끝에 4판을 발간하였다.

(5) 또한 그 동안 현장에서 연구했던 내용들을 메모한 노트를 총정리한 “개정수정 5판”을 2008년 3월에 발간하였다. 독자들이 이를 한번 읽어보고 감명을 받았는지 그후 여러 곳에서 관심을 보여 문의가 쇄도해 왔으며 한 불교 서점에서는 경쟁적으로 사가서 거의 매진되었다고 한다.

3. 당국(當局)에서 국내 최초로 공인한 본 사단법인 정통풍수지리연구학회

본 학회에서 지향하고 있는 바는, 현재 왜곡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사계(斯界)의 여러 잡설과 비정상적인 사설(邪說)이 횡행하고 있음을 탄식하면서 또 여기에 빠져들어 마치 뜬구름을 잡는 듯한 허황된 이론에 헤매이고 있는 현세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계도함과 동시에, 새로운 장법을 창안하여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우리나라 장례문화의 기본질서와 효율적인 국토개발의 방향설정에 도움이 되도록 길잡이 역할을 자임(自任)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나는 그 동안 여러 번 책자를 펴내어 보급하고 계도 한 바 있으며 또한 오랫동안의 현장 실무경험과 사회의 각종 기관에서 교양과목으로 강의하였던 내용들을 다시 분석해 보고 집약(集約)하여 이를 바탕으로 하여 근래에 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화장법(火葬法)에 대해서 논박(論駁)한 바 있으며, 그 대안으로 우리 민족의 정서에 맞는 매장법(埋葬法)이면서도 한편 화장법의 장점을 취사(取捨)한 새로운 장묘문화, 즉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라는 장법을 창안하였고(2008.12.8. 특허권 취득), 겸하여 여기에 소요되는 붕판(棚板: 天蓋)을 제작하였으며(2007.5.28 특허권 취득) 이를 현재 서울을 비롯한 경향각지에서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이 새로운 장묘법(葬墓法)에 대해서 국민 모두가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 누구나 꼭 한번 살펴보고 시도해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4. 한편 이제까지 양택(陽宅)에 대한 분야는 오직 역학(易學)하는 분들만의 전관영역(專管營域)인양 간주되어 왔는데 이는 실로 본 학문을 잘못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이점을 새롭게 지적하고 잘못된 경위와 진위(眞僞)를 세밀히 분석하여 내가 저술한 책인 “반평의 진리” 속에 정리해 놓았다.

나는 이 “반평의 진리”에서 풍수전문가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을 수련함에 앞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적선과 적덕, 충과 효, 권선징악 등 사람으로서 행하여야 할 기본적 도리와 전통적 정서를 기본정신으로 하여 이 책 전편을 통하여 두루 설명하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여기에는 비단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려는 초보자는 물론이요 이 어지러운 세태 속에 살아가는 일반인들도 일독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 하나, 사람이 죽은 후에 들어갈 혈처의 면적은 반평(半坪)에 불과하다. 나는 이에 대한 사항을 알기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풍수의 기본이론과 망자(亡者)의 안장(安葬)을 위한 방법에 관하여 그 후손들의 정서적인 측면을 충분히 감안하고 참고하여 서술한 통맥풍수지리학의 입문서인 “반평의 진리” 수정증보 3판을 펴내었다.

四. 명당의 형성요건

1. 사세 (砂勢)

(1) 명당에는 여러 형태의 혈이 있고 역량(力量)에도 대중소(大中小) 등 각기 다른 국량(局量)이 있다. 그중에서도 대명당의 형태와 이루어진 과정을 살펴보면 조물주의 신묘한 조성술(造成術)에 감탄을 금할 수 없으니, 이를 가리켜 우리는 천조지설(天造地設)이요 천장지비(天藏地秘)라 한다.

대국(大局)은 큰줄기[大幹脈]가 처음 발정(發程)할 때에 그 주성봉(主星峰: 太祖山)이 가장 높이 용출(聳出)하고 그로부터 매우 웅장한 기세로 내려오다가 휙 꺾어서 좌우로 방향을 바꾸어 꿈틀꿈틀 굴곡(屈曲)하여 내려오면서 전후가 맞이하듯[迎送] 활개를 펴고 기복(起伏)을 거듭하면서 내려온 용이 혈후(穴後)에 주장된 봉우리[主山,父母山]를 이루고, 정면(正面)의 안산(案山)과 왼편의 청룡(靑龍), 오른편의 백호(白虎)가 전후좌우를 감싸주어 사세(四勢)가 겹겹이 싸여 단정하고 고르게 조화됨으로써 유정(有情)하고 중후(重厚)한 역량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다정한 안산과 그 밖의 조산(朝山)들이 층층으로 바르게 조응(照應)한다.

한편 주봉[主山] 터의 용맥(龍脈)이 혈장(穴莊)까지 도달하여 혈(穴)을 지으려면 반드시 사람의 머리와 몸 사이의 짤록하게 죄어진 목처럼 긴밀히 조여[結咽]진 다음에 되는 것이니, 혈판(穴坂)이 본신(本身)에 붙어 만월(滿月)의 달무리같은 훈(暈)이 있어 생기(生氣)를 모아 감싸 둘러주면 바로 이것이 혈처의 증표(證票)인 것이다. 여기서는 원훈(圓暈: 暈角)을 제일의 기준으로 삼는다.

혈판의 넓고 좁은 것에는 관계가 없고 혈의 기세(氣勢)가 좋고 안좋은 것에 달렸으니 혈은 바닥[穴坂]이 크다고 해서 혈의 역량이 큰 것이 아니고 관(棺) 하나 용납할 수 있으면 족(足)하는 것이다.

물이 나가는 마지막 수구(水口)는 좌우의 산으로 겹겹이 엄하게 막혀있어 제성(帝城: 제왕을 보호하는 성)의 문과 같은 형태로 형성되어야 하며, 또한 화표(華表), 일월한문(日月捍門)이 되어있어 당국(當局)의 지기(地氣)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되어있으면 이것이 곧 대지(大地)인 것이다.

기특한 바위들이 수구에 있고 험한 언덕과 높은 산벽(山壁)들이 수구 양쪽에 줄을 짓고있는 경우, 이를 어지럽게 생각하고 허(虛)하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실은 이것이 바로 대혈(大穴)이 있음을 보이는 증표인 것이다

(2) 혈처 여부는 표면에 나타나는 형상(形狀)에 의하여 혈토의 실존여부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 혈토는 자연의 현상으로 형성되는 것이니 우리 학회에서는 직접 혈토의 진위(眞僞) 여부를 확인한 뒤에야 소모태(小母胎)를 파서 이곳에 체백을 안장한다. 이 재혈법(裁穴法)은 우리 학회만이 활용하는 가장 합리적인 장법이다.

(3) 조룡(祖龍: 來龍)과 혈처 그리고 안산의 구성에 따라 후손의 선천적인 운명이 결정되고 좌향(坐向: 案山)과 파(破)와 사격(砂格: 龍虎) 등의 조응에 의해 후천적인 활동무대가 형성되므로 명당을 찾아 용사(用事)하면 용사 후에 태어난 자손은 그 지기를 받아 태어나고 또 현존한 후손들은 주어진 운명을 최대한으로 향유(享有)하게 되는 것이다.

국세(局勢)가 완전 조밀하며 혈(穴)맺음이 기특하고 교묘할지라도 사격(砂格)이 달아나듯 하는 형상이고 앞에 흐르는 물이 곧고 길게 흘러가면 먼저 부흥(復興)할지라도 나중에는 빈한(貧寒)하여지며, 혈처가 널찍하고 우둔하게 생기면 보기에는 좋으나 발복이 늦어지는 허망한 가혈(假穴)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점을 간산하는데 유의하여야 한다.

또한 기본적으로 작혈(作穴) 여부도 확인하지 않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혈판의 형성구조만 보고 함부로 용사한다는 것은, 마치 자녀잉태(子女孕胎)의 확인도 없이 아들이나 딸을 낳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다만 혈판과 오행(五行)의 구성만으로 부질없이 큰 인물이나 작은 인물이 출현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결과를 초래하게 되니 이러한 이론은 풍수계를 오도(誤導)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에 태어날 자손의 사주팔자(四柱八字)는 오행 원리에 의해 정명(定命)되는 길흉화복(吉凶禍福)과 현존하는 자손에게는 최관(催官: 현존자손이 영향을 받음)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결과[玄應的結果]로 나타나는 것이다.

(4) 심혈(尋穴)에 있어 혈처(穴處: 명당터)의 형성에 대한 형세(形勢)를 판단하는 기준은

제1은 혈판(穴坂: 堂坂)의 형성 여부(與否),

제2는 조룡(祖龍: 後龍, 來龍)의 강약과 장단,

제3은 주산(主山)과 안산형태(案山形態)의 호불호(好不好),

제4는 용호(龍虎)의 형태이다.

안산과 용호는 외부의 살(殺)을 방어하며 지기의 누설(漏泄)을 막는 역할을 하는데, 안산은 좌향(坐向)의 사각(砂角)으로서 차지하는 비중이 용호보다는 더한 것이며, 수세(水勢)는 용주수종(龍主水從)이므로 사세(砂勢)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 지리의 형세(形勢)는 용주수종이 정론인 바, 임수지룡(臨水止龍)의 이론을 내세워 득수와 득파의 향방을 중요시한 구성법이나 포태법은 재고해 보아야 할 이론임을 첨언한다.

〈예〉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에 있는 충장공(忠壯公: 金德齡)의 고조묘(高祖墓)는 조산(祖山)의 지세로 보아 대지가 형성될 국세(局勢)로, 신좌(辛坐)에 갑묘파(甲卯破)로 용사되었다.

그러나 이 국세에는 건해룡(乾亥龍: 草巳脈) 입수(入首)에 유좌(酉坐; 안산에 一字文과 領相砂가 있음)로 용사되었어야 하는데 좌향(坐向)의 잘못으로 내룡(來龍)과 혈판과 안산의 기(氣)가 불통(不通)되어 백호가닥의 검살(劍殺) 등 주변 사각의 형세불량으로 후천적 영향에 따라 29세의 젊은 나이에 액운에 휘말리는 비운을 맞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처럼 용사할 때 좌향에 따라 체백의 위치가 달라져 혈처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니, 미세한 차이에도 엄청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 혈의 형태와 음양작혈법

(1) 하늘에는 일월(日月)이 음양이고, 사람은 남녀(男女)가 음양이며, 땅과 물도 음양이 있다.

▸ 지리(地理)의 음양은,

음(陰)은 높고[高], 산(山)이고, 땅[龍]이며, 경사[急]지고, 단단[硬]하다.

양(陽)은 낮고[低], 평야(平野)이고, 물[水]이며, 완만[緩慢]하고, 유연[柔]하다.

우주의 만물은 음양의 이치가 있어 양의(兩儀)로 분류되어 존재한다. 이런 이치에 따라 명당도 음양의 원리(原理: 理致)에 의하여 작혈(作穴)되는 것이다.

(2) 혈(穴)의 기본형태로는 와(窩), 겸(鉗), 유(乳), 돌(突)의 사상(四象)이 있다. 와형(窩形)은 손으로 구슬을 쥔 것 같고(여성의 음부형), 겸형(鉗形)은 물건을 집는 집게와 같으며(남자의 양 다리사이의 생식기형), 유형(乳形)은 여자의 유방과 같고, 돌형(突形)은 혈성체(穴星體)가 정상(頂上)에 가마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覆釜形]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을 보면 뚜렷이 구별하기 어렵고 유사한 형태를 이룬 것이 허다하다. 오는 맥(來脈)이 음(陰: 硬)의 경사(傾斜)로 단단히 뭉쳐오면, 양(陽: 軟)의 완만한 곳에 결혈(結穴)이 되고, 완만하게 오면 경사로 단단히 뭉쳐진 곳에 결혈이 된다[陽來陰受, 陰來陽受]

혈처의 기본형태는 여인의 음부(陰部)와 같은 형태로, 이것을 풍수지리학에서는 혈처(穴處)라 부른다. 그러니 명당을 찾아가는 행위는 인간의 원초적 고향을 찾아가는 행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칠부장(七不葬)

칠부장(七不葬)이란 뫼를 용사할 수 없는 곳, 즉 혈처가 형성되지 않는 지역으로 과산(過山), 단산(斷山), 독산(獨山), 석산(石山), 동산(童山), 핍산(逼山), 측산(側山)을 말한다.

(1) 과산(過山)은 작혈(作穴)하기 위하여 맥을 끌고가는 산으로 융기(隆氣)가 없는 행룡(行龍)을 말한다. 단산(斷山)은 무너지거나 끊어진 산이다(결함없이 자연히 끊어진 산은 아님). 독산(獨山)은 주위 사방에서 보호해주거나 이어진 맥이 없이 홀산으로 외롭게 노출되어 무정(無情)하고 단한(單寒)한 야산(野山)이다. 석산(石山)은 돌산을 말한다(혹 怪穴인 돌과 돌 사이의 土穴은 吉穴임). 동산(童山)은 초목이 자라지 않는 붉은 산이다. 핍산(逼山)은 골이 패이고 찌그러져 단정치 못한 산이다. 산의 옆면인 측산(側山)도 체백(體魄)을 모실 수 없는 땅[不葬山]이다.

(2) 산세(山勢)가 거칠고 추악하며 돌이 많고 산이 너무 커서 유연(柔軟)하지 못한 조악(粗惡)한 산이나, 산세가 급하고 험악하며 등정(登頂)이 어려운 준급(峻急)한 산도 부장산(不葬山)이니 유념해야 한다.

4. 배산임수(背山臨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격언처럼 명당이 되려면 뒤로는 산이 받쳐주어 병풍처럼 둘러있으며 앞에는 평야와 더불어 강물이 활[弓]처럼 둘러싸면서 흘러가야 한다. 이는 음택 양택을 통틀어서 적용되는 대원리다.

5. 고산(高山)에는 어떤 곳에 명당이 있는가

고산(高山)에는 대개 명당이 드물다. 고산의 몸체에는 혈이 없으므로 그 산하(山下)에 용사를 하면 물을 털 곳이 없어 거의 건수(乾水)가 스며든다. 그리고 고산은 과산(過山)이기 때문에 지기(地氣)가 뭉치는 곳이 거의 없다. 그러므로 행룡(行龍)이 몇 번이고 기봉(起峰)한 후 사상(四象: 窩鉗乳突)이 형성된 곳에 대개 명당이 작혈(作穴)된다.

그러나 고산이라고 해서 명당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고산에는 명당이 높이 형성된다. 그런 곳에 올라가면 오히려 높다는 감을 느낄 수 없다. 그리고 대혈(大穴)일수록 높은 곳에 작혈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조악(粗惡)하면서 높은 산, 즉 산세(山勢)가 급하고 높고 험악한 중산(衆山)에서는 그중의 단정(端正)한 산에서 혈처(穴處)를 찾아야 한다.

또한 사방이 중산(衆山)으로 둘려싸여 있으면 각 사각(砂角)을 선으로 그었을 때 그 십자(十字)의 중앙봉(中央峰)에 대개 혈처가 형성된다[天心十道]. 이러한 명당은 산악지대로서 높으며 주위가 광활하므로 수구(水口)가 여러 곳에 형성된다(內破, 外破 등 여러 파가 동시에 보임). 따라서 평지에서는 한문(捍門)으로 형성된 파(破)를 중요시하지만 이러한 산악지대에 형성된 명당은 파가 여러 곳에 형성되므로 평지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예로, 장성(長城) 백양사(白羊寺) 앞산 백학봉(白鶴峰)에 있는 김성수(金性洙) 전 부통령 배위(配位)의 묘는 군신봉조형(君臣奉朝形)으로 높으면서도 높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다만, 그 혈처(穴處)는 안산으로 보아 간좌(艮坐)가 정좌(正坐)인데 인좌(寅坐)로 용사한 것이 아쉽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아마 간좌(艮坐)는 장자에게는 흉좌(凶坐)라는 잘못된 역학이론(易學理論)에 따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충북 단양 구인사(救仁寺)의 초대주지(初代住持) 상월당(上月堂)의 묘는 천심십도(天心十道)에 맞게 자리잡은 명당으로서 이 묘를 중심으로 스님들이 똘똘 뭉쳐 사찰을 크게 번창시키고 있다.

6. 혈장(穴莊)의 구성 및 4대요소

(1) 심혈법(尋穴法)은 끝없이 넓고 넓은 산야에 지기(地氣)가 모여 응결되는 반평(半坪) 남짓한 혈처를 찾는 방법이다. 그러나 혈처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명당 주변의 산세(山勢)와 수세(水勢)를 살펴 작혈(作穴)할만한 요건을 자세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산야(山野)에 나가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혈처를 찾아야 할지 사실상 막연하고 가물거려 마치 뜬구름 잡듯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혈처를 찾는 데는 고서(古書)에도 “세필원관 혈필근찰(勢必遠觀 穴必近察)”이라 하였다. 이는 “용세는 멀리서 보고 혈장(穴莊)은 가까운 자리에서 살피라”는 말이다. 농사를 지으면 발에 흙이 묻게 마련이듯이 풍수지리에서도 명당을 제대로 보려면 다리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니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아야 한다. 그리고 철학자처럼 사색(思索)을 하고, 예술인처럼 관찰하며, 시인처럼 느껴보아야 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지식인일수록 문자우월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짙은데 풍수지리학은 문자를 통하여 배우는 데에 한계가 있고, 특히 풍수지리의 핵심이며 제일 어렵다는 재혈(裁穴)은 문자를 통하여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현장에서 직접 실습을 통해서 만이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격언에 구산삼년(求山三年) 재혈십년(裁穴十年)이라 했다. 또 용은 비록 찾기 쉬우나 재혈은 어렵다[尋龍雖易裁穴難]는 말이 널리 전해져 오고 있다. 이는 재혈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풍수지리의 명언(名言) 중의 명언이다. 같은 혈장내(穴莊內)에서도 좌향(坐向)에 따라서 체백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이니 정(正) 좌향을 정하고 혈토(穴土)에 용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명당은 천리내룡(千里來龍)에 일석지지(一席之地)라 하였다. 하나의 명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산줄기가 천리를 내려오니 이는 명당의 대소여부(大小與否)를 확인하는데 근거로 삼는다. 다만 혈처의 진위(眞僞)를 판별하는 데는 위에서 오는 용의 길고 짧은 것을 논하는 것보다도 바로 혈 뒤에 있는 용(龍: 到頭龍)의 일절(一節: 入首龍)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살아있는 용[生龍]인지 죽은 용[死龍]인지를 판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2) 혈장(穴莊)에 대하여 선현(先賢)이 말하기를, 내룡지좌우협하개지자(來龍之左右挾下開枝者)는 위익(爲翼)이고, 도두미고자(到頭微高者)는 위뇌(爲腦)이며, 뇌지하미훈처(腦之下微暈處)는 위구(爲毬)이고, 구하미요처(毬下微凹處)는 위소구(爲小口)이니, 시위토축(是爲土縮)으로, 재혈중지하자첨(在穴中之下者簷)이고, 소구지하유승금(小口之下有乘金)이며, 타위여기(他爲餘氣)라 하였다.

이를 풀어서 자세히 설명하면 내룡(來龍)에서 좌우 아래로 벌린 가지를 날개[蟬翼]라 하고, 도두(到頭)의 살짝 높은 데를 뇌(腦: 巒頭)라 하며, 뇌(腦) 아래의 미미하고 두툼한 곳[微暈處]은 구(毬)이고, 구 아래의 미미하게 들어간 곳[微凹處]이 혈처(穴處: 小口)이니, 이는 흙이 단단히 뭉친 곳[土縮: 壓縮, 盤石, 非石非土, 巖石不用]으로, 이 안(內)에는 혈토(穴土)가 있고, 하단(下端)에는 이를 받쳐주는 처마(簷)가 있으며, 혈처(小口) 아래에는 두툼하게 반원(半圓)으로 싸준 곳[乘金: 圓暈]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맥이 흐르는 곳[餘氣]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명당이 형성되는 형상(形狀)이다.〈명당의 기본도 참조〉

(3) 혈장(穴莊)의 지층(地層)은 표토(表土)→점질토(粘質土=斷土)→풍화토(風化土: 마사토)→혈토(穴土=珍土)→뇌토(腦土)로 형성되고, 혈판(穴坂)은 만두(巒頭: 腦)→선익(蟬翼)→구(毬)→소구(小口=穴莊: 印木, 相水, 穴土)→첨(簷)→원훈(圓暈: 乘金)→여기(餘氣)로 구성되는 것이고, 혈토(穴土)는 비석비토(非石非土)로 광채와 윤기가 나는 토축(土縮)된 홍황색(紅黃色)의 생토(生土)인 혈토(穴土)에 용사를 해야 한다.

․표토(表土)…생물이 살 수 있는 유기질 토양.

․점질토(粘質土)…끈끈하며 찰진 성질의 토양.

․풍화토(風化土: 磨砂土)…암석이 부식된 토양.

․혈토(穴土)…유골을 안장해야 하는 지층.

․뇌토(腦土)…땅의 근본토.

위와 같이 혈토에 체백을 안장하면 이로 인하여 후손이 음덕을 받을 것이요[玄應的結果], 유골이 백년이든 천년이든 황골(黃骨: 紫骨)로 오랫동안 보존되니 이것이 바로 과학적 실증(實證)이다.

이와 같이 혈은 원래 흙을 본체(本體)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색(五色)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여기에는 황홍색(黃紅色)을 주(主)로 하고, 다른 사색(四色)을 종(從)으로 하는 경중(輕重)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간과(看過)해서는 안 된다.

※ 혈장의 지층구조로 보아 체백(體魄)은 혈토에다 안장(安葬)하여야 한다. 만일 체백을 얕게 모시면 지기(地氣)는 밑으로 지나갈 것이고, 너무 깊이 모시면 지기는 위로 지나갈 것이니 혈토(穴土)에 정확하게 모셔야만 지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어려운 일 중에서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 외견상 청룡 백호가 환포되고 용이 행룡을 다하여 멈춘 곳에 만들어진 자리가 생기응결지(生氣凝結地)로 보이더라도 땅을 파서 혈토가 나오지 않으면 가혈(假穴: 虛花)인 것이다. 천광(穿壙)에서 혈토가 나오지 않고 퇴적잡토(堆積雜土)나 버석버석한 사토(死土), 질퍽질퍽한 점질토(粘質土), 모래나 자갈이 나오는 흙에는 작혈이 되지 않는 것이다.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는 목적은 길지를 찾는데 있으니 광활한 땅에서 아무 곳이나 흙을 파서 혈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혈토가 있을만한 곳을 이론(理論: 理氣論)과 지형(地形: 形氣論)으로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풍수지리학이다.


풍수지리학을 연구하는 목적은 길지를 찾는데 있으니 광활한 땅에서 아무 곳이나 흙을 파서 혈을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혈처는 지형(地形: 形氣論)에 이론(理論: 理氣論)이 부합되는 곳이니 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풍수지리학이다.


(5) 혈장(穴莊)의 구성에는 승금(乘金), 인목(印木), 상수(相水), 혈토(穴土)의 4대요소가 있다.

 ․승금(乘金)이란 표면에 달무리같은 원훈(圓暈)으로 합금(合襟)되어 외부에 혈형(穴形)이 형성됨을 말한다.

․인목(印木)은 광중(壙中)에서 혈판(穴坂)을 싸주는 한편의 음사(陰砂: 단단한 땅)로서 목근(木根)과 해충의 침입을 막아준다.

․상수(相水)는 광중에 한줄의 노끈만한 물길이 가늘게 혈판을 싸주는 보호수로서 관내(棺內)의 습도를 조절한다.

․혈토(穴土)는 관을 수용할만한 3×6척(尺) 혈판 내의 흙을 말하는 바, 흙발(組織)이 떡가루처럼 가늘다[혹은 세사석․細砂石]

혈토는 흙발이 가늘어야 보온과 보습이 잘 되고, 또 밝은 색과 윤기가 나는 황홍색(黃紅色)의 지질(地質)로서 생기가 있다. 혈토는 본산(本山)의 본색(本色)과 같은 색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묘를 쓸 때 인목, 상수, 혈토를 착오없이 찾으려면 표면에 나타난 혈판(穴坂)을 표시만을 해서 인부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고, 지층(地層)을 벗겨낸 후 지관이 직접 광(壙) 안에 들어가서 삽질을 해보아야만 비로소 이들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

혈토에는 태극무늬가 있는 혈토와, 흙이 단단히 압축된 반석(盤石)의 혈토가 있는 바, 이를 정수(精粹)라고 한다.

태극무늬혈토는 일반 삽으로도 팔 수 있는 혈토로, 바닥을 수평(水平)으로 깎아보면 태극무늬를 발견할 수 있다.

반석은 소모태를 파는데 무척 힘이 드는 단단한 혈토로서 옛 선사들이 이를 석곽이라고 일컬었다.

(6) 여러 지관들의 간산록을 살펴보면 국세(局勢)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말들을 했지만 3×6척(半坪)의 혈처(穴處)에 대해서는 논(論)한 바가 거의 없다. 명당에서 제일 중요한 혈처를 간과한 것이니, 이는 풍수지리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소홀히 한 것이다.

지기계(地氣界: 氣長波)는 혈장(穴莊)보다 넓기 때문에 지기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도 넓으니 이를 인지하고 본 학문연구에 참조하여야 한다.

우리 학회는 통맥법(通脈法)으로 명당의 위치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난 다음 최후에는 토질탐색봉(土質探索棒)으로 지층(地層)의 토질을 탐색하여 혈처를 확인한다.

(7) 수세(水勢)는 혈장(穴莊)을 중심으로 다음의 여러 형태가 있다.

① 형기론(形氣論)에 의한 수법은 물 흐르는 상태에 의하여 길흉을 판단하는 것이니 수산(收山)과 수수(收水)를 정확히 알고 보아야 한다. 물의 흐르는 형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데 지현굴곡(之玄屈曲: 三回五轉)되는 것이 유정(有情)한 것이요, 곧게[直] 흐르고 사(瀉))하고 급류(急流)하면 흉하고, 유유히 흐르면서 환포(環抱)하고 맑은 물[淸水]이어야 길하다.

② 옛 사람의 말에 수불상당(水不上堂)이면 휴점혈(休點穴)이라 했다. 흐르는 물이 혈처 앞을 지나지 않으면 작혈(作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水]은 기(氣)의 발산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또한 혈처는 산진수회(山盡水回: 맥이 다하고 물이 감아주는 것)로 맥의 종지(終止)를 의미하는 것이니 용의 시종소(始終所)를 알려면 반드시 물의 경계[水界]를 살펴야 한다.

가) 조수(朝水)……혈 앞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말한다. 혈처를 감싸 안은 듯 휘돌아 흘러가야 길수(吉水)다. 물이 깊고 많을수록 좋으며, 직급충사(直急衝射)로 뫼를 찌르면 흉한 살기(殺氣)를 품고 있어 무서운 재앙을 불러온다.

나) 해조수(海朝水)……묘 앞에 있는 바닷물을 말한다. 물 중에서 가장 큰물이므로 기운도 웅대(雄大)하다. 이러한 곳에는 큰맥이 멈추어 혈처가 형성되는 곳이니 대지(大地)이므로 대부(大富) 대귀(大貴)를 얻게 된다. 이는 당문파(當門破)로 본다.

다) 취수(聚水)……사방의 물이 흘러와 모이는 것을 말한다. 이에는 연못, 저수지, 호수(湖水) 등이 있으며 이는 많은 재물을 불러오고, 깊고 맑은 물이면 부(富)가 형성된다. 만약 물이 마르면 재물도 따라서 흩어진다.

라) 옥천수(玉泉水)……혈 앞에서나 옆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을 말한다. 혈처가 대지(大地)로서 지기(地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샘물이 뿜어나오는 것으로 보며 자손들이 부귀를 누린다. 대개 대지에는 옥천수를 동반(同伴)한다. 그러나 고서(古書)에 천수건즉(泉水乾則) 발복진의(發福盡矣)라 했다. 샘물이 마르면 복이 다한다는 것이다.

마) 배반수(背反水)……혈을 감싸주지 않고 거꾸로 등을 돌려 흐르는 물이다. 이에는 타인에게 배반을 당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반하기도 한다. 성정(性情)이 거친 자손들이 나오기도 한다.

바) 직급류수(直急流水)……천자형(川字形)으로 직급류(直急流)하면 재물의 큰 손실이 있고, 인정(人丁)의 피해도 동반할 우려가 있다. 당문파(當門破)에서는 더욱 이 원리가 적응된다. 물형론(物形論)에서는 팔자형(八字形)으로 흐르면 남녀간에 음탕한 일이 발생한다고 한다.

사) 천지수(天池水)……백두산의 천지,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산꼭대기에 있는 물이나 호수(湖水)를 말한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또한 밑에서 물이 용솟음쳐 뿜어나오는 못은 정기(精氣)가 왕성하는 것이니 백두산 천지가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지기(地氣)가 충만한 금수강산인 것이다. 만약 천지의 물이 마르면 정기(精氣)가 쇠약해졌음을 시사하는 의미를 지닌다.

아) 수수(收水)……수구(水口)는 빽빽하고 주밀(周密)하며 관쇄(關鎖)하고 물의 흐름이 정의(情意)를 못잊어 돌아보듯 머뭇거리는 것이 길(吉)하고, 화표사(華表砂)가 뚜렷하고 한문사(捍門砂)가 단단하면 귀격(貴格)이다.

자) 수법(水法)의 제론(諸論)……이기론에 의한 수법(水法)은 파구(破口)의 방향으로 정한다. 즉 병오좌(丙午坐)에 을진파(乙辰破)로 우수좌출(右水左出)하면 크게 발복한다는 것은 파구의 방향에 의한 것이라고 하나 사실은 물의 흘러가는 상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사각(砂角)의 정기(精氣)는 인정(人丁)을 관리하나, 물의 정기(精氣)는 재물을 관리하는 바 이기론에 의한 수법보다도 형기론에 의한 수법(水法: 水口의 形狀)이 더 중요하며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속발하고 더 큰 것이다.

7. 국정(國政)에 반영 하여야 한다

(1) 풍수지리연구의 궁극적인 목적은 명당인 혈처를 찾는 데에 있다. 그러나 혈처를 찾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평생을 이에 종사하고서도 막상 산에 가서는 장님 코끼리 다리 만져보는 꼴이 되는 풍수가 허다하다.

앞에서도 기술했지만 넓고도 넓은 산야에서 체백 한 구 들어갈만한 공간의 혈처를 꼭 찍어 집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지는 많은 이론과 사례에 대한 공부를 하고도 실제로 현장에 가서는 뜬구름 잡는 듯하다가 미궁에 빠져 일을 그르침으로써 일반의 불신을 사게 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땅의 진리와 형기 및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고 그에 맞추어 공부를 한다면 혈을 찾는 일이 꼭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2) 우리나라에서 국토 개발을 책임지는 분들도 풍수지리를 연구하여 국정(國政)에 활용했으면 한다. 그랬더라면 광주(光州)의 경우와 같이 제2순환도로(두암동에서 지원동 사이)를 개설하면서 무등산의 용맥(龍脈)을 잘라서 지맥(地脈)을 끊는 혈맥(穴脈)의 손상행위와 같은 오류는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선 코앞의 편리만을 생각한 나머지 무등산(無等山)의 정기(精氣)를 저토록 파괴해버리는 우(愚)를 범하였으니 이는 천추(千秋)의 한을 후손에게 남긴 것이다. 위정자(爲政者)는 앞으로 토목공사를 할 때에는 풍수지리적 측면도 고려하여 시행할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3) 우리나라 대학에 풍수지리학을 가르칠 수 있는 학과를 지리학과의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항간에 떠도는, ‘대통령이 나올 자리’를 잡아주거나 ‘장관이 나올 자리’를 잡아주는 음택(墓地)풍수지리학 만을 가르치자는 것이 아니다. 곁들여서 산 자(者)를 위한 실용적인 풍수지리학을 연구하자는 것이다.

건축학에 있어서의 터, 환경학에 있어서의 조경(造景), 인류학의 발전과정, 민속학(民俗學)에 있어서의 풍속(風俗), 더 나아가 효율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국토개발 등 풍수지리의 응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

또한 혈(穴)은 사각형상(砂角形象)에 의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그 결과가 나타나므로 활동범위에 미치는 영향이 그 음양오행에 의하여 귀결(歸結: 이루어지고 맺혀짐)된다. 하지만 명당도 아닌 곳에서 명당의 대소(大小)를 가리고 있는 일이 흔하다. 그러므로 음양의 이치로 혈처 여부를 판단하고, 음양오행[砂角의形狀]의 원리로 혈의 대소를 판별해야 한다. 이로 미루어볼 때 통맥법(通脈法)이야말로 음양오행의 이치로 작혈된 길지(吉地)를 찾는 데는 가장 합리적인 이론이다.

그러므로 음양의 원리에 의하여 생성(生成)된 혈처(穴處)를 찾아 용사(用事: 裁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관들은 이러한 원리를 도외시하고 함부로 판단하고 점지하여 용사를 하고 있으니 풍수지리 연구에 전심(專心)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개탄을 금치 못 한다

五. 오늘날 장례문화의 현황

1. 매장문화

(1) 초상시의 용사법

① 손톱 한 조각에서부터 두발 한 올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부모님의 체백(體魄)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조상의 체백은 한 조각이라도 분실됨이 없이 영구히 완벽하게 모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事前)에 신후지(身後地)를 점지하여 그곳에 용사하는 것이 마땅하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는 초장(初葬) 뒤에 반드시 관(棺)을 빼드리고 바람을 쐬어드리는 것이 큰 효도인 양 관례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잘못된 관행이다.

② 옛날부터 수의(壽衣)는 명주를 많이 사용하였으나 명주는 삭지 않고 체백에 달라붙으므로 절대로 좋지 않다. 내가 수 많은 이장(移葬)경험을 통해서 얻은 이와같은 “명주수의(明紬壽衣) 절대불가” 주장은 1992년부터 홍보하였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오늘에야 겨우 일반에게 계몽되어가고 있어 만시지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수의는 반드시 깨끗하게 삭아지는 순 마포만을 사용해야 한다.

③ 초장(初葬)이라도 목관(木棺)을 제거하고 용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입관(入棺)할 때 관내(棺內)에 체백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투입한 화장지나 옷가지 등이 4, 5년 지나면 먼저 부패하고, 체백이 탈골되면서 두상(頭上)이 비뚤어져 당초의 좌향이 달라지게 되니 좋지 못한 영향이 늦어도 7, 8년 후에는 자손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관(棺)을 제거하고 체백을 소모태(小母胎)에 안치(安置)한 후 흙으로[흙은 부패하지 않음] 두상을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상도 편안히 영면하게 되고 미래에 혹시 닥쳐올 화(禍)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④ 석관(石棺)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 석관의 내력은 1977~1978년경에 전북 익산군 황등면(益山郡黃登面; 産地) 지역의 석재사(石材社)에서 일본으로부터 수입한 절단기로 규격에 맞게 절단하여 석관을 제조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더욱 확산되어 갔다.

현재는 용사(用事)시 석관을 사용하지 않으면 불효자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이같은 인식은 석관을 사용하면 목근(木根)이나 기타 충(蟲)종류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념에서 오는 것이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목근은 석관 밑으로 침범하고 해충은 천광내(穿壙內)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으로,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막대한 해(害)를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석관을 사용한 후손들이 조상의 묘를 다시 이장할 때 무척 후회하는 부분이기도 한다.

천광내에는 수증기가 발생하게 되는데 관은 이를 흡수하여 습도를 자체내에서 조절해야 한다. 그러나 돌은 수증기를 흡수하지 못해 천광내에서 습도조절을 못하며, 또한 이슬이 맺혀 다시 유골에 떨어짐으로써 습기와는 상극인 체백(體魄)이 쉽게 손상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최고의 명당이라도 혈처내에서 습도조절을 하지 못하면 유골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단시일 내에 손상당하게 되어 지기(地氣)를 제대로 발현(發現)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옛날 일부 부유층에서는 유리관을 사용했는데 관내(棺內)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직접 확인한 후로는 사용을 중지했다는 설도 있다.

원래 석관은 돌이 아니었다. 고려 초기부터 조선조 초기까지는 꼬막이나 조개껍질 등 석회질성분을 불에 구워 이를 빻아서 체로 친 가루를 술[淸酒]로 반죽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의 사례로 우리는 몇 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깨끗한 유골을 종종 볼 수 가 있다.

현재 우리 학회에서는 붕판(棚板)을 제작하여 간편하게 옛 석관을 대신하는 방법을 복원하였다.

⑤ 초장(初葬)시 명정(銘旌)을 관 위에 덮고 성분(成墳)하는 예가 허다하다. 그러나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명정은 화학섬유로서 오랫동안 부패하지 않고 체백을 싸고 있게 되어 습기를 조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체백이 부패하면서 새까맣게 되므로 절대로 사용하지 말고 소각시켜야 한다. 꼭 명정을 사용하려면 한지(韓紙)로 별도로 만들어 사용하여야 한다.

⑥ 체백을 안장하기 위해서는 천광(穿壙)을 완전히 매립한 후(점질토까지 매립) 화학용 생석회(生石灰: 强石灰) 7, 8포를 흙과 혼합하여 골고루 덮고 그 위에 봉(封)을 짓는 것이 가장 좋다. 땅을 판 후 단단하게 다져도 비가 오면 건수(乾水)가 스며드는 것이니, 이 방법은 건수를 방지하고 유택(幽宅)을 장기간 보존하는 가장 좋은 용법이다.

⑦ 진송장은 선산으로 바로 갈 수 없다고 해서 일단 다른 곳에 모셨다가 육탈(肉脫) 후에 선산으로 모시는 이중의 용사를 하고 있는 것이 전래(傳來)의 장법(葬法)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선산으로 모실 계획이라면 구태여 이중으로 용사할 필요는 없다. 이는 탈골된 유골은 깨끗한 반면에 육탈이 되지 않은 체백은 깨끗하지 않다는 고정관념에서 생겨난 생각이므로 이는 허무맹랑한 속설이니 마음에 꺼릴 바가 못 되는 것이다.

(2) 이장시의 용사법

① 이장(移葬)할 때 소모태(小母胎)를 판 후 마포를 바닥에 깔고 체백을 안치(安置)하여 초상 때와 같이 두상을 흙으로 고정시키고 마포로 덮은 후 명정(銘旌)을 펴고 천개(天蓋)를 덮고 점질토(粘質土)까지 매립한 후 생석회(生石灰: 强石灰)를 흙과 혼합하여 골고루 덮고 봉분을 만든다.

이때 소모태를 30cm × 길이180cm로 파서 유골을 안치(安置)하면 토와(土瓦: 平瓦)의 너비는 34~36cm [5매 활용]이고, 붕판의 너비와 길이는 40~60cm[3매 활용]이므로 활용이 가능하다. 이와같이 천개를 토와나 붕판으로 사용하는 것은 유골(遺骨)의 상극(相剋)인 습기[壙內에서 지열(地熱)에 의하여 발생]를 흡수하여 수분을 제거, 또는 조절할 수 있어 더욱 좋다. 고대(古代)에 옹관을 사용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요즘 토와(土瓦)는 유액을 발라 제작하므로 습기를 흡수하지 못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학회에서는 붕판(棚板: 세라믹 재료로 제작)이라는 새로운 천개를 만들어 사용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큰 호평을 받고있다.

② 시신(屍身)은 생기(生氣)의 도움을 받아야 곱게 육탈(肉脫)되어 인체생기(人體生氣)의 정화(精華)인 체백(體魄)만 남는 것이다. 그래야 죽은 사람도 삼라만상의 대질서에 순응하게 되고 살아있는 후손들도 복을 받게 된다. 시신이 곱게 육탈되어야 함은 명혈(名穴)에 든 체백의 당연한 권리인 것이다.

그러나 육탈이 되지 않았을 때 체백을 깨끗이 한다하여 대칼을 사용하여 유골을 추려내는 것은 절대로 잘못된 일이다. 이런 때는 육탈이 덜된 상태대로 용사해야 한다.

〈예〉깨끗한 체백과 육탈이 덜된 진체백의 합장은 불가하다고 구전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어떠한 서적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음- 이는 허무맹랑한 속설에 불과하다. 나는 친산(親山)에 1년 6개월 만에 육탈이 되지 않은 선비(先妣)를 선고(先考)와 함께 합장으로 모셨다.

③ 소모태(小母胎)를 낼 수 없는 토질인 잡토(雜土: 腐土)나 점질토(粘質土)에는 절대로 용사하면 안 된다. 여기에 용사하면 유골보존이 불가능하며 단시일 내에 유골이 손상되면서 그 영향이 즉시 자손에게 미친다.

(註) 풍수인 나도 부모의 유해를 직접 이장할 때 정신적 부담이 커서 며칠을 고민과 걱정에 싸여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전문인도 아닌 사람이 남의 손을 빌려 용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지관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재차 용사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말없는 체백에게 죄를 짓는다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죄가 없음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는 흉터에 집이나 묘를 쓴 다음에라도 그 주변에 있는 좋은 기운을 끌어다가 좋은 터로 개조할 수 있다는 등의 황당무계한 말들로 사람을 현혹시키고 있으며, 무질서한 토지의 형질변경(形質變更)등으로 국토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나는 이러한 현실을 목격할 때마다 항상 너무나 큰 실망과 한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2. 화장문화

(1) 우리의 사회와 국가는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상호 보완적(補完的) 발전으로 인해서 인간생활[文明]의 질적인 향상과 성숙(成熟)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느 한쪽만 파행(跛行)적으로 발전하면 모든 인간생활은 파국(破局)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그저 인지(人智)만 무한히 발달할 뿐, 이를 통섭(統攝)하고 조정하여 공존공생(共存共生)을 위한 이성적(理性的) 질서가 상실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상상(想像)해 보라! 이는 효를 기본으로 하는 인간(人間)의 정서(情緖)가 결핍(缺乏)되고 동시에 지도자(指導者)들이 국민정신문화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하는 노력을 약화시키는 풍조(風潮)가 만연(蔓延)하게 될 것이다.

(2) 인간은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대자연의 이치에 순응함이 원칙이다. 그런데 현재 많은 세인(世人)들은 선조들의 체백(體魄)을 매장(埋葬)하지 않고 바로 화장하여 납골당(納骨堂)에 안치(安置)하고 있다. 화장한 유해(遺骸)는 유전인자(遺傳因子: DNA)가 소멸되어 하나의 숯덩이로 변한 회신(灰燼)에 불과한 것으로서 도저히 선조들의 유혼(幽魂)이 깃들어 있는 상징(象徵)으로 볼 수가 없는 것이며, 또한 매장할 때보다도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예를 따라 납골당에 모신다는 것은 정말 우리의 전통과 정서(情緖)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옛날 고려장 때와 같이 육친의 존속이 아니라 한 늙은이를 마치 폐기물과 같이 경홀시(輕忽時)하는 기풍을 일으킨다면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손이 선조의 체백으로부터 얻어지는 지기(地氣)의 향수(享受)[玄應的結果]를 얻을 수 없어 현존하는 후손들의 번영을 기약하기 어려우며 겸하여 이는 국민 정서에 경박(輕薄)한 영향이 미치고 전통적 미덕인 충효사상을 둔화시킨다. 즉 인간도덕의 기본인 효와 경로사상(敬老思想)에 대한 정서를 훼손시키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충의심이 말살될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절대 그래서는 안 되지만-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는 사상의 풍미로 사회정서가 삭막하여져 잘못되면 자살풍조가 만연하게 되고 흉악범이 속출하여 우리나라의 발전을 저해(沮害)하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유대교의 율법 스승으로 탈무드를 쓴 마빈 토케이어 씨는 2010년 8월6일 서울 연지동 기독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간담회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정통의 상실에 대한 우려를 표한다.”고 하면서 “한국이 잘살게 됐고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했지만 영혼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로봇은 과거가 없지만 인간은 미래를 위해 과거의 도덕과 지혜를 활용해야 한다.” 라고 말하였다. 이 뼈아픈 한마디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의 국민 정서를 위해서 각성하고 또 각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한다.

(3) 화장법(火葬法)은 사실 어쩐지 선조의 영혼(靈魂)이 안정처(安定處)를 상실하여 마치 허공(虛空)에 부유방황(浮遊彷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한 하얀 석조물(石造物)로 지상(地上)의 공간중에 싸늘하게 축성(築成)된 납골당에 접근하기엔 나 자신도 진율감(震慄感: 두려워서 몸을 떪)과 혐피감(嫌避感: 꺼리어 피함)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이 마치 과거 상여(喪輿)를 보관한 상여집과 같이 느끼니, 이러한 흉물로 남게 될 납골당을 설치한다는 것은 다시 심사숙고해봐야 할 사안이라 사료된다.

(4) 납골당은 이의 장려로 인하여 차후에 많은 납골당이 설치되었을 때 먼 후세에 주인을 잃게 된다면 이것이 허물어져 흉물(凶物)이 되고, 주인이 없는 납골당이나 또는 누적(累積)된 폐석물(廢石物)의 많은 잔해(殘骸)가 쌓이게 될 것인데 이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일본은 도서국가(島嶼國家)로서 지기(地氣)가 미약(微弱)하여 매장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납골묘를 권장실시 하였으나 현재는 그 잔해처리에 고민(苦悶)을 하고 있다. 또한 납골당을 만들기 위한 석재의 재료를 채취하기 위하여 산을 파헤치는 자연 환경의 훼손은 자연보존에도 큰 역행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체백(體魄)을 화장하여 그 유골(遺骨)을 분쇄(粉碎)한 가루를 옹기(甕器)에 장기간 보관하면 공기중의 습기를 흡수하여 유골이 축축해지면서 시일이 지남에 따라 악취와 해충(害虫)이 발생함은 자연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위와 같이 흉물로 남게 될 석조물에 대한 거리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대안의 매장법(埋葬法)이 필요하게 되었다

六. 새로운 합동묘의 창안(創案)과 제창(提唱)

최근에 ‘동아일보’에 게재(揭載)된 기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례 1) 전국 분묘 1435만기… 서울면적 1.2배[2010-07-14]

항공촬영-현장조사 첫 실측

정부가 항공사진 판독과 현장 조사를 통해 전국의 묘지 현황을 파악한 결과 면적은 여의도의 85배에 달하고, 분묘 수는 1435만 기(基)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1∼5월 대한지적공사의 항공사진과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해 경기 안산시, 충북 옥천군, 전북 장수군, 경남 남해군, 전남 장흥군 등 전국 5개 시군구의 묘지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국 묘지 면적이 718km²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13일 밝혔다.

이는 서울 여의도 면적(8.4km²)의 85배, 서울시 면적(605.3km²)의 1.2배에 이르는 규모다.

    -중략-

최근 화장이 늘고 있긴 하지만 지난 5년간 매년 8만 기의 분묘가 증가해 여의도 면적의 절반이 매년 묘지로 변했다.


사례 2) [횡설수설/정성희]사라지는 ‘묘지 강산’[2010-07-15]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풍경 중 하나가 엄청나게 많은 묘지이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노라면 크고 작은 무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매장은 인류의 오랜 풍습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망자(亡者)가 양지바른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서양은 공동묘지가 대부분이고 묘지가 마을과 생활공간 가까이에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풍수(風水)가 좋으면 가파른 산꼭대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상의 묘를 명당에 써야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풍수사상이 동양 3국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깊게 뿌리를 내렸다.

  -중략-

▷그러나 매장 선호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묘지 강산’은 축소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처음으로 화장률(52.6%)이 매장률(47.4%)을 넘어선 데 이어 최신 통계인 2008년 기준 화장 비율이 61.9%를 기록했다. 올해는 68.4%에 이를 것이라는 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추정이다. 화장률 99.9%인 일본에는 못 미쳐도 1970년대 10%였던 데 비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할 만하다. 사회지도급 인사가 화장을 선택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종교처럼 강고하던 매장 선호가 줄어든 요인은 유교적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삶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등장일 것이다. 당장 살기도 힘든 형편에 값비싼 묘역을 매입하고 절기마다 벌초하고 제사 지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도시인의 삶 속엔 없다. 여기저기 흩어진 4대나 5대 선조의 묘역을 찾아다니며 성묘하는 세대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납골당의 증가와 무연고 묘지의 급증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한민족을 지배한 매장문화가 세월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정성희 논설위원]


우리 민족은 전통적인 가례(家禮)에 의하여 사대(四代)인 고조(高祖)까지는 방안 제사를 모시고 현조(玄祖: 五代)부터는 시제(時祭)로 모시고 것을 기조(基調)로 하여, 우리 학회에서 근래에 새롭게 창안한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의 장법(葬法)은 윗 선조들을 합동묘에 봉안(奉安)하고 시향(時享)을 한 곳에서 모실 수 있는 장법(葬法)이다. 이러한 장법을 활용함으로 인하여 흔히 사촌간(四寸間)만 되어도 남남으로 지내고 있는 현실에서 탈피(脫皮)하여 일가종족(一家宗族)이 함께 만남으로써 서로간의 화목의 장(場)을 이루게 될 것이며, 자녀들에게는 숭조사상(崇祖思想)을 앙양시키어 인성교육에도 큰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사라져 가는 효친정신(孝親精神)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함으로써 미풍양속(美風良俗)을 이어갈 것이며, 또한 이를 국가매장교화정책(國家埋葬敎化政策)의 기본으로 삼게 되면 우리 강토의 기운(氣運)에 의한 국가의 발전과 국민정서의 함양(涵養) 및 민복(民福)을 누리는 지대한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본 장법은 조상의 유골을 화장(火葬)하지 않고 한 소모태(小母態)에다 한 분씩 봉안하면서도, 한 봉분에 수십 분을 합동으로 모시는 장법으로써 이는 재래식 일반묘의 장법을 절충 보완(補完)하여 창안한 획기적인 장법으로, 이는 고대 중국에서 활용하였던 장법과, 우리나라에서 활용했던 평장법(平葬法, 暗葬法, 偸葬法)을 겸용하여 창안한 매장법이다[先祖合同墓 : 2008. 12. 8. 特許權 取得].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하여 제정한 정책 당국의 안(案)을 보면 전 국토의 1%를 차지하는 약 이천만기(二千萬基)여의 묘지를 정비하는 데에는 화장(火葬) 및 납골당만이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후손이 관리할 수 있는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와 더불어 산야(山野)에 산재(散在)해 있는 많은 무연묘의 유골(遺骨)을 한곳에 합장하는 무연총(無緣塚)의 매장법을 동시에 활용하면 효율적인 국토관리는 물론, 국민의 정서함양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또한 화장하여 납골당에 봉안했던 유골을,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법인 본 선조합동묘 장법으로 다시 봉안하는 것을 현재 경향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共感)과 호응을 받고 있음을 첨언하는 바이다.

선조합동묘 장법의 장점은

● 매년 시제(時祭)에 종족이 함께 모임으로서 문중의 화목을 도모할 것이요,

● 자손들의 효친사상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 선조들의 실묘(失墓)에 대한 위험성이 없으며,

● 벌초(伐草)와 성묘(省墓)가 간소화되고,

● 매장 경비와 유지비가 납골당보다 절약되며,

● 자연 환경의 훼손을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장법이며,

●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순리에 따른 장법이니,

국가에서도 본 선조합동묘 장법을 법제화하여 시행하게 되면 국가의 전통 장묘문화와 국민의 정서에도 공감을 일으킬 것으로 확신하며 멀지 않는 장래에 국민정서에 변화가 있어 고유의 전통적 매장문화의 틀을 유지하는 본 선조합동묘 장법이 큰 호응을 얻어 전국적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확신한다. 

七. 양기론(陽基論: 陽宅)의 개념(槪念)

1. 우리 선인(先人)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스스로 아름다운 산천의 살기 좋은 곳을 찾아서 그 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물 좋고 따뜻하며 물산(物産)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교통이 편리하여 생활조건이 갖추어졌을 뿐만 아니라, 자연으로 부터의 재앙을 피하고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며, 안으로는 주민의 순화(醇化)를 조장하여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지(吉地)를 선택하였으니, 이는 오늘날의 풍수학적 견지에서도 비록 대소(大小)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거의 손색이 없는 길지를 선택함으로서 이에 따라 역사의 흥망성쇠와 부귀빈천을 재래(齎來)하게 되었다.

2. 인간은 태초(太初)에 자연에 순응(順應)하면서 살아 왔기에, 선사(先師)들은 처음에는 양택 풍수를 착안하여 연구하게 되었고, 이것이 근간(根幹)을 이루어 발전하다 보니 근심지영(根深枝榮)의 이치에 의하여 산 자 뿐만 아니라 죽은 선조의 유택도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모시어 이로 인하여 효사상(孝思想)을 승화시킴으로써 그 자손들이 번영할 수 있으리라는 관념에서 음택 풍수지리까지 연급(延及)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양택(陽宅)분야의 연구방향      

(1)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길지(吉地: 陽氣)를 택하여야 하고,

(2) 사람이 생활하는 곳의 주위 환경이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을 중시하여 작은 소음(騷音)의 진동공해(振動公害)도 인체에 누적되면 훗날에 발병의 원인이 되며, 정음(淨音)이나 생활주위의 환경에 의해서 정신의 안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러한 심리적 작용을 원용(援用)하여 항시 마음의 안정감을 가지게 함으로써 가족들의 평정(平靜)과 건강이 유지되도록 하고,

(3) 우리 삶의 생애(生涯)에 대한 역학(易學: 命理學)의 원리(原理)도 함께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4. 음택과 양택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길지라 할 수 있을까. 풍수학적 원리에 의하면, 길지는 산진수회(山盡水回)하고 환포장풍(環抱藏風)으로 형성된 곳[局], 즉 산이 다한 곳에 물이 활궁체로 휘감아주고 청룡과 백호가 둘러 안음으로서 지기(地氣)의 누설을 방지하고 외부의 흉살을 방어하여 잘 보호된 국내(局內)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다만, 양기(陽氣)는 장룡(長龍)으로 산진처(山盡處)에 혈처가 넓고 물이 크게 합취(合聚) 또는 만곡(彎曲)하며 사각(砂角)도 크게 교결(交結)하고 조공(照拱)하며, 국세(局勢)가 넓고 관활(寬闊)하여 평화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음택(陰宅)은 혈처로 꽉 짜이면서 좁으며 긴(緊)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음택은 일선(一線: 穴脈)의 맥이 응결되여 혈처가 형성된 곳이고, 양기(陽基)는 일편(一片)의 평포(平鋪)된 곳에 물[食水]이 있고, 국세가 관활하며 주위환경이 평화스러운 곳이다.

그러므로 양기(陽基)와 음지(陰地)의 지형(地形)은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니, 양기는 음택보다 역량이 크므로 국세가 넓을수록 결작(結作)이 커서 상격(上格)은 수도(首都)나 대도시가 되고, 그 다음은 군읍(郡邑) 정도가 되며, 작은 것은 향촌(鄕村)의 터가 되는 것이니, 대국적으로 지세(地勢: 局勢)를 살펴보고 소극적으로 택지형(宅地形)이나 지질(地質)을 살펴보아야 한다.

5. 우리는 흔히 양기(陽基)와 양택(陽宅)이란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데, 이의 본래의미는 마땅히 구분되어야 한다. 양기는 생자(生者)의 거소(居所)인 취락입지(聚落立地: 垈地)이며, 양택은 인간이 기거(起居)하는 건물을 지칭(指稱)하는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취락 중에서 입지인 대지(垈地)를 가장 중요시 해왔던 것이며, 그 다음이 대지 위에 조성된 건축물이다. 이는 인구분포 상의 양상으로 볼 때 지표상(地表上)의 자연환경과의 연관성이 깊음을 지리학에서도 주지(周知)하고 있는 사실이다. 양기의 조건으로는 지형(地形), 지세(地勢), 기후(氣候), 토양(土壤) 등이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事例) 한 종류의 화분 몇 개를 각각 다른 위치에 배치해놓고 성장상태를 살펴보면 발육상태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장소의 변화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름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6. 양택은 사람들이 대부분 평상시에 활동하는 곳이다. 대개 우리의 생기, 용기, 온기, 양기, 살기, 허기 등 기의 원동력은 음식물을 통해서 직접 받기도 하지만, 평상시 활동할 때에는 태양의 에너지를 받고, 쉬거나 잠 잘 때에는 땅에서 지기(地氣)를 더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주위의 여러 가지 환경과 장소 그리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집, 그 중에서도 잠자는 방은 어디보다도 지기를 많이 받는 가장 중요한 장소로서 바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실재(實在)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사람이 잠을 자고 있을 때에는 가사상태에 있는 것으로서 이때 의식은 쉬고 무의식만이 있기 때문에 어떤 기(氣)든지 침투가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서양이나 일본에서도 양택(陽宅: 陽基)을 중요시 하고 있다.

7. 명리학(命理學)하는 분들이 양택을 논할 때 동서사택(東西四宅)의 이론을 기본이론으로 강조하고 있으나 이는 하나의 가상(家相)의 이론에서 유발된 설(說)로서 양택은 그 활용도에 따라 집의 구조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생활풍수(生活風水: 生活科學), 인테리어 풍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풍수지리학을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서 나온 이론(理論)인 것이다. 양기(陽基)는 음택의 혈처(穴處)와 같이 협소한 곳이 아니고 광활하다. 이는 많은 자손(子孫: 枝葉)이 번성하면서 생활하는 곳이기 때문에 넓게 생기(生氣)가 모이는 장소여야 한다.

8. 길지(吉地)는 생기가 모이는 곳으로, 조응(照應)에 의한 주변형세의 선악순역(善惡順逆)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니, 음택은 직접 땅속의 생기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게 되나, 양기는 지상의 형세(形勢)에 의한 지기(地氣)와 조응(照應)에 의한 태양의 에너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9. 묘지(墓地)는 죽은 사람이 편히 쉬는 곳이다. 죽은 사람은 생전의 음양오행을 모두 떠나보내고 흙으로 돌아가므로 그 묘지는 땅(地氣)의 오행에 영향을 받고, 양터는 살아있는 인간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므로 지기(地氣: 龍勢)와 태양에너지의 조응과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한 영향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10. 지하(地下)에 묻혀있는 선조의 체백(體魄)은 지기(地氣)가 응결하여 거기에서 파장된 에너지는 유전인자가 동일한 자손에게 동기감응(同氣感應)으로 전파되어 부귀빈천의 결과[玄應的 結果]를 재래(齎來)하게 된다. 그런데 4대 이상이 지나면 DNA(유전인자)의 감응작용(感應作用)이 점점 희박해져 끝내는 소진(消盡)되는 것이다. 한편 양택은 후손들이 대대로 세거(世居)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반 풍수학자들은 양택의 좌향은 가택주가 타고난 사주오행에 의해서 정하여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택주가 바꿀 때마다 그 터의 가옥을 신축(新築)하여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양택은 그 집의 좌향(坐向)과 입주자(入住者)의 오행의 상생상극에 의하여 길흉화복이 재래한다고 하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이론이다.

11. 풍수지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용(龍) 사(砂) 물[水]이 잘 조화(調和)됨으로써 길지(吉地: 陽基와 陰宅)가 형성되고, 그 길지와 융합(融合)이 된 자손이 영향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병오정(丙午丁)이 수려(秀麗)하고 또 어떤 방향의 사각이 첨원(尖圓)하고 견고하면 음기(陰氣: 地氣)와 양기(陽氣: 태양에너지)의 조응(照應)에 의하여 이에 연관된 현존 인물이 영향을 받고 또한 후손도 이의 영향을 받아 태어나게 된다.

12. 양기에서는 후천팔괘(後天八卦)에 의하면 건방(乾方: 父) 자방(子方: 仲子) 간방(艮方: 末子) 묘방(卯方: 長子)은 남자방향인 바 그 중추적인 역할의 중심방향은 건방(乾方)이고, 곤방(坤方: 母) 오방(午方: 仲女) 손방(巽方: 長女) 유방(酉方: 末女)은 여자방향인 바 그 중추적인 역할의 중심은 곤방(坤方)으로써, 이는 하늘[陽氣]과 땅[陰氣]의 대원리(大原理)로서 총체적으로 건방은 남자에게 영향이 미치고 곤방은 여자에게 영향이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건방(乾方)이 단단히 싸여있으면 남자들이 성하고 허하면 쇠하고, 곤방(坤方)이 굳게 싸여있으면 여자가 성하는 것은 역학(易學)에 의해 생인(生人)에게 적용하는 원리로서 건(乾) 곤(坤)방이 미약하고 쇠약한 곳의 양택 구입이나 신축 시에는 특히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이 원리를 음택(陰宅)에 적용하고 있으나 이는 실제(實際)와 너무 거리가 멀다.

13. 부자(父子)와 형제들이 한 마을에서 살 경우, 위쪽에 손아래가 살고 아래쪽에 손윗사람이 살게 되면 이를 인도거(人倒居)라 한다. 이는 빠르고 늦고 하는 운수(運數)에 따라 그 패망(敗亡)의 증험(證驗)이 나타나는 것이니 각별이 유념하여야 한다. 이는 정서적인 면에서도 고려해 볼 일이다.

양택은 현존인(現存人)들의 건강과 부(富)가 형성되는 곳이지 귀인(貴人)이 배출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성현(聖賢), 군자(君子), 문 ․ 무관 등의 귀인을 얻으려면 음택명당을 구하여야 하고 양터도 동시에 길지(吉地)이어야 한다.

14. 양택에서는 주로 양기(陽氣=태양에너지)위에 음기(陰氣)를 받는 반면 음택(陰宅)에서는 음기(陰氣=地氣) 위에 양기를 받는다. 따라서 양택은 태양의 에너지와 지기가 융합하여 이루어진 조화(造化)로 형성된 훈풍화기(薰風和氣)로 인하여 거주인(居住人)의 건강과 생체(生體)리듬을 향상시켜 생활의 활력을 증대시키는 것이므로, 양택은 그 터에서 잉태·출생·거주하는 사람만이 영향을 받지만, 음택은 혈통을 이어받는 자손이면 누구나 다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이 음택으로부터 미치는 화복(禍福)의 영향력은 범위가 양택보다 더 넓고 후손의 행불행(幸不幸)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음기(陰氣)의 뒷받침이 선행되어야 양택의 기(氣)가 더욱 확실하게 발현(發顯)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적용은 영적(靈的)인 차원으로서 이를 과학적으로 증험(證驗)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는 수천 년 동안 쌓아 내려온 경험적 바탕에 의한 이론으로서 바로 현응적결과(玄應的結果)로 입증(立證)되고 있다. 그 예로 전남 여천에 있는 쌍둥이 마을은 아침 햇빛이 쌍봉에서 쌍둥이 마을로 비춰, 이로 인하여 많은 쌍둥이를 배출하였는데 다만 그 마을 터가 길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특출한 사람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는 오랫동안 전래되어온 마을의 내력에 의한 결론으로서 이것이 바로 조응(照應)의 원리인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著書인 “半坪의 眞理”를 참조할 것)

15. 요컨대 양수 풍수이론은 도읍지 또는 사찰(寺刹)입지를 점지하는 것이 우리나라 풍수사상의 발상(發祥)이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묘지풍수론(墓地風水論)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묘지풍수론은 그 현응적 결과를 오랜 기간이 지나야 알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회의심(懷疑心)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양택(陽宅)이론은 거주인(居住人)이 바로 효과를 가시적(可視的)으로 알 수 있어서 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잘못된 양택이론을 지양(止揚)하고 합리적인 이기론과 형기론을 깊이 연구하여 실생활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 조선조(朝鮮朝)때 실학자로 유명한 이중환(李重煥)선생의 택리지(擇里志)에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며(風水的 條件)

 둘째 생리(生利)가 좋아야하고 (資源의 條件: 生活에 필요한 財貨)

 셋째 인심(人心)이 좋아야 되며

 넷째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중 하나라도 빠진 것이 있으면 좋은 땅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양택지는 풍수지리학적인 길지(吉地)와 주위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16. 맺음말

(1) 우리나라의 국토는 세계의 제일 명당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예로부터 금수강산이라 불러 왔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전국토를 끊김 없이 하나로 연결하고 중간에 파생(派生)된 여러 산과 맥을 통해 생기를 전달하고 있다.

토질은 생토(生土)로 알맞은 습기가 있고 탄력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관망할 때에 땅에서 발산되는 빛이 맑고 명랑하다. 물 역시 맑고 깨끗해서 세계에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또한 산이 많아 흔히 취락지역도 거의 산으로 둘려 싸여 있다.

따라서 어느 곳이나 작은 산, 또는 산 능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산의 기운을 직접 받는다.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땅을 살펴보는 것은 산과 물의 형세를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렇듯 산과 물의 형세를 분석해서 길지(吉地)를 정확하게 찾는 것이 풍수의 핵심이며 목적이다.

산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산, 즉 그 지역에서 기준으로 여기는 산을 태조산(太祖山: 主山)이라한다. 이 산 형태를 분석하는 것이 그 지역의 지세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용은 산맥의 외적 형태이고, 기(氣)는 그 맥 속에 흐르는 힘이다. 따라서 지세(地勢)를 분석하는 것은 용을 통해 흐르는 지기(地氣)의 성분을 판단하는 것이다.

용을 정확하게 분석하면 길지를 찾을 수 있고, 지세의 기운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으므로, 이는 바로 양택을 연구하는 기본 이론인 것이다.

풍수학은 당초에 양택의 연구로부터 태동(胎動)되었으며, 이는 주로 승려들에 의해 사찰지를 점지하는 과정에, 도선선사의 이론에 의해서 발전되고 정립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2) 건축에 있어서, 건축물내의 공간을 관찰하여 기의 흐름을 연구하는 것은 생활과학이지 풍수가 아님을 재차 강조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시중(市中)에서 유통되고 있는 인테리어풍수 생활풍수라는 용어는 풍수의 기본 이론을 모르는데서 나온 허구임을 재차 강조하며, 풍수란 건축내의 공간 활용에 따라 어떠한 기운이 발생한다는 경박(輕薄)스러운 학문이 아님을 천명하는 바이다.

(3) 지세(地勢)가 길지(吉地)라 하더라도 건물의 형태나 방위 등이 좋지 못하면 완전한 명당기운을 향유(享有)할 수 없다. 지세(地勢)와 더불어 건물의 형태나 방위 등도 모두 생기를 얻도록 하는 것이, 명당의 기운을 완전하게 향유하는 방법이다.(坐向, 大門位置 等)

(4) 양택에 있어서 실내공간의 기운은 공간의 형태와 배치에 따라 달라진다. 즉 이것은 생활과학이요 건축의 설계에 있어서의 기본이론이며 요소이다. 가구 배치에 있어서 새로운 기운을 만들어내는 기(氣)를 소위 인테리어풍수의 개념에 도입하여 적용함은 풍수지리학의 근본 의의를 모르는데서 나온 견강부회(牽强附會)한 오류인 것이다. 즉 생활공간이 건강해야 삶도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생활과학이요 심리학적(心理學的) 개념에서 도출해낸 것이다.

(5) 명당은 생기가 많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서, 이는 또한 지형적(地形的) 명당과, 건축적(建築的) 명당으로 구분된다. 지형적 명당은 산이나 강, 토질(土質)등의 자연적 여건에 의해 발생한 명당을 말하고, 건축적 명당이란 땅의 여건 이외의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물의 여러 가지 형태, 방위배치, 방법, 대문, 마당, 도로의 형태 등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 명당을 말한다. 이는 생활과학적 건축의 원리와 그의 기본요소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6) 풍수인테리어란 풍수사상에 현대의 공간디자인 이론을 접목한 것을 일컫는 표현으로 사료된다. 이와 같은 풍수인테리어는 근래에 갑자기 다양한 형태로 연구되어오면서 일반대중을 상대로 한 공적인 강연 및 강의를 통해 풍수인테리어라는 이름으로 널리 전파되었으며 그 시발점은 1994년경으로 본다.

풍수인테리어란 자연 환경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풍수의 원리를 원용하여 이를 현대적 내부공간의 배치에 적용한 것이다. 즉 실내건축디자인의 방향을 풍수이론으로부터 도입하여 발전시킨 표현인 것이다.

(7) 실내건축디자인의 풍수적 응용

실내건축디자인은 건물의 내부 공간 배치에 있어서 생활(生活)의 편의와 효용을 높이기 위하여 이를 적절히 설계하여, 안락한 분위기를 가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내부공간을, 추상적 비실체적 공간개념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활공간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것을 억지로 풍수 개념에 부합시키려는 경향이 짙다.

우리 선인들은 시간[사주팔자]과 공간[풍수]의 법칙에 의해 오행의 원리와 이에 수반하여 예상되는 변화를 고려해서 자연환경과 잘 조화되는 입지와 건축 내부공간의 방위를 정하고 설계한 바가 있기는 하다.

한편 오늘날의 인테리어풍수는, 순수한 풍수이론을 떠난, 다른 각도의 관점에서 활용하여, 이를 승화시켜가야 하는 분야라고 보는바 이는 근본적인 풍수의 개념과는 다르다. 풍수지리(風水地理)는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조작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는 풍수의 진리이다.

(8) 실내건축디자인의 오행색(五行色)

이는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배색하는 것이지, 풍수적 견지에서의 배색의 제한은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의 심리(心理)를 이용한 배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9) 실내 장식물이 공간에 미치는 영향 분석

한 공간내의 물체들끼리는 그 배치의 상호작용에 의해 힘의 중심축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풍수에서는 기(氣)의 흐름 현상이라고 한다. 실내 장식물은 생활공간에서 그 물리적작용으로 인하여 환경요소를 변화시키고 거주자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기에서 물리적 작용력과 심리적 작용력을 통틀어 풍수적으로 표현한다면 에너지 또는 기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현상을 분석하여 가장 이상적인 실내장식물의 배치로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내장식물의 공간에 미치는 영향분석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는 생활과학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실내장식장은 적절한 높이의 가구를 사용함으로써 그 효용가치와 실내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와 같이 실내 장식물은 그 활용방법에 따라 공간 환경을 좋게 하기도 하고, 나쁘게 하기도 한다.

우리가 장식물로 실내를 꾸미는 것은 실내를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대로 활용가치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이와같이 실내장식물을 잘 이용하면 공간의 사용목적을 유효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공기와 물은 순조로운 흐름이 유지되어야 좋은데 흐름이 차단되어 정체된 에너지는 밀폐된 통속의 폐기가스와 같이 죽은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10) 국내(國內)의 실내 풍수이론(室內風水理論)의 경향

“풍수인테리어로 질병을 다스린다” (이성준 한얼문화 미디어 2003년)에 의하면 집은 활물이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집도 살아 있다. 따라서 사람이 그러한 것처럼 집도 에너지가 잘 돌아야 건강하다. 에너지를 적절히 보(補)하고 사(瀉)해 막힘없이 잘 흐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풍수적으로 나쁜 집이라도 손쉽게 자기집에 딱맞는 풍수인테리어로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은 풍수의 이론에는 타당치 않는 논리다.

(11) 양택풍수이론은 그 전통적 이론체계로 알려진 오행과 구중도 구성법과 동.서사택론등을 기본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들은 현재 우리의 가옥구조와 생활방식에 적용함에 있어 여러 제약과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풍수의 근본 이론과는 차이가 있어 적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테리어를 풍수이론에 억지로 적용한 수많은 풍수인테리어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실은 현대인들의 욕구와 취향에 맞고 생활방식에 맞는 새로운 이론과 모델은 이루어 내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 풍수이론에 풍수인테리어의 이론을 접목하는 것은 너무나 거리가 먼 이론이다.

(12) 양택(陽宅)이론에 있어서의 생활풍수(生活風水)와 인테리어풍수와의 차이(差異)

양택이론은 길지(吉地)선택에 있어서 그 택지의 풍수학적 관점과 여기에 약간의 심리학 및 음양오행의 관념이 상호 연관 적용시켜 도출해낸 분야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풍수에 의한 지기(地氣)와 태양에너지의 조화로 이루어진 길지를 선택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그 위에 삶을 유지하는 인간(人間)이 생활하는 곳이기에 여기에 심리학이 또한 깊이 적용되는 것이다. 이는 풍수에 의한 기(氣)의 영향과 이에 버금가는 심리적 영향이 미치는 것, 즉 양택의 정문(正門)배치와 여자(女子)의 음란성이 관계가 있다는 것 등은 풍수적 기(氣)의 우월성이 나타나는 것에 심리학의 영향을 론(論)하여야 한다. 이는 바로 풍수와 심리학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원수를 갖춤에 있어서 여기에 뾰족뾰족한 정원석을 활용하였을 경우, 여기에 거주하면서 자주 보게 될 때, 마음의 불안해지거나, 또는 성격이 완악해 지면서, 건강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며, 또한 담장 위에 깨진 유리 조각과 철망을 설치하거나, 대문을 안채와 정면으로 설치하거나, 아파트의 일, 이(一, 二)층에 거주하였을 경우, 흔히 왕래(往來) 차량의 전조등의 빛으로 잠을 잘 못이뤄 건강에 막대한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것이다.

(13) 우리 인간은 천지간의 자연 속에서 그 기운을 타고 태어난다. 따라서 인간은 원칙적으로 이 자연의 질서와 순리에 순응하여 삶을 영위해 감으로써 생멸(生滅)을 거듭한 영생(永生)과 번영(繁榮)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다만 자연은 꼭 순 기능적인 면만을 인류 전체에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 볼 사항이다. 인간이 스스로 살아가는데 이 천지의 질서에 대하여 순순히 따르기보다는 그 인간 자체의 편의를 추구하기 위하여 때때로 역행적 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제까지 인간은 어떤 자연의 장애적인 면을 극복하고 자연과 싸우면서 삶을 더 윤택하려고 함에 부득이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여 오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너무나 자연의 질서를 무시하고 오직 천박한 인지(人智)에 의하여 앞으로 달리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물은 아래로 흘러가는 것인데 이를 억지로 막거나 역행시키고, 산림을 황폐화시키며 산맥의 흐름을 중단시켜 생물의 삶터를 탈취하는 등과 같이 너무 인위적 행위로 대자연의 큰 질서를 파괴시킴으로써 우리는 더 큰 재앙을 당해 왔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위적인 행위는 자연의 순리(順理)내에서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인데 오늘 날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결국 인위적인 조그마한 지혜로 행해진 결과를 본다면 예부터 유연(悠然)히 내려온 우리 삶의 오랜 역사의 흔적에 비해서 오늘날 문명되고 개명되었다는 세상에 실로 너무나 순간적 단시적(短時的) 안목을 지니고 살아가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눈을 돌려 풍수학계를 반성해본다면 여기에서도 많은 변화가 야기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지금 세태는 점점 음택풍수로부터 양택풍수로 변해가는 추세에 있는데, 이는 모두(冒頭)에 설명한 바와 같이 생활의 편리성, 심리학적 작용 및 음양오행을 함께 관련지어서 복합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문제가 대두된다는 것을 유념하여야 한다.

(14) 정보기술(I.T)시대에서의 풍수학의 위상

우리는 근래에 소위 정보기술(I.T.) 문화가 갑자기 각광을 받아, 온 세상이 이에 휩쓸리고 있는 가운데 살고 있다. 이는 바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그 인위적인 조작이 자연의 조화를 훨씬 능가하는 무소불위(無所不爲)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錯視)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우리 인간은 자연을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오랫동안 외경심(畏敬心)을 지니고 대해왔던 하늘과 땅의 질서와 조화력를 무시하고 까딱 조그마한 인지(人智)의 힘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사항들을 얼마든지 잘 관리 할 수 있다는 오만심(傲慢心)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발견 또는 발명한 모든 과학적, 문명적 힘과 현상(現象)도, 실은 이미 대자연 속에 함축(含蓄)되어 있는 광대무변(廣大無邊)하고 오묘(奧妙)한 천지조화(天地造化)의 일부에서 천착(穿鑿)해온 것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간과(看過)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보라! 저 하늘이 노(怒)해서 인간에게 재앙을 내릴 때 그 무한한 괴력(怪力)과 변화무쌍(變化無雙)하며 굴신자재(屈伸自在)하고 분방(奔放)하여 불가측(不可測)한 조화의 위력을! 이 어찌 그저 왜소한 미물(微物)의 생명체와 지혜(智慧)를 지닌 인간이 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우리 선인(先人)들은 이미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오묘한 이치를 통찰하고 섭리(攝理)할 줄 알아서 이를 천도(天道), 지리(地理), 그리고 인륜(人倫)이라는 용어(用語)로 표현해왔던 것이다. 이 인륜이란 우리가 이제까지 생각없이 막연이 인식해 왔던 전통적인 종래(從來)의 정서(情緖)라기보다는 참으로 천지지도(天地之道)에 대칭(對稱)하여 인간생활에서 가장 가시적(可視的)이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항 즉 삼강오륜(三綱五倫)들을 놓고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생각해볼 때 우리 선인(先人)들이 전수(傳授)하여온 풍수지리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비록 오늘날의 정보기술시대의 퇴물 (즉 인간의 존재가치가 희박해지고, 생명의 존엄성이 경시되는 경향)로 도외시 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천지(天地), 즉 자연의 진리가 담겨있음을 다시 천명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하늘과 땅의 도리와 질서에 대응하는 인간의 위대한 힘은 결코 조그마한 인지(人智)의 결정물인 과학적 기술에서만이 아니라, 오히려 천지음양(天地陰陽)의 기운을 타고 나서 이를 섭리하는 천품(天稟)을 지닌 인간의 본성(本性)으로써 세상사(世上事)를 승화시켜, 이로써 천지의 질서(秩序)인 자연(自然)의 도(道)에 순응하며 삶으로써, 이 길이 바로 우리 인생을 더 평화롭고 여유 있고, 지상의 다른 생명체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영생(永生)의 정로(正路)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八. 맺는말 -삼위일체(三位一體)

1. 이 세상에 한 위대한 인재가 배출되기 위해서는 하늘[天]에서는 별 자리[星座]를 만들고, 땅[地]에서는 그 바탕[吉地]을 설치하며, 인세(人世)에서는 수대(數代)에 걸쳐 덕을 쌓은 자가 천조지설(天造地設)한 명당에 묻히고, 자손은 길지(吉地)인 양기(陽基)에 거주(居住)한 후에야 비로소 그 자손 중에서 인걸(人傑)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즉 대지[大地: 陰宅과 陽基]는 적덕지효(積德至孝)한 사람이라야 명지관(名地官)을 만나게 되고 또 이를 소점(所点)함으로써 천지인(天地人)이 삼위일체가 되어 대인물(大人物: 聖人)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 다시 말해서

① 하늘에서는 그 조화로써 별자리를 이루고,

② 땅에서는 지기(地氣)가 응결하여 명당터를 만들고,

③ 인세(人世)에서는 마음이 바르고[正心], 적선(積善) 적덕(積德) 지효(至孝)한 사람이 나옴으로써 이 삼위(三位)가 하나로 어우러져 그 결정(結晶)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 한편 인(人)의 삼위일체는

① 망인(亡人)이 덕망가(德望家)였어야 하고

② 자손은 지효(至孝)하고 적선가(積善家)였어야 하며

③ 더불어 명지관을 만나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학회는 이에 상응하는 유능한 지관을 양성하려고 자임(自任)하고 있으며 그 실행을 위하여

① 정심(正心) - 마음이 옳아야 하고

② 정시(正視) - 마음이 옳음으로서 혈처가 바르게 보이며

③ 정행(正行) - 올바른 재혈(裁穴)로 혈토에 체백을 모셔야 한다. 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적 회훈(會訓)의 기치를 들고 정진하고 있다. 이는 본 학문의 참뜻을 널리 알리는 요체인 것이다. 

2. 나는 이러한 각오로 요즈음 보급되고 있는 화장문화 장법을 지양하고 새로운 매장문화인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라는 장법을 창안하여 이 장법을 보급시키려고 2004년 12월에 우리 종중(宗中)부터 이 설묘법(設墓法)을 시범적으로 선행실시해 보임으로써 타성(他姓) 문중들의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중이다. (광주광역시 북구 장등동 장등부락에 입향조부터 42분을 한 봉분에 안장하였음)

3. 우리 학회는 마음씨가 올바른 지관(地官)양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한편 구산(求山)은 주어진 조건[所有한 山地]에서 최선을 다하여 용사(用事)토록 돕고 있다. 또한 지나친 과욕은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도록 교육을 실시하고, 지관(地官)으로서 지녀야할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순수하게 봉사할 마음으로, 양택(陽宅)과 음택(陰宅)의 적지(適地)를 합리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혹시라도 잘못된 활용으로 인한 피해를 적극적으로 막자는 운동을 계속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지기가 충만한 우리 금수강산(錦繡江山)에서 세계적 인물이 배출되도록 가일층 노력하여 우리 땅이 지니고 있는 영기(靈氣)를 십분 발휘케 하여 세계의 선두주자로서 각광받을 날이 다가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4. 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산들이 국토전체를 오밀조밀하게 잘 짜고 있어 이 강산에 상서로운 지기(地氣)가 충만하여 수많은 길지(吉地: 陽宅과 陰宅)가 형성되어 있기에 이웃나라들이 우리나라를 가리켜 “지기(地氣)가 가득 찬 동방의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선망(羨望)하고 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이 아름다운 강토를 유효하고 가장 합리적으로 개발. 활용하되 동시에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게 잘 보존하여 후회없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도자나 국민들은 미처 그러한 생각은 못하고 국토개발이라는 미명하(美名下)에 크게 훼손하고, 그저 목전(目前)의 수요에 의한 편익(便益)만을 추구하기 위하여 자연환경을 함부로 파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는 바이다.

5. 사회교육(社會敎育)의 측면에서도 전통의 계승발전을 고려하여 인성교육을 제고(提高)시키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민족의 정신문화(國民精神)인 효사상(孝思想)을 승화(昇華) 고취(鼓吹)시켜야 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음덕(陰德)을 쌓아 유후(裕后)의 유산(遺産)을 남겨야 할 것이며, 어려운 본 학문을 옳게 배우고 시행하여 그 효력이 십분 발휘되도록 노력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천륜(天倫)을 어기는 죄를 짓는다면 그 보응(報應)이 바로 당대(當代)에서 일어나지 않더라도 틀림없이 후대(後代)에 그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전감(前鑑)을 우리는 많이 체험해왔던 바임을 명심하여 아무쪼록 덕행을 쌓음으로써 선조(先祖)를 길지(吉地)에 안장하여 그 지기(地氣)의 효과(效果)를 최대한으로 향유(享有)토록 하고, 국민의 정서(情緖)를 올바르게 인도할 주체가 되도록 우리가 서로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6. 인생이란 평생 면학(勉學)의 연속이라 한다면, 나는 평생 걸어온 이 길을 앞으로도 되돌아봄이 없이 정진(精進)하련다. 성인(聖人)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지 아니 하였던가 !

“종일불식(終日不食)하며 종야불매(終夜不寐)하야 사지무익(思之無益)이라 불여학야(不如學也)”라.(論語에서 引用)

   ■  성명 : 윤 갑원(尹甲源)         


* 光州出生 (1937年 丁丑生)

* 全南大學校 行政大學院 修了

* 前 羅州公共圖書館長 (書記官)

* 現 社團法人 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 理事長

* 前 韓國보이스카우트 全南副聯盟長 (訓練副敎授)

* 現 서울敎育大學校. 全南大學校 平生敎育院 風水地理學班 專擔講師

* 現 韓國公認仲介士協會 風水地理學班 專任講師

* 現 社團法人 韓國人間開發硏究院 風水地理學 專任講師

* 現 홍익TV 專任講師 (www.hongik.com 또는 홍익서당)

* 現 坡平尹氏大宗會 副會長

* 現 社團法人 忠孝禮實踐運動本部 常任委員

* 前 서울경희대. 東서울대. 충북대학교. 부동산학과 풍수수지리학 외래강사.

* 前 서울德成女大, 대구가톨릭대. 木浦大, 順天大, 麗水大學校 平生敎育院 風水地理學 專擔講師


◆ 著 書

   1.  精通通脈地理 (가족묘지 찾는 법과 그 원리) 初版 

   2.  精通通脈地理 (풍수지리학의 바른 길) 改正增補 1. 2. 3 版

   3.  道詵通脈地理(宮中秘傳風水) 總整理版 (改正增補 4. 版)

   4.  半坪의 眞理 (통맥풍수지리학 입문서) (改正增補1. 2. 3 版)

   4.  精通 家事 擇日法

   5.  實用 喪祭禮 祝文集


◆ 1. 천개(天蓋)용 “붕판(棚板)” 특허권 취득

   2. “선조합동묘(先祖合同墓)” 장법(葬法) 특허권 취득

◆  홈페이지:  http: //www.tmps.kr  또는 “통맥풍수”를 치세요.

     e-mail:  insans@daum.net

◆  사무실 주소 :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 280-27번지 3층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1148-2 신성빌딩 5층

    ☎  서울.   02-2055-3675  HP : 011-615-2488  

        光州.   062-511-2488  FAX : 062-511-2488 

(社) 精通風水地理硏究學會

(2010.7.3. 전국 총회시 南崗 閔丙宰 본학회 고문의 환영사)

          

                 환 영 사(歡迎辭)  

        - 풍수학을 통한 인산과 나의 인연을 소개하며-


  오늘 훌륭하신 여러분과 자리를 함께 하면서 감히 환영의 말씀을 하게 된 것을 기쁘고도 반가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감히 풍수에 관한 개관적(槪觀的) 서설(序說)같은 것으로 요설(饒舌)을 펴서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주제넘은 짓은 피하고 다만 인산선생과 나의 인연과 소회를 간단히 피력함으로써 혹시라도 여러분의 참고가 될까 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1)  나는 인생의 절정기(絶頂期)라고 할 수 있는 청장년기(靑壯年期)를 거의 대학의 켐퍼스 내에서 상주(常住)하며 현대과학적 교양의 토양 위에서 나 자신을 함양(涵養)해왔기 때문인지 또는 태생(胎生)적 본성이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이 세상의 초인간적, 초능력적 분야의 종교나 영험(靈驗)을 다루는 세계에 대해서는 부정(否定)은 아니라도 최소한 긍정적으로 인식하기가 썩 내키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평소에 모든 학문의 보편타당(普遍妥當)한 진리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회의적(懷疑的)인 관점(觀點)으로부터 발을 디뎌 놓아야 한다고 생각해온 사람입니다. 특히 그 학문이 위와 같이 신비롭고 초인적인 영역(領域)으로 이루어진 분야(分野)에 대해서는 더욱 꼼꼼하고 논리적인 분석으로부터 전개하여 합리적인 귀결점에 도달시키고 동시에 분명하고 실질적인 험증(驗證)이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이를 체계적으로 기술(記述)해놓은 저술을 통해 전수되어야 비로소 그 가치가 평가된다고 주장해 오기도 한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신비로운 영역(領域), 즉 종교 또는 종래부터 어떤 영적(靈的)인 경지에서 찾아야 한다는 소위 술객(術客)들의 추구한 바를 추종(追從)하려면 우선 누구나 일단 각자의 선입견이나 편견을 배제하고 백지로 돌아가 맹목적으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고 듣고 왔습니다. 그러나 나로서는 어렸을 때부터의 성장(成長) 과정(過程)의 정서가 좀처럼 이에 동의(同意)하여지지 않음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우리 조상 대대로 풍수지리학을 신봉(信奉)하는 가정에서 커왔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결코 좋지 아니하였던 기억을 뼈저리게 겪어온 바로서 이에 대한 환상(幻想)과 미몽(迷夢)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 쳐온 사람이기도 합니다. 외냐면 우리 집안은 수(數) 대(代)에 걸쳐, 물론 한때 선친께서 억대의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지만, 풍수에 몰입(沒入)하여 경국 실패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허덕여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풍수론에 대하여 비긍정적(非肯定的)이요 회의적이었던 사람이 어찌해서 다시 풍수학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면 이는 순전히 나의 심우(心友) 인산선생과의 흉금(胸襟)을 털어놓은 교우(交友)관계와 인산선생의 풍수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및 그가 지향하고 있는 방향(方向)에 대하여 상당히 공감한 바 있어 나도 모르게 여기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2)  되돌아보면 내가 우연히 인산선생과 교육계 현장에서 알게 되어 서로 의기투합(意氣投合)한 바 있었는데 십여 년 뒤에 인산선생이 뜻밖에도 풍수학을 하고 있는 줄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인산선생이 어려서부터 이미 풍수학에 몰입(沒入)하여 계속 남모르게 내공(內功)을 쌓아 왔으며 정녀퇴임한 뒤로는 본격적으로 전문적인 연구와 활동을 펼쳐왔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학문은 그 본류(本流)가 중국으로부터 창시(創始)되여 전래되었기 때문에 당시 한문(漢文) 문화권이었던 우리 선대 풍수학계의 선각자(先覺者) 또는 선지자(先知者)들이 그 학문을 전수받고 또 전수하기 위한 도구(道具), 즉 문자(文字)라는 기록물이 주로 한문(漢文)으로 되어있으며 또한 난해(難解)한 문구와 독특한 격식(格式)의 구문(構文) 형태로 구사되어있어 그 원전(原典)을 해독하기가 어려웠던 차에 마침  나의 전공이 한문학임을 기화로 자연스럽게 나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제회(際會)가 이루어져 상호 협력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되풀이 하거니와 나는 당초부터 풍수학에 대하여 그리 달갑지 않은 편견(偏見)을 지니고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보이지 않는 전통적 흐름이 나의 잠재의식(潛在意識) 중에 아직 조금은 남아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이러한 나의 기색(氣色)을 알고 인산선생은 나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길에 유도(誘導)하기 위하여 자주 등산 겸 간산(看山行)에 동행하기를 적극 권하였으며 이에 따르다 보니 그로부터 나도 모르게 차차 여기에 다시 마음이 끌리게 되었으니, 즉 인산선생은 처음부터 그 명당이론(風水)을 가지고 나를 정면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풍수학의 결과인 명당의 실증(實證)을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하였던 것이니 바로 망인유해(亡人遺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 즉 그 온전하고 보기 좋은 보존상태를 증명하는 혈토의 실체(實體)와 바로 그 장소를 꼭 집어서 여실(如實)히 확인시켜 주곤 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나는 우리 집에 아직도 선친의 친필(親筆) 유묵(遺墨)이 임리(淋漓)한 풍수관계서책 “풍수요결”이란 책자와 기타 철필(鐵筆)로 세세하게 승두(蠅頭) 문자(文字)로 메모해 놓은 풍수이론 책자를 대(代)물림의 유물(遺物)로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으며 또한 세간에는 숱하게 많이 퍼져있는 각종의 풍수관련 책자들의 이론, 즉 포태법, 삼합법. 구성법 . . . 등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일종의 단편단간적(斷片殘簡的)으로 서술되어 있고 또한 그 표현이 은유적(隱喩的) 암시적(暗示的)으로, 그리고 독특한 어구를 구사(驅使)하여 이루어져있어서 그 가닥을 잡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도 이를 체계적(體系的)으로 쉽게 서술하여 이를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된 책자를 볼 수 없었으니 혹 이는 천기누설(天機漏泄)이라 하여 일부로 그러한 것인지 또는 어떤 비방(秘方)같은 경지를 저술자 혼자만이 터득하여 지니고 있고자 한 것인지는 몰라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입문하여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 학문을 닦아야 할지를, 그 지침(指針)이 될만한 서적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지나친 억측(臆測)일지 모르지만, 아마도 이는 풍수학의 전업자(專業者) 들이 오늘 날같이 모든 학문을 정연(整然)한 이론체계로 정리해 놓을만한 학문적 기초능력이 없었거나 아니면 하나의 비법(秘法)으로서 독자적으로만 지니고 있을 뿐 쉽게 함부로 후생(後生)이나 제자들에게 전수하기를 주저(躊躇)하고 다만 구전심수(口傳心授)로 전수함으로써 그 신비감을 증폭(增幅)시키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혼자 가만히 의심해 보는 것을 금할 수 없었으나 이 같은 상상은 아마도 나 혼자만의 지나친 망상(妄想)일 수도 있었겠지요.


3)  풍수학이란 이론적으로 아무리 정연하고 타당한 해설과 주장을 심의(審議)하고 익히더라도 막상 실지로 현장(現場)에 나가보면 참으로 뜬 구름을 잡 듯 망연(茫然)함을 금치 못 할 뿐 아니라 더구나 혈토(穴土)를 점지하여 험증(驗證)한다는 것은, 비록 지질학 분야에 현대적 혜안(慧眼)을 지닌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땅 속을 파헤쳐 보지 않고는 쉽게 점지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산선생을 따라다니다 보면 보이지 않는 땅 속을 마치 거울 보듯이 꼬집어 내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아니할 수 없었으니 처음에는 어떤 우리가 모르는 초인적인 영력(靈力)이 있어서 그런 것인가 하고 내심 놀랐지만 내가 알기로는 평소에 그런 기색은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절감(切感)하고 있겠지만 이는 어느 정도의, 본인은 느끼지 못하더라도, 영감(靈感)이 발동한 소이가 아닌가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가 비약하였지만 이 영감(靈感論)에 관해서는 뒤에 다시 제론(提論)하고자 합니다.


   나는 현재 여러 이단(異端), 혹설(惑說) 및 방론(傍論)으로 풍수학을 흐리고 있는 이 풍수 학계에서 이러한 독보적(獨步的)인 경지에 이르게 된 인산선생에 대한 믿음과, 그가 사회에 대하여 다시 이 지식을 되돌려주어  어떤 기여(寄與)를 하겠다는 그 열정, 다시 말해서 만년(晩年)의 소일(消日) 감으로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명감(使命感)을 가지고 정진(精進)하고 있는 진지(眞摯)한 모습에 감동하여왔으니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내게 되었습니다.


   1) 인산의 풍수에 관심을 두게 된 동기는 효심에서 발동하였다.

   인산선생은 이 풍수학을 그저 취미로만 추구해온 것이 아니라 실로 어려서부터 일직 친부(親父)를 여읜 통절한 한(恨)을 안고 그 유해(遺骸)를 명당에 모심으로써 효도를 다하자는 효심의 발동에서 출발하였다. 즉 풍수학의 목적은 후손의 유복(裕福)을 위함보다도 선영을 잘 모시겠다는 효심에서 울어 나온 데 있다는 점이다.


   2) 인산의 훌륭한 사상-지식의 사회 환원 관념

  인산선생은 이왕 풍수학을 전공하여 그 가운데 황연히 깨닫게 된 진리를 얻게 됨에 이를 혼자만이 전유할 것이 아니라 사회에 널리 공유(共有)케 함으로써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풍부한 우리나라의 좋은 지기(地氣)를 국민 모두 고루 향유(享有)케 하여 훌륭한 인재가 많이 이 땅에 배출되게 함으로써 국가발전에 도움이 되고자한다는 것이다.


   3) 인산의 헌신적인 풍수교육방법의 개척

  내가 인산에 대하여 무엇보다 가장 찬양(讚揚)하고 싶은 것은 오랫동안 여러 풍수이론을 섭렵(涉獵)하여 실험해보고 대비(對比) 천착(穿鑿)하면서 그 정사(正邪))와 진위(眞僞)를 판별하게 된 고심참담(苦心慘憺)한 각고 끝에 드디어 가장 올바른 풍수이론을 도출해내어 이를 확립하였다는 것과 이를 바탕으로 과감하고 자신있게 학문으로서의 이론체계(理論體系)를 세워놓았으며 나아가 이를  누구나 알기 쉽고 단계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저술해놓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산은 지난 반생동안 세간의 여러 잡설과 방론에서 좌절과 시련, 그리고 시행착오와 실험을 통해 드디어 이론(理論)과 실지(實地)가 합치한 “통맥풍수지리학”을 개척해 냈으며, 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진정과 열정을 다해 후진을 양성지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세간의 풍수들이 마치 이 학문이 불가근((不可近)) 불가원(不可遠)의 현묘(玄妙)한 경지로서 자신만이 홀로 터득하고 있는 신술(神術)인 것처럼 자만하면서 그저 막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잡설(雜說)로 현혹(眩惑)시켜온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데 더 친근감과 신뢰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4) 풍수와 통령(通靈)- 풍수는 결국 통령(通靈)해야 한다.

  흔히 점술(占術)과 풍수에 대해서 그 소위 신묘(神妙)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두고 통령(通靈)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지능한계를 뛰어넘는 신비감을 가지고 있는 뉴앙스를 풍기고 있는 사람을 일컫게 되는 경우이다. 나도 인산에게서 그런 모습을 가끔 감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영(靈)이 통한다, 통령(通靈)되었다는 말을 다르게 해석하고자 함을 인산에게서 발견하였다. 흔히 여러가지 방면에서 아주 숙달(熟達)된 솜씨를 가진 사람을 두고 달인(達人)이라고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오랜 숙련(熟練)으로 인한 초인적(超人的)인 손재주 등을 일컫는 말이다. 정신적 수련(修鍊)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정신적 영역을 달통하기 위하여  그 이론적 접근 그리고 이의 실험적 연찬(硏鑽)을 오랫동안 반복(反覆) 체득(體得)함으로써 결국 이들이 머릿속에서 응집(凝集)하여 통정(通整)하고 있다가 어떤 사항에 부딪치게 되면 찰나적(刹那的)으로 결론이 내려져 나온 현상(現象)을 두고 우리는 이를 통령(通靈)했다고 표현한 것이 아니가 생각되는 것이다. 즉 이는 바로 일정한 사항에 대한 지식과 이성이 초능력적인 달인(達人)의 경지에 이른 바를 두고 칭(稱)하는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지성(知性)의 달인(達人) =(이콜) 통령(通靈)인 것이다.


  자! 여러분도 이제부터 부지런히 공부하고 수련하여 부디 풍수학의 달인(達人)이 되어 영이 통한 경지에 이르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그래야 일류(一流)의 풍수대가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합니다. 다만 인산은 오랫동안의 고행(苦行) 끝에 이룬 것인데 여러분은 그 고행과정을 생략하고 오직 이미 개척해놓은 길을 따라 열심히 최선을 다 하되 더 피나는 노력과 반복학습을 하면 되리라고 믿는 바입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나는 인산 선생을 마음으로부터 신뢰하고 친근감을 느끼며 훌륭한 익우(益友)로서의 우정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서로 존경하고 돕기를 권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더러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통념적(通念的)인 풍수의 개념과 윤곽을 파악할 정도를 넘어 최소한 풍수지리전문가의 안목(眼目)을 가지고 그 진위(眞僞)를 판별할 수 있는 정도의 건전한 상식을 갖추고자 청강(聽講)하려는 분도 계실 것이고, 아니면 좀 더 나아가 어느 정도 남의 묫자리를 점지해줄 수 있는 경지의 실력을 쌓고자 하는 분도 계시리라 추정합니다. 다만 주제넘은 노파심 또는 기우(杞憂)일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이를 왜곡되게 활용하여 소위 세간의 군소 술사(術士)적 형태의 행세를 하게 되는 유혹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 들지 아니할까 감히 건방진 추정도 해보지만 여러분께서는 절대로 그러하지 아니하리라 믿으며 부디 진정한 지사(地師)로서의 깊은 교양과 실력을 갖추어 이 땅에 가득한 좋은 지기를 모든 사람에게 찾아 줌으로써 그 유복(裕福)을 향유케 하고 세인을 구제함은 물론, 나아가 국가사회에 이바지함으로써 남모르는 음덕을 쌓아 자신의 자손과 조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인사말씀에 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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