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다123
2012. 11. 28. 10:14
산문(山門)
이병초
송홧가루를 빠져나온 바람이 저만치서 입술을 훔친다 바위틈에 끼어 크다 말았어도 맡둥이 내 허벅지만 소나무 솔밥들을 매달고 쭉 찢어진 데를 시린 햇살이 꽂힌다 배꼽 떨어진 삽처럼 막심 못 쓸 눈두덩 주저앉은 저것의 속내 바위틈에 똬리 트느라고 애 꽤나 녹았겠다 어디 큰 판에 가서 화끈하게 붙어보지도 못한 푹 꺼진 윗목 같은 날들 먹잇감에 쫓기던 새벽 꿈자리를 매달고도 맨살에 와닿는 실바람에 화악 쏠리던 시절이 왜 없었으랴 집 두고도 집 그리워했던 흰머리 늘어나는 머리맡이 우툴두툴 밑동에 맺혔을 거다 누가 캐가려다 못 캐간 저 뒤 캥기는 자세로 두고두고 늙어갈 소나무 아무 말도 못하고 쭉 찢어진 데를 송홧가루 묻은 햇살이 가만가만 처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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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전북 전주 출생 우석대 국문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1998년 계간《시안》신인상 당선 시집『밤비』『살구꽃 피고』등 현재 웅진세무대 교수
( 2012.북한산 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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