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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유아숲해설

2018.12.1. 경희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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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있는 다섯 궁궐 가운데 가장 크게 망가진 궁궐이 경희궁이다.

지금은 어느정도 복구는 됐지만 그래도 먼가 궁궐이라 이름 붙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 일반인들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형편이다.

하지만 경희궁이 원래부터 그랬을 리는 없다.

경희궁은 조선왕조 인조 이후에는 법궁 동궐에 버금가는 이궁 서궐이었다.

 

경희궁은 광해군이 지었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대 들어서서 궁궐 중건 사업이 활발히 추진되었다.

광해군은 즉위하면서 바로 둥단 상태에 있던 중건 공사를 재개하여 1608년 5월

말에는 종묘가 완공되고 , 8월에는 창덕궁 주요 전각이 상당히 완성되었다.

 

겨우 자리를 잡은 1616년 봄에는 인왕산 아래에 새 궁궐을  짓자는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법궁 하나만으로는 왕이 정상적인 활동에 어려움이 있어 이궁으로

궁궐을 하나 더 짓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짓게 된 궁궐이 인경궁이었다.

인경궁 영건 공사가 본격적인 단계에 든 1617년(광해군9년)  새문동이란 인왕산

자락에서 내려와 운종가와 만나는 지역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술사들의 말에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정원군의 집터에 궁궐을 짓기 시작했으니 경덕궁이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 강화도에 피난갔다 돌아온 후 창덕궁에 이어 했고

다시 3년이 지난 후 1636년 12월 병자호란이 일어나 남한산성에서 항거하다

이듬해 1월 청에 항복하고  창경궁으로 돌아왔다.

인조반정 이후 수리못했던 창덕궁을 수리하는 동안 경덕궁이 이궁으로 쓰였다.

 

이궁인 경덕궁은 1760년(영조 36년) 인조의 아버지 원종이 시호 '경덕'과 음이 같다고

하여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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