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원(下園)에게 (중앙일보)
가을은 소설이 아니네. 가을은 해석이 아니네. 가을은 시이네
10월의 인문은 남북의 숙명인 문자언어, 곧 한글로 지켜지네
맹목적이네. 눈앞의 10월은 맹목적인 너무나 맹목적인 나의 하루하루를 열어주네.
둘이네. 하나는 자연이고 하나는 인문이네.
한국전쟁 직후 하나둘 이방인이 한국에 오면 그 전란의 잿더미 위에서 한국의 가을하늘밖에 보여줄 것이 없었네.
여의도 비행장에서 김포 비행장으로 초라한 규모의 공항을 옮긴 지 얼마 안 된 때였네. 김포 가도의 가로수 수양버들은 이승만 시대 속성수종(速成樹種)이었네. 그 가로수 위의 푸른 하늘만이 한국의 첫인상이 되도록 유도하는 손님맞이였네.
그 이래 나는 국내의 여러 곳에서 조국의 푸른 하늘 아래에서 내 삶의 정처를 살아왔네. 그럴 뿐 아니라 나는 이 지상의 하잘것없는 시인이기보다 저 푸른 하늘 속의 시인, 저 구름의 시인이기를 자주 염원했네. 아예 이 세상의 답답한 시인 노릇 따위 때려치우고 어서 죽어서 저세상의 광활한 여기저기를 떠도는 망령(亡靈)의 가객(歌客)이고 싶었네. 독일의 ‘도플갱어’와 어슷비슷하기도 했네.
이런 9월, 10월, 11월 사이에 열어놓은 한국의 푸른 하늘이야말로 오랫동안 하나의 무(無)로서 또 하나의 유(有)를 나에게 점지하는 것이네.
이 그칠 줄 모르는 고행의 강토 위에서 벌어지는 천편일률의 역설이기도 한 변화무쌍을 내려다보며 아직껏 이 지상의 온갖 꿈과 상상을 낳아주는 저 푸른 하늘의 위대한 무아(無我)야말로 내가 이 세상에 온 축복의 기원(起源) 아니겠는가.
이 하늘은 차라리 어떤 표현의 대안(代案)도 비유도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네. 나 또한 이 푸른 하늘 아래서는 몇 번은 시인이지만 몇십 번은 결코 시인일 수 없네.
올 10월도 이 이상 없는, 이 이상 바랄 나위 없는 푸른 하늘의 우주 동정(童貞)의 정화수 물이 뚝뚝 떨어지므로 이 청명의 대기조차도 나로서는 습기로 받아들여 젖지 않을 수 없네.
울고 싶다는 막말이 입만 열면 나오려고 입안에 차 있는 오늘도 자네의 눈에도 들어 있을 저 푸른 하늘을 나는 비애로 삼고 희열로 삼고 있네.
알 바 없이 푸른 하늘은 저 위에서 하염없이 깊어지고 알 바 없이 이 지상의 인간 희로애락은 어쩌다가 현실의 질곡을 떨치고 만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하늘에 뜻을 지어올리고 하늘을 우러러 이 지상의 사상(事象)을 빌어오지 않았던가.
새소리가 그저 높은 소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아기 울음소리가 변성기 이후 청소년의 목소리가 아닌 것은 어쩌면 이런 높디높은 소리로만 하늘에 바쳐지는 제례(祭禮)의 소리 공양 아니겠는가.
가까이는 국악 명창의 수리성과는 또 다른 높은 음계의 한계 밖을 꿈꾸는 그 숨넘어가는 상성(上聲)이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가요의 조관우 두성(頭聲)이 몸의 꼭대기에서 텅 빈 소리를 낼 때 거기 내 조상 역대의 푸른 하늘이 귀 기울이지 않겠는가. 조수미의 콜로라투라가 몇 안 되는 소리로 저 성층권에 닿을 듯한 바도 그 소리의 공명(共鳴)이야말로 정작 푸른 하늘의 것이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고음의 차원은 인간에게 드문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다른 인간의 평상 육성과 함께 결코 초자연의 소리는 아니겠네. 오직 인간의 영역이란 자연의 영역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바를 새삼 깨닫게 되네.
10월의 하늘이야말로 10월의 가을을 내려주네. 가을은 그러므로 지상의 것 이상으로 먼저 천상의 것이기도 하네.
가을은 소설이 아니네. 가을은 해석이 아니네. 가을은 시이네. 돼지에게도 한밤중의 공중 나그네인 기러기 행렬에게도 시이네.
10월의 내 자연미학은 그러나 푸른 하늘만은 아니겠네. 내 심신의 기초인 이 지상 도처에도 경이로운 자연 본연(本然)의 신비들이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이런 자연에 동참하는 10월의 인문이 곧 내 조국 남과 북의 숙명인 문자언어로 지켜지고 있네. 아 한글 말이네. 아 신성한 한글 말이네. 나는 한글로 살고 한글로 죽는 한국인의 한 생애 속에서 한 발짝도 다른 곳에 내디딜 수 없네. 한글은 내 원점이라네. 나는 이 원점의 구심(求心)을 윤회하는 원심(遠心)이라네. 이런 단도직입의 진술이 어찌 나 하나의 몫이겠는가.
저 식민지세대 빼앗긴 들에도 봄이 왔네. 하지만 빼앗긴 민족어와 그것을 담을 자음·모음의 문자에게는 봄도 가을도 올 수 없었네.
몇백 년 사대주의 한자 지배체제와 그 뒤의 식민지시대 내내 언문(諺文)이라는 미개인의 기호로 버림받다가 끝내 생매장된 한글이야말로 잃어버린 나 자신이었네.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오랜 시절 권력이었고 종교였네. 이 못지않게 언어야말로 내가 나인 것을 확인하는 자아의 구현(具現)이었네. 아니 자아확대인 세계의 도래(到來)였네.
언어와 문자는 주체를 상실했을 때 그 주체를 대행하는 서술주체이네. 바로 그 서술주체로서의 문자까지 철저하게 모독한 식민지 전시(戰時) 사회로부터 1945년 여름날의 해방이 왔네.
그 해방이란 우선 어린 나에게는 조선어의 국문(한글)의 해방이었네. 또한 해방이란 식민지 종주국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내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낸 해방이었네.
그 이래 나는 한글을 지붕 삼고 한글을 이불 삼고 한글로 동네방네를 다니는 몇십 년의 삶을 살아오고 있네. 나의 삶은 곧 한글의 삶이고 한글의 무조건 연대기였네. 한글이 없었다면 나는, 아니 우리 모두는 어쩔 뻔 했을까라는 공포를 본능으로 삼고 있네.
한글이 세계 문자 가운데서 가장 수월하다는 것, 가장 과학적이며 철학적이라는 것 등 여러 찬사는 여기서 단념하네. 먼저 이 위대한 문자를 그 절대난관의 내외환경도 무릅쓴 천재의 창조정신과 의지로 이루어낸 사업에 새삼 머리를 숙여야 하네. 바로 그 천재의 장본인 세종대왕에 나는 하루하루의 일과로 귀의하고 있네.
누구누구와 합의한 것이 아니네. 극비의 과제는 아들딸을 시켰네. 깊은 밤 세종 자신의 침전에서 궁리궁리 끝에 태어난 기적이 우리의 한글 탄생인 것이네. 그 당시 왕권과 생명의 안위가 걸린 이 문자 창제는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끈질기게 진행·반포되었네.
어렵사리 궁중의 새 문자가 국가의 문자로 나오는 행보 역시 신중했네. 중국과 국내 사대노선으로부터 자유로운 행위는 무엇 하나 용납되지 않은 역경 속에서 한글의 운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네.
슬그머니 공식 문자가 되고 나서 언해본(諺解本)을 국책으로 발행하는 시기는 세종·세조 연간이 지나면 당장 배척의 문자가 되어버렸네. ‘쌍글’ ‘뒷글’ ‘암글’ ‘똥글’로 지하화(地下化)되고 말았네.
이것이 한말 대한제국 공표(公表)와 함께 국한문 공용으로 사면받았으나 바로 이어진 일제 언어정책으로 불온문자가 되었네.
은혜롭게도 내 모국어의 시, 내 한글의 시는 이제 한반도 역내에만 놓여 있지 않네. 내 시가 다른 언어들로 태어나고 그래서 내 한글 원작이 다른 나라 언어들의 원작이 되는 위의(威儀)를 나는 누리고 있네.
이런 행운에 티끌의 보은이라도 할 작정으로 내 모국어의 이산과 단절 그리고 그 빠른 변질을 이겨내야 하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에 동참한 지 10년 이상의 경과를 쌓아왔네.
여기저기서 살길 찾아 솥단지 하나, 이불 하나 그리고 조상의 제삿날과 아리랑을 가지고 떠난 근세 이래 동포들의 묵은 모국어까지도 불러내는 결집은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렀네.
나의 신은 저 창세의 큰 신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신이네. 바로 한글을 남겨준 한반도 몇천 년의 전륜성왕(轉輪聖王) 세종대왕이 바로 나의 신이네.
10월의 어느 날이 한글날인 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한글에 관한 한 나에게는 매년 매월 매일의 실시간이 한글의 시간이네.
하원, 이 종교적인 자연과 인문의 가을을 잘 지내게.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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