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묘지문제는 사회적으로 하나의 큰 과제가 되고 있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종중사(宗中事)에 관계하는 인사들도 묘지문제를 큰 과제로 안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는 부모가 생존할 때에는 효성을 다하여 지극정성으로 섬기고, 노쇠하여 돌아가시면 길지(吉地)를 택하여 부모의 체백과 영혼이 편안히 잠드시도록 예법에 따라 정중하게 장례를 치르고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이같이 살아생전과 사후를 통하여 자식된 도리를 다하면 그 부모의 정(精)과 기(氣)가 동질(同質)로 통하는 혈손(血孫)에게 어떠한 영향을 준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이다.
이같은 우리의 정서는 반만년을 이어오면서 조상을 길지에 잘 모셔야 효(孝)를 다하고, 그래야만 그 조상으로부터 음우(陰佑)를 받아 자신은 물론 후세에까지 자자손손 대대로 복록을 누릴 수 있고 가문도 융성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이같은 사조는 과거 대대로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중추세력일수록 더 확고하였다.
첨단과학의 세계를 살아가는 오늘날, 조상의 그런 음우를 믿지 않는 층이 없지는 않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묘지와 조상의 음우를 믿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첨단과학을 논하며 묘지와 조상의 음우를 믿지 않는 사람도 그의 심저(心底)에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전래의 정서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근자에 매장문화가 갑자기 화장문화로 경도되어 납골당이 세를 얻어가는 세태를 보면서 뜻있는 부모 형제 동료들은 “이게 과연 잘 되어가는 것인가”하며 걱정이 태산 같다.
우리나라 화장률은 1930년 서울 홍제동에 화장장이 설립된 이래 1971년 7.0%이던 것이 1991년에 17.8%, 2002년에는 42.6%에 이르고 있다(보건복지부․서울시 자료). 좁은 땅에 묘지의 증가는 국토의 관리측면에서 그 한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정부당국 뿐만 아니라 일반인으로서도 더 이상 방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과감한 장묘문화의 개선은 절대 필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개선방향은 여러 방안을 놓고 전문가들과의 충분한 검토를 거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시행한 후에 뉘우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근래에 갑자기 세를 얻어나가는 화장문화를 보면 이러한 다각적인 검토 없이 너무 단순하고 안이하게 납골당의 일방적인 장점만을 보고, 더욱이 상업주의와 맞물리면서 이를 보급 강행해나가는 것 같은 감이 없지 않다.
시류에 따라 가속화되어가는 이 납골당풍조는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부작용을 가져와 애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민생의 낭비와 국토의 훼손 및 오염을 가중시킬 우려마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민족정서를 황폐화시킬 소지조차 없지 않아 시행 당초의 목적이 과연 제대로 거양될 수 있을지 매우 염려스러운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에 나는 근년에 종래와 같이 매장하는 우리 고유의 장법을 과감히 변형 개선하여 납골당이 지니고 있는 장점을 살리면서 이보다 토지나 비용의 측면에서 더 경제적이고, 우리의 정서에도 맞고, 국토관리면에서 더 효율적인 일석삼조의 선조합동묘를 창안하여 조성해나가면서 이 장법을 널리 권장하고 있다.
납골당을 모신 경상도의 어느 분은 이 선조합동묘를 참관한 후, 이미 화장처리해버린 자신의 경솔을 한탄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납골당 풍조가 얼마나 우리 국민의 정서를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내가 간산(看山)한 뫼들은 체백이 물속이 아니면 충해(蟲害)를 입거나 목근에 휘감기고, 또는 모렴(毛廉: 水簾, 유골에 머리털처럼 생긴 가느다란 세모(細毛)가 엉켜있는 현상이다)이 가득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집안[선조합동묘의 창시자]의 조상묘(祖上墓)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색이 풍수지리를 공부한다는 자손으로서의 죄책감에서 나는 조상의 뫼를 길지(吉地)에, 아니면 최소한 무해지지의 적지(適地)에라도 이장(移葬)해드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였다.
그렇게 파고든지 5년여에 걸쳐 여러 문헌과 고대(古代)의 선례(先例) 및 풍수지리학적 탐색, 그리고 국가정책적인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새로운 장법(葬法)인 “선조합동묘”를 창안하였다.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으로 모시는 이 선조합동묘는 앞[서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미풍양속의 예법에 어긋나지 않고, 따라서 자식의 도리를 다할 수 있어 우리의 정서에 맞고, 비용면에서도 납골당 봉안의 2분의 1~3분의 2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고, 한 봉분 안에 100여구의 체백을 매안(埋安)할 수 있어 효율적인 국토관리의 측면으로 보아도 현실에 가장 합당한 장법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합동묘에는 현조(5대) 이상의 조상을 모시고, 지근(至近)으로부터 고조(4대)까지는 새로운 길지를 찾거나 또는 이미 이장해간 구묘(舊墓)의 유감(遺坎)이나 벌안(부근)에 답습(踏襲)해 쓰면서 풍수지리학의 오묘한 이치를 추구한다.
고시(古詩)에도 “선인유감후인습(先人幽坎後人襲)이라 했으니, 선인의 유감(幽坎: 穿壙, 塋內)에 뒷 사람이 인습(因襲: 用事)하는 것은 옛날에도 있었던 일이다. 나는 솔선하여 종중(宗中)의 중론을 모아 선산가운데서 길지를 택하여 문중 전체, 조부모(현조 이상을 원칙으로 하나 나는 조부모까지 모셨다) 이상 마흔 두 분(42분)의 조상을 하나의 봉분으로 된 “선조합동묘”에 모셨다.
동묘의 장법(葬法)은 간단하다. 유골을 안치(安置)하는 방법은 가로 30㎝ 세로 40㎝, 깊이는 체백의 상태에 따라 적절히 조절하여 소모태(小母胎)를 만들되, 부부간은 15㎝, 세대간은 20㎝ 간격으로 배열한다. 안치배열 순서는 윗자리로부터 선대순(先代順)으로 모시되 남우여좌(男右女左)의 예법을 따른다.
이 매안방법은 이미 옛날 중국 중원(中原)에서 활용했던 장법이다. 합동묘는 한 봉분 안에 웬만한 중․소문중의 선조들을 전부 모실 수 있다. 봉분의 외형상 크기는 40~50구를 안치하면 왕릉보다 작고, 100구 정도면 왕릉정도만 하다.
그림 1 선조합동묘
조상의 뫼를 제대로 잘 모시려면 벌초를 1년에 두 번은 해야 한다. 그러나 1년에 한번 하는 벌초도 번잡스럽게 생각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자작일촌하여 살던 종족(宗族)들이 도시로 나아가거나, 또는 핵가족으로 해체되면서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와 바쁜 생활여건으로 숭조사상(崇祖思想)이 엷어져가고 있다. 엷어져가는 정도가 아니라 숭조사상이 사라져가는 극치를 우리는 근래에 보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어느 지방 공원묘지의 묘비에 관리비 납부독촉장이 줄줄이 붙여져 있는 희한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는 마치 법원 집달리가 붙이는 빨간딱지를 연상케 한다. 참으로 한심한 세태의 반영이다. 후손들의 관리비 미납문제가 어찌 그 공원묘지뿐이겠는가.
조상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 편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思考)에서 일어나는 이런 풍조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실전묘(失傳墓)의 증가가 우려되는 사회현상이다. 지금도 무연묘(無緣墓)는 우리나라 국토의 약 1%를 차지하고 있는 2,000만기의 40%인 800만기로 추정되고 있다.
산지사방에 널려있는 무연총(無緣塚)은 정부나 지역자치단체 차원에서 무연합동묘를 조성하여 관리하면서 사문중(私門中)의 시향제와 같이 해마다 시제(時祭)를 모신다면 구천에 떠도는 무주고혼(無主孤魂)도 진위(鎭慰)시킬 수 있어 좋고, 국토정화도 이룰 수 있어 사회정책적 측면이나 국토관리적 측면에서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림 2 무연총
우리는 조상에 대한 제례(祭禮)를 고조(高祖)까지는 기제사(忌祭祀)로 모시고, 현조(玄祖)부터는 시향제(時享祭)를 올리고 있다. 이는 우리 예의범절의 기본이 되는 가례(家禮)에 따라 가문(家門)마다 지켜 내려오는 사대봉사(四代奉祀)의 미풍양속이다.
지난날 대가족제도 아래에서 가장(家長)이 조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손자를 보았다면 5대가, 양친을 모시고 살면서 손자를 보았다면 4대가 한집안에서 살았다. 이같이 4대~5대의 조자손(祖子孫)이 한 지붕아래 한 울타리 안에서 일상적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살갗을 맞대며 생활을 함께 해왔다.
가례는 이런 상황을 헤아려 한솥밥을 먹고 생활하며, 조자손간에 따뜻하고 친밀한 정감이 서로 오갈 수 있는 댓수(代數)를 적절히 상정하여 4대봉사 제도를 정했다고 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에서도 4대[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의 조상이 자손에게 지기(地氣)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추구(追究)해볼 때 오래된 선대묘(先代墓: 5대조 이상)의 체백(體魄)은 이미 원형체(原形體)를 거의 잃었고, 뿐만 아니라 지기와 만나 장자승생기(葬者乘生氣)를 낳는 현묘(玄妙)한 동기감응력(同氣感應力)도 소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측면을 상고(詳考)하여 유골을 적지(適地)에 안전하고 정중하게 봉안(奉安)한다는 것은 풍수지리학적인 면에서 보아도 자손의 도리를 다하는데 더 큰 의의(意義)가 있다할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사회의 큰 과제로 제기되어왔던 묘지문제는 미래지향이라는 명분아래 오랜 전통의 매장법에서 화장법과 납골당으로 이행하는 변혁기에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납골당이 이대로 성행해간다면 개선의 미래지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초(苦楚)의 미래지향이 될 공산이 커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에 나는 화장과 납골당의 여러 문제점을 살펴보고 다각도로 검토하였다. 그 결과는 선조합동묘가 우리에게 가장 합당한 장법이라고 결론짓게 되었다.
정책당국에서는 화장과 납골당만이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으나,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선조합동묘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비용면에서도 납골당보다 절약할 수 있어 경제적인 면에서도 민생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사회는 다양하여 사람마다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성향을 갖고 살아간다. 따라서 당국에서는 화장과 납골당만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국민 각자가 각기 형편과 주관에 맞는 장법을 택할 수 있도록 여러 장법의 장단점의 정보를 제공하며 홍보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앞에 기술한 영남의 어느 분과 같이 선조합동묘를 관찰한 후 선조를 화장하여 납골당으로 모신 것을 후회하며 눈물짓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선조합동묘에 관한 기준도 규정하여 좀 더 정책적인 배려를 해야 할 것이다.
토장묘는 선조의 영면처(永眠處)에 포근히 안기고 싶은 친근감이 있고 오래된 묘에서 경험해 본 바와 같이 사초만 하면 항상 새로워지는 신선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매장법은 그 어느 방식보다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가장 합당한 장법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자세히 고찰했지만 이를 요약하여 다시 정리하면, 선조합동묘는 해마다 시제를 모시면서 문중의 화목을 도모하는데 더 효율적이요, 자연스럽게 자녀들의 효(孝)사상의 교육장이 될 수 있고, 묘의 실전(失傳) 위험이 없으며, 벌초와 성묘가 간소해지고, 용사(用事)의 소요경비가 납골당보다 절약되며, 점유면적의 효율도 납골당보다 못하지 않고, 우리의 풍습과 전통에도 맞으며 정서적이고, 납골당 축성에 따르는 자연환경의 훼손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납골당처럼 오랜 뒷날 흉물스럽게 변했을 때 후손들의 접근을 꺼리게 하거나 묘주의 실종으로 퇴락했을 때 그 잔해의 처리에 고충이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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