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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나/미술관련

시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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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림에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묘사가 많습니다.

이런 그림에 대해 신화와 전설 그리고 종교상의 교리에 비추어 그림을

해석하는 것을 도상학적 이해라고 한다.

그림 바깥에 있는 문헌 지식이나 고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입니다.

근세 이후에는 더 이상 이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그림은

설혹 그렸다고 해도 수가 얼마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근세 이후 동양에서 문자와 관련해 해석학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그림이

다시 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그림을 그린 주역이 문인이었다는 사실과 관련이

다분하다. 동양미술사를 보면 송대 이후 문인들이 그림 제작에 나서서 회화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른바 문인화가 유행하게 된 것이다.

이는 문인들이 그림을 제작하고 감상하는 주역이 되면서 화제가 그림에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인들은 그림도 시나 문장처럼 생각했다.

그림도 뜻과 생각을 전하는 도구나 수단으로 여긴 것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린 뒤에 자연스럽게 글귀를 적어 넣었습니다.

곧 그림과 글이 짝이 되었다.

그림에 한문 문구가 들어가는 것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것이다.

화제가 등장해 새로운 해석학적 이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림의 화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의외의 사살을 깨닫게 된다.

문장은 소수이고 대부분 시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시는 그림에 왜 들어갔고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시구가 있는 그림을 살펴보면 화가가 붓을 들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시구를 떠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림이 아니라 시가 먼저였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림은 시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것이 된다.

시의 뜻을 그렸다고 해서 이런 그림을 가리켜 시의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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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행도

 

윤두서의 강행도

윤두서가 그린 시의도는 네 점 정도가 알려져 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관월점>에 실린 강행도는 초기 시의도 형태를 보이는

윤두서의 그림이다.

강행도 옆면에는 시가 한 수 적혀있다. 당나라 시인 전기(722~780)<강행무제>

100수 가운데 제27수이다.

이 시는 조선에서도 유명해 이산해(1539~1609)가 제9수를 초서로 쓴 서고가 전한다.

 

북두성 기울고 달은 차지 않았는데

배는 떠나고 밤은 깊어 가네

마을이 멀지 않았음은

바람결에 다듬이 소리 들려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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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도

 

정선의 채선도 

채선도 정선 도쿄 국립박물관

정선 역시 17세기 후반, 18세기 초에 일어난 시의도 유행에 일익을 맡았다고 합니다.

몰락한 집안의 자손이었지만 노론 주요 인사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그림에서 천성을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

정선의 수련 시기 기록을 보면 그 역시 윤두서와 마친기지로 <고씨화보>, <당시화보>

등 당시 전래된 중국 화보를 가지고 실력을 쌓았다.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하는 <채신도>전기의 시<강행부제>100수 가운데 제12수를

그린 것이다.

 

해 가린 높은 나무 많아

배를 매어 두고 나뭇단을 챙기네

가만히 강가 노인 말 들어 보니

모두가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네

 

시만 보면 배경이 밤인지 낮인지 분명치 않다. 선착장에서 나뭇짐을 배에 실어주는

사공의 말을 듣고 읊은 듯하다. 사공이 큰 나무 밑에 배를 대고 일을 하는데 소근 소근

말 소리가 들려왔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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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인물도 강세황

시제는 당나라 재상 장구령(678~740)의 시 ,<호구망여산폭포수>에서 가져온다.

 

만 길 붉은 샘이 떨어지는 듯

절반은 자주색 기운 감도네

거친 물줄기는 잡목 아래로 흐르고

훤칠한 기운 뭉게구름 위에 피어 오르네

햇빛 쬐자 무지게 그려지고

하늘 개며 비바람 소리 들리네

 

큰 나뭇가지 그늘이 두리운 강변 언덕에 두 인물이 마주 앉았다.

강 건너편 멀리 첩첩 산골에 폭포 한 줄기가 우렁차게 쏟아집니다.

폭포 쪽 산기슭은 옅은 먹을 발라 안개로 처리하고 건너편 산비탈은 짙은

먹으로 묘사했다. 이로써 왼쪽으로 터져 나가려는 구도를 막아 그림 전체에

안정감을 준다.

 

강세황은 오랜 시간에 걸쳐 시의도를 탐구하고 이 결과를 다른 화가들과

공유한다. 화가들이 공감하면서 강세황의 화풍이 18세기 시의도를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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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 간매도;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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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간화&nbsp; &nbsp; ;단원

 

 단원 작품

위 두 작품 모두 두보의 시를 가져다 쓴 것이라 합니다. 중국의 시성으로 불리는

방랑시인 두보가 말년에 동정호 인근에 머물며 지은 <소한식주중작>의 일부이다.

 

좋은 날 억지로 먹는 밥은 여전히 찬데

책상에 기대어 쓸쓸히 은자의 관을 써보네

봄 강물에 배는 마치 하늘 위에 올라앉은 듯 하고

늙어서 보는 봄꽃은 안개 속에서 보는 것 같네.

사뿐사뿐 나는 나비는 장막을 스쳐 지나가고

점점이 나는 갈매기는 빠른 여울에 내리꽂히네.

흰 구름에 푸른 산의 만리 밖

북쪽에 있는 장안 하늘 시름겨워 바라보네.

 

제목의 소환식이란 한식 다음 날인가 본다.

사방에 봄이 성큼 다가와 강물을 불리고 배를 잔득 밀어 올리며

강변에는 꽃을 피웠습니다.

사대부의 꿈은 아직 펴 보지도 못했는데 다시 찾아 온 봄날

붉은 꽃을 바라보는 시인은 이미 늙어 있다.

그래서 그 꽃이 마치 안개 속에서 보는 듯 가물가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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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사군탄&nbsp; &nbsp;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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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오수도&nbsp; &nbsp; &nbsp;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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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   신로

 

절벽 위로 잡목이 우거졌고, 산사나 고성 누각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 배경이 된 장소나 일화 등을 짐작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림 위쪽에 시구 하나가 있습니다.

‘고강급협뇌정투 고목창등일월혼(高江急峡雷霆鬬 古木蒼藤日月昏)’,

‘불어난 물 험한 협곡 천둥과 다투고 고목에 푸른 넝쿨 해와 달을 가리네’라는 뜻입니다.

시구를 보니 분위기가 완연해집니다. 절벽 위까지 닿을 듯 천둥소리를 내며 몰아치는 물줄기가

햇빛마저 가릴 듯합니다.  화가는 애초부터 시를 의식하고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이 시구는 두보의 유명한 시 「백제(白帝)」의 일부입니다. ‘백제’란 중국 고대의 ‘백제성’을 가리킵니다.

백제성은 양자강이 지나는 중경시 봉절현에 있습니다. .

촉나라 유비는 오와의 전투에서 패해 이곳으로 쫓겨 왔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며 제갈량에게 뒷일을 부탁했는데,

이 고사 덕분에 백제성은 대대로 시인이나 묵객의 소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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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와아집도&nbsp; 강세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균와아집도 1763년 강세황 51세 안산생활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는 김홍도, 심사정, 허필, 최북 등 18세기를 주도한 쟁쟁한 화가들이 등장합니다.

그림이 많이 상해 상세하지는 않치만 인물들은 운치 있게 바둑도 두고, 거문고를 타고 

퉁소를 불고 있습니다.

맨 좌측에 앚아 있는 분이 퉁소를 불고 있는 김홍도, 그 우측에 있는 분이 강세황입니다.

시제는 희미해서 안보이지만 위 인물들의 행동에 대해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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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독조도    ;최북

 

형제처럼 친했던 신광수가 최북에게 그림을 부탁했답니다.

" 당나라 서안 교외의 파교를 건너 매화를 보러갔다는 맹호연 일화나 송나라 향주

 서호의 고산에 살면서 매화를 사랑한 임포(967~1028) 일화만 그리지 말고 

눈오는 한강의 풍경을 그려달라" 라고 .

눈이 내려 검어진 하늘과 눈이 소복리 쌓인 강변을 배경으로 낚싯대를 드리운

삿갓 쓴 어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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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류도&nbsp; 최북

 

'계류도'는 사선을 경계로, 위쪽에는 경물을 그리고 아래쪽에는 화제(畵題)를 배치했다.

사선 위쪽으로 깊은 산을 여백으로 처리하고, 계곡에서 흘러온 물이 바위를 휘감아 흐르게 그렸다.

물안개 자욱한 가운데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기교를 멀리 한 탓에 작품이 담백하다. 최치원의 소박한 삶이 겹쳐진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아래 언덕 왼쪽에는 최치원의 시 중 3·4구를 반행(半行)의 흘림체로 쓰고,

호생관 아래 낙관을 했다. 서체는 반듯하면서도 물과 같은 기운이 감돈다.

최북의 '계류도'는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시를 보고 그린 시의도(詩意圖)다.

최치원이 가야산 독서당에서 읊은 시

  < 제가야산독서당 >

狂奔疊石吼重巒      첩첩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      지척의 사람 말도 분간하기 어렵구나

却恐是非聲到耳     세상의 다투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에워싸게 했노라.

 

최치원이 말년에 가야산 해인사에서 자연과 더불어 물소리에 귀 기울이던

은둔생활을 시로 남긴 것이다.

최북 역시 세상의 시름을 잊고 자연과 벗하며 살고자 이 그림을 그린 것 같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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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적  : 조선시대  시의도  2016  윤철규  마로니애북스

2022. 6. 18.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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